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를 고민하게 된 순간

변화의 신호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

by 사유독자


우리 아들은 어릴 때부터 한 가지에만 치우친 아이는 아니었다.
피아노를 치고, 수영을 하고, 미술과 독서를 함께 하며 여러 예술 영역에서 균형 있게 자랐다.
특히 영어 원서를 천 권 넘게 읽어낼 만큼 언어 감각도 남달랐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아이는 문·예·체 쪽에 더 맞는 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내 마음 한편에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어릴 적 내가 피아노 10년까지 치고도 결국 예고 진학을 포기했던 기억 때문인지 악기를 잘하는 아이가 되기를 은근히 바라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바람엔 나의 미련이 조금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었던 한 달짜리 무료 수학 수업이 모든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아이가 수업을 듣고 오는 날마다 한층 들뜬 표정을 보였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아, 이 아이가 정말 뛰어나게 잘하는 영역은 여기는구나.’

그동안 학교에서는 독서 퀴즈, 그리기, 글짓기 같은 문과 성향의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래서 과학고라는 길은 솔직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을 지나면서 아이의 관심은 조금씩 방향을 바꿨다.

과학 토론 대회, 융합과학 대회 등 새로운 분야에서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학교 대표로 선발되어 교육청 대회까지 나가 좋은 성과를 냈다.
특히 ‘시·도 대회 금상’이라는 뜻깊은 결과를 얻었을 때,
아이는 자신이 어떤 공부에서 가장 살아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듯했다.

지역 대학의 영재원에 합격하면서 그 흐름은 더 분명해졌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자연스럽게 과학고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1 때 만난 과학 선생님 결정적이었다.
수업 시간 발표를 들은 뒤 선생님께서 한마디를 건넸다.

“과학을 깊게 공부했구나.”

그 짧은 말은 아이에게 놀라운 힘이 되었다.
아이는 그날 이후 더 깊이 파고들었고, 더 넓게 탐구했다.
단순한 ‘재미’가 ‘목표’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길을 향해 뛰기 시작한 뒤로는 단 한 번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며,
과학고라는 선택은 어느 날 갑자기 정해진 게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고 의지가 생기는 방향으로 조용히, 하지만 꾸준히 쌓여온 길이었다.

음악을 좋아하던 아이, 그림에 집중하던 아이, 책을 사랑하던 아이가 마침내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 전체가 그 순간을 만들어냈던 것 같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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