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버리고 리듬을 되찾는 방식
* 시간을 다시 조직하는 사유
<속도를 버리고 리듬을 되찾는 방식>
[속도로는 시간이 남지 않는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형태를 갖는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속도를 높인다.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그러나
그렇게 얻은 시간은
결국 더 많은 일로 채워질 뿐이다.
속도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다.
시간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꿀 뿐이다.
빠르게 처리된 하루는 남지 않고,
서둘러 지나간 시간은 기억되지 않는다.
속도로 쌓은 삶은
결국 비어 있는 기록으로 남는다.
[리듬이 시간을 쌓는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다시 조직하는 것이다.
리듬은 속도와 다르다.
속도는 외부 기준에 맞춰 움직이지만,
리듬은 내부에서 만들어진다.
같은 하루라도
누군가는 쫓기며 보내고,
누군가는 반복 속에서 축적한다.
리듬이 있는 시간은
느려 보여도 쌓이고,
속도로 밀어붙인 시간은
빠르게 사라진다.
[시간을 조직하는 인간]
인간은 시간을 통제할 수 없지만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은 선택할 수 있다.
불필요한 것을 줄이고,
반응을 늦추고,
자기 속도로 반복하기 시작하면
시간은 더 이상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으로 바뀐다.
시간의 질은
얼마나 빨리 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남았느냐로 결정된다.
사유하는 인간은
시간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을 조직하는 존재다.
[시간이 말해주는 것 — 오크통과 열린 병]
시간은 모든 것을 드러낸다.
오크통에 담긴 스카치는
시간을 통과하며 깊어진다.
향은 낮아지고,
맛은 부드러워지며,
결국 남는 것은
시간이 만든 밀도다.
반대로
뚜껑을 연 콜라는 다르다.
처음은 시원하다.
톡 쏘고, 자극적이며,
즉각적인 반응을 만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기포는 사라지고
맛은 평평해진다.
남는 것은 없다.
지식은 종종 콜라처럼 작동한다.
빠르게 이해되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순간의 시원함을 준다.
지식은 외부에서 들어온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희석된다.
담겨 있던 맥락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는 다르다.
사유는 오크통처럼 시간을 기다린다.
* 파블로 데 사라사테
<서주와 타란텔라>
Movie <ladies in lave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