판단을 단단하게 만드는 결과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지점에서]
질서는 보통 이해의 다른 이름으로 오해된다.
정리된 문장, 예측 가능한 논리, 빠른 요약.
그러나 그런 질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가벼워지고,
조금만 압력이 가해지면 흩어진다.
사유문명론에서 질서는
먼저 오지 않는다.
질서는 견딤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판단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판단은 선택 이후를 인수하겠다는 서명이다.
그 서명에는 보상이 없다.
시간, 고독, 오해, 침묵이
차례로 도착한다.
이때 많은 판단이 철회된다.
철회된 판단은 사라진다.
기록되지 않는다.
문명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철회되지 않은 판단의 잔여물이다.
사유문명론은 이 잔여물을
질서의 씨앗으로 본다.
질서는 여기서 시작된다.
정리 이전, 설명 이전, 이해 이전.
무너짐의 가장자리에서.
[무질서가 먼저 도착한다.]
무질서는 실패의 징후가 아니다.
무질서는 부하가 걸렸다는 신호다.
사유가 가벼웠다면
무질서까지 오지도 않는다.
단단해진 판단은
항상 무질서와 함께 온다.
기존의 문법이 깨지고,
기존의 리듬이 어긋나며,
문장은 뜻을 앞지른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떠난다.
사유문명론은
이 이탈을 붙잡지 않는다.
탈락은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유문명론 10편 무질서의 질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