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가 아니라 지속이 선택되는 순간
*시간은 누구의 편인가
—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 선택되는 순간
[시간은 편을 들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는다.
빠른 자를 도와주지도,
늦은 자를 위로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나를 조용히 가른다.
지나가는 것과
남는 것을 조용히 가른다.
[속도가 시간을 이긴다는 착각]
우리는 오래도록
더 빨리 가면 더 오래 가진다고 믿어 왔다.
그래서 문명은
끝없이 속도를 높여 왔다.
더 빠른 기계에
더 빠른 통신애
더 빠른 판단에
그러나 시간이 남긴 결론은 단순하다.
먼저 도착한 것들이
먼저 사라졌다.
순서가 아니라 도착한 것들이 순서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붙잡는 단 하나]
시간은 속도를 기억하지 않는다.
시간이 붙잡는 것은 오직 하나다.
지속이라는 것이다.
끊기지 않은 것에
조용히 반복된 것에
보이지 않아도 이어진 것에
시간은 언제나
그 편에 섰다.
역사적으로도 마찬가리로 적용되는 것이다.
[속도는 강요이고 지속은 선택이다.]
속도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은 세상이 만든 박자다.
시장과 기준이 만든 것이
적응의 리듬을 만들었다.
반대로 지속은
스스로 선택해야만 가능하다.
멈추지 않겠다는 태도에
사라지지 않겠다는 결에
그래서 지속은 능력이 아니라
존재 방식이 된다.
지속은 인간에게 필요한 조건으로 남는다.
[시간의 마지막 선택]
시간이 고르는 것은
가장 강한 것도,
가장 큰 것도 아니다.
가장 오랫동안
자기 결을 잃지 않은 것.
그것만이
시간을 통과한다
[살아남음과 지속의 차이]
살아남음은 결과다.
시간의 끝에서야 붙는 이름이다.
지속은 다르다.
아무 결과가 없어도
이미 시작되는 현재의 태도다.
그래서 어떤 존재는
사라진 뒤에 살아남고,
어떤 존재는
아직 이루지 못했어도
이미 시간을 통과한다.
[시간이 묻는 단 하나]
시간은 묻지 않는다.
얼마나 빨랐는지,
얼마나 가졌는지,
얼마나 알려졌는지.
애 대한 대답은
단 하나만 남긴다.
끊어졌는가,
이어졌는가.
[속도의 끝에서 드러나는 것]
모두가 빨라질수록
지속의 가치는 또렷해진다.
모두가 소비될 때
지속은 힘이 된다.
그래서 마지막에
시간이 손을 잡는 쪽은 늘 같다.
끝까지 남아 있던 쪽에 붙어있는 것이다.
[시간은 결국 누구의 편인가]
시간은 빠른 자의 편도,
강한 자의 편도 아니다.
시간은 언제나
지속의 편이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문명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어 <사유문명론 57편 - 지속은 어떻게 힘이 되는가
- 보이지 않는 축적이 방향이 되는 순간>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