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가 지나간 자리에 깊이가 남는다
* 미디어를 바꾸는 사유
<속보가 지나간 자리에 깊이가 남는다>
[속도는 전달하지만, 남기지 않는다]
속보는 빠르다.
그러나
빠름은 기억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은 사건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자신 안에서
어떻게 정리되었는지를 기억한다.
무엇을 들었는지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 안에서
어떤 구조로 남았는지가
기억이 된다.
속보는 외부에 머문다.
사유는 내부로 들어온다.
속보는 눈을 지나가고,
사유는 시간을 통과한다.
[정보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정보는 넘친다.
부족이 아니라 과잉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정리하지 않는다.
정보는 계속 추가되지만,
이해는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가 많아질수록
사람은 판단을 미루고,
사유를 멈춘다.
정보는 쌓이면 무게가 된다.
사유는 통과하면 결이 된다.
쌓인 것은 막히고,
통과된 것만 남는다.
[속보는 사건을 쪼개고, 사유는 사건을 묶는다]
속보는 사건을 단위로 나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사건은 조각으로 분해되고,
각각은 따로 소비된다.
그러나
사유는
왜 일어났는가,
무엇이 반복되는가,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다.
속보를 많이 볼수록
세계는 더 복잡해지고,
사유를 할수록
세계가 더 단순해진다.
[미디어는 전달이 아니라 해석으로 이동한다]
전달은 더 이상 가치가 아니다.
이미 모든 것은 전달되고 있다.
앞으로의 미디어는
누가 먼저 말했는가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이해했는가로 이동한다.
114편에서 권위의 재료가 지위에서 논리로 이동했듯,
미디어의 재료도 속도에서 깊이로 이동한다.
속도는 경쟁을 만든다.
깊이는 기준을 만든다.
전달은 비교되고,
해석은 축적된다.
[남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리듬이다]
속보는 순간을 잡는다.
사유는 시간을 만든다.
빠르게 지나간 것은 남지 않는다.
반복되어 머문 것만 남는다.
리듬은 반복에서 만들어지고,
반복은 기억을 만든다.
속도는 자극을 만들고,
리듬은 구조를 만든다.
[사유는 미디어의 방향을 바꾼다]
미디어는 더 빠르게 갈 것이다.
속도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그만큼 빠르게 이해하지 못한다.
이 간극은 점점 커진다.
정보는 전달되지만,
이해는 생성되어야 한다.
속보가 채우지 못한 자리를
사유가 채운다.
미디어를 바꾸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유다.
[사유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사유는
길들임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래 머문 것만이 결을 만든다.
빠르게 스치는 것은 항상 얕다.
사람은 사유를 정리하려 한다.
정답으로 묶고,
결론으로 고정한다.
그 순간 사유는 죽는다.
사유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다시 마주하는 것이다.
그 반복 속에서
사유는 사라지지 않고 남는다.
익숙해지는 것은 사유가 아니다.
사유는 결을 배우는 것이다.
Equus ferus
야생말은
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올라타는 순간은
항상 스스로의 선택이다.
잡는 것이 아니라
올라서는 것이다.
* The Rolling Stones
<Beast of Burden>
허리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