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20편 - 판단 이후 우리의 책임

멈춤의 새로운 출발

by 사유의 무지랭이

[멈춤은 실패가 아닌 사유가 더 이상 가벼워질 수 없다는 신호다.]


사유가 멈추는 순간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과밀하다.

문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장이 더 이상 통과하지 못할 만큼

의미가 서로를 밀어내는 상태다.


멈춤은 결핍이 아니다.

멈춤은 저항이다.

사유가 다음 국면으로 이동하기 위해

기존의 언어를 거부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왜 멈춤을 실패로 오인하는가]


속도는 능력처럼 소비된다.

연결은 지성처럼 오해된다.

그래서 멈춤은 언제나

뒤처짐의 표식으로 읽힌다.


그러나 멈춤은 대개

하중이 바뀌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전의 논리로는

다음 국면을 지탱할 수 없을 때,

사유는 스스로를 잠근다.


[판단은 끝이 아니라, 멈춤의 다른 이름이다.]


판단은 종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멈춤이다.

수많은 판단들 중 하나가

잠시 자리를 고정하는 지점이다.


그 멈춤의 순간,

사유는 방을 하나 건넌다.

그 방을 건너는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남의 판단을 참고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의 멘토가 된다.


[이해가 빠를수록, 사유는 정체를 견디지 못한다.]


빠른 이해는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즉시 연결해

불편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거된 불편은

다음 사유의 연료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빠른 이해는

사유를 전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지한 채 이동하는 착각을 만든다.


[연결은 사유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연결은 편안하다.

이미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다리를 놓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유는

다리가 없는 곳에서만 발생한다.

연결이 끝나는 지점,

그 이후의 단절에서

사유는 비로소 무게를 요구한다.


[시저는 수영왕이었다.]


고대의 기록들에 따르면

율리우스 시저는

전투 중에도 수영을 했다.


강을 건너야 할 때,

퇴로가 끊겼을 때,

적의 공격을 피해야 할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물로 들어갔다.


수영은 그의 취미가 아니었다.

훈련도, 여가도 아니었다.

살아남기 위한 기술,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각오한 이동 방식이었다.


그래서 전해진다.


시저는 수영왕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수영을 잘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가

언제 수영을 했는 가다.


[판단은 마치는 것이 아니라, 건너는 것이다.]


시저가 물에 들어간 순간은

전투가 끝났을 때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국면이었다.


마찬가지다.

판단은 사유의 종결이 아니다.

판단은

사유가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다음 국면으로 이동해야 할 때 발생한다.


그 순간,

사유는 설명을 내려놓고

몸을 던진다.


[사유하는 자의 수영은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유하는 자는

수영장을 찾지 않는다.

얕은 물에서

호흡을 연습하지 않는다.


그는 전투 중에 물에 들어간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강을 마주한다.


그래서 사유의 수영은

휴식이 아니라

책임의 형식이다.


[판단 이후, 우리가 책임지는 것은 무엇인가]


판단 이후,

우리가 책임지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 판단으로 인해

건너야만 하게 된 강,

되돌아갈 수 없게 된 위치,

그 이후에 흘러가는 시간이다.


책임은 선언되지 않는다.

책임은

되돌릴 수 없음으로 드러난다.


[멈춤을 통과한 자만 다음으로 간다.]


멈춤을 회피한 자는

항상 이전의 언어를 반복한다.

멈춤을 견딘 자만

다음 국면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사유의 진전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를 견디는 시간의 문제다.


[남는 문장]


판단은 끝이 아니다.

판단은

사유가 더 이상 머물 수 없을 때

강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시저가 그랬듯,

사유하는 자도

즐길거리의 수영이 아니라

전투 수영을 한다.


그리고 그 수영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묻게 된다.


판단 이후,

우리는 무엇을 책임지는가.


이어 <사유문명론 21편 - 관점은 바꾸는 것

이 아니라, 하중을 옮기는 일이다.>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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