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17편 - 그 관점은 언제 정상이 되는가

관점의 스펙트럼

by 사유의 무지랭이

[관점은 생각이 아니라, 서 있는 자리다.]


16편에서 우리는 말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관점의 붕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건은 늘 거기에 있지만,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각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현실의 무게가 삶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해석하는 관점의 방향이

삶 전체의 하중을 결정한다.


같은 하루를 두고

누군가는 소모를 말하고,

누군가는 축적을 말한다.


이 차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고,

성격의 문제도 아니다.


관점이 이미

그 사람의 삶 속에

구조로 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관점은 생각이 아니다.

관점은 사람이

세계 위에 서 있는 방식이다.


[관점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관점에는 정답이 없는데,

왜 우리는 늘

정답처럼 말하고,

정상처럼 분류하는가.


관점이란 본래

사물을 어디서 보느냐의 문제다.


앞에서 볼 수도 있고,

옆에서 볼 수도 있고,

안쪽에서 볼 수도 있고,

한 발짝 떨어져

거리 바깥에서 볼 수도 있다.


같은 대상은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그래서 관점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관점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한 번 선택되면 되돌릴 수 없으며,

어떤 답으로도

완전히 멈춰 서지 않는다.


정답이 없다는 것은

혼란이 아니라,

세계가 본래

단선으로 열려 있지 않다는 증거다.


[관점이 사회로 넘어가는 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관점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눈다.


이 순간,

관점은 개인의 사유를 떠나

사회로 넘어간다.


사회는 관점에

진리를 묻지 않는다.

옳은지를 묻지 않고,

깊은지를 묻지 않는다.


대신 사회는

다음과 같은 질문만을 던진다.


이 관점이

현실을 통과할 수 있는가.

사건 앞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게 만드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사람들이 견딜 수 있는 언어로

정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관점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처리 불가능한 관점이 된다.


[정상은 진리가 아니라 통과 기록이다.]


그래서 정상은

진리의 이름이 아니다.


정상은 언제나

통과 기록의 이름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불편 없이 버틸 수 있었고,

질서를 과도하게 흔들지 않았고,

유지 비용이 가장 낮았던 관점.


그 관점은

옳아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정상으로 남는다.


정상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다.

정상은

시간을 통과한 관점의 흔적이다.


[사유는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


여기서 사유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사유는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

사유는 관점을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는다.


얼마나 깊이 파고들었는가.

얼마나 거칠게 질문했는가.

얼마나 많은 층위를

포기하지 않고 통과했는가.


그 깊이에 따라

관점은

의견으로 남기도하고,

방향으로 변하기도 한다.


사유가 얕으면

관점은 말이 되고,

사유가 깊어지면

관점은 세계를 통과하는 힘이 된다.


[관점이 본질을 겨냥하는 순간]


방향성을 가진 관점은

사건을 소비하지 않는다.


사건은 문제로 변하고,

문제는 구조로 드러나며,

구조는 결국

본질을 노출한다.


이 순간,

관점은 더 이상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있지 않다.


관점이 정상처럼 보이는 때는

사회가 허락했을 때가 아니라,

사물과 사회의 중심을

정확히 겨냥했을 때다.


[투명해진 관점이 남기는 것]


그래서 사유하는 사람은

체제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체제를

더 이상 숨지 못하게 만든다.


이 투명함은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함 속에서

관점은 더 이상

조용히 지나가지 않는다.


[다음 질문]


이렇게

방향을 가진 관점은

어디에서 멈추는가.


이어 <사유문명론 18편 - 관점은 어디에서 멈추는가〉로 이어집니다.


<Finnegans wake>


“이브와 아담의 성당을 지나 강은 내달리고, 굽이치는 해안에서부터 굽어 흐르는 육지로 휘어들어 간 곳까지, 우리로 하여금 둘러싼 드넓은 비코의 시골 마을옆으로 호우드 성과 주위의 지역까지 되돌아오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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