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이후의 인간
* 남는 존재의 조건 - 속도 이후의 인간
[속도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문명은 항상 더 빠른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 진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역사였다.
걷기에서 말로,
말에서 기차로,
기차에서 비행기로,
그리고 지금은 이동 자체가 사라지고
정보가 먼저 도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 지점에서 권력의 구조가 바뀐다.
더 이상 땅을 많이 가진 자가 아니라
더 빨리 도달하는 자가 지배한다.
문명의 권력 형식이
공간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드러낸다.
속도는 효율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압축하고
깊이를 잃게 만든다.
깊이를 잃은 문명은
결국 지속 능력을 잃는다.
지속 능력을 잃은 문명은 존재를 멈춘다.
사유는 멈추게 되고
진보는 없고 정체한 상태로 간다.
[빠름이 파괴한 보이지 않는 층]
속도의 사회에서
과정은 제거되고,
숙성은 낭비가 되며,
기다림은 실패로 간주된다.
그러나 문명의 핵심은
항상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형성된다.
사유, 기술, 예술, 관계, 신뢰, 공감, 리듬, 공진
이 모든 것들은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속도는 결과를 늘리지만
존재의 두께를 줄인다.
더 빨라질수록
더 오래 남지 못한다.
오래 남은 것만이 존재의 영역을 확대하고
그 영역에서
문명이 사유의 리듬을 함께 하는 시간이다.
[장인은 왜 속도 이후에 등장하는가]
속도의 문명이 한계에 도달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존재가 장인이다.
장인은 느린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시간을 관통하면서 존재하는 존재다.
시간을 이기거나 버티는 존재는
시간에 머물며 싸움을 이어 가지만
시간을 통과 한 자는 시간 밖에서
존재를 확장시킨다.
그의 반복은 지연이 아니라 정확도이며,
그의 느림은 비효율이 아니라
오차 제거다.
1만 시간은 그의 존재의 최소 단위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손에 들어오고 손은 존재에 스며든다.
기술은 기능을 넘어서 존재의 형태가 된다.
[남는 존재의 기준]
속도는 승자를 만들지만
시간은 잔존자를 만든다.
문명의 끝에 기억되는 것은
앞서 간 사람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사람이다.
남는 존재는
오래 버틴 사람이며
형태를 남긴 사람이다.
속도 이후의 인간은
경쟁이 아니라
소멸하지 않는 방향을 선택한다.
오래 버틴다는 것은 견딘다는 것과 함께
시간의 범위 내에서 싸우는 방식이다.
사유의 영역에서 시간은
관통한다는 말을 쓰게 된다.
관통한다는 것은 뚫고 지나간다는 의미보다
시작과 끝까지 이어짐을 지나 사유의 리듬을 공유하는 것이다.
사유는 리듬을 만든다.
상호 공진이 문명이 되는 방식이 된다.
사유는 결론을 만들지 않는다.
사유는 속도를 높이지도 않는다.
사유가 남기는 것은
항상 리듬이기 때문이다.
산 중에 무엇이 있는가?
고갯마루 위에 흰구름 많도다.
사유 중에는 무엇이 있는가?
고갯마루 위에는 사유의 리듬이 많도다.
山中何所有
嶺上多白雲
이어 <사유문명론 62편 - 느림의 기술 — 남는 시간의 구조>로 이어집니다.
* 졸탄 코다이(Zoltán Kodály, 1882~1967)
헝가리 음악을 세계적인 것으로 만든 작곡가이다.
<무반주 첼로 소나타 Op. 8>
현대적인 수법에 전통적인 민요의 선율을 취급한 곡이다.
(연주시간 : 28분 25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