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내 것이 되는 순간>을 읽고_
일상의 경험 속에서 '아! 예술이다.'라고 느낀 순간을 떠올려 10초가량 표현해 보는 첫 과제. 아주 짧고 간결한 미션이었지만, 그 질문만으로도 최근 나의 고민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어느덧 엄마가 되어 버린 삶은, 또 강사로 생계를 꾸려가는 삶은 무언가 향유하기엔 몹시도 퍽퍽한 일상이라 바쁘고, 불안하고, 맥없이 소진됨의 반복이다.
벌써 예~술을 하려면 작품이 되어야 하고, 이 작업은 보통 작업이 아니고, 여러 가지 제반 요건이 싹 갖춰져야 하며, 이번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
나부터가 벌써 높은 문턱으로 예술을 바라보고 있진 않았나. 아득하게 멀어진 미지의 세상을 추앙하며.. 언젠가는 다시 꼭 무대를 하리라 다짐도 해주며, 점점 스스로 예술로부터 멀리멀리 도망쳤다. 이 와중에 '수업으로 만나는 사람들의 건조한 일상을 촉촉하게 해 주리라'는 완벽한 모순까지.
이 책은 잠시 잊고 살았던 예술의 원래 모습을 만나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이 되어 주었다. 원래 거기 있었는데 애타게 찾았고, 원래 거기 있던 친구가 살포시 웃으며 '그래. 나야.' 하는 느낌이 들어서 반가웠다.
발표하는 선생님들의 짤막한 10초 무대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로 숨죽이고 말없이 바라보는 그런 귀한 예술의 순간도 나누었다.
내가 준비한 순간은 이른 아침의 한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 항상 주방에서 엄마가 일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깼었다. 우리 엄마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우아하게 일하는 그런 스타일의 엄마가 아니라, 우당탕탕 다 깨고 부수듯이 화끈하게 일하는 분인데.. 어릴 땐 너무 불편했다."자는 것들 당장 일어나!!!"라는 듯 문짝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 퍽퍽 닫아가며 일하는 느낌.. 그도 그럴 것이 난 조용한 방에 가만히 누워 천장을 보면서 소리만 들으니 뭘 저렇게까지 깨부수나 시끄러워 죽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시간이 부쩍 흘러 엄마가 된 나의 아침을 본다. 부랴부랴 바쁘지만 뭐라도 챙겨 먹여 보내려고 너무나 분주하다. 우당탕탕 쿵짝 쿵짝 퍽 퍽! 아차차! 내 주방에 비교하면 우리 엄마 주방은 엘레강스 그 자체다. (참고로 난 화나지 않았다.)이때, 딸이 방에서 신나게 달려 나와 “엄마~!! 방금 엄청 리드미컬했어! (둠칫둠칫 움직이며) 신난다! 또 해봐!" 누군가에겐 이 산만한 움직임과 소리가 음악이 되어 온몸을 흐르고 있다.
30년 동안 엄마 집에서 엄마 밥 먹고 살았지만, 엄마의 움직임에 어떤 리듬이 있으리라 내용이 있으리라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녀의 주방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을까...'김희진이 야채 골라내니 쪼아주자 탁탁탁탁! 우리 늦둥이도 많이 먹고 많이 커라 지글지글!'딸이 받은 영감에 나도 덩달아 엄마의 서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내면에 깊게 자리했던 기억들과 연결되어 알 수 없는 감정과 에너지가 뒤섞여 온 집안을 돌아다닌다. 그렇게 찾은 의미는 선율이 되기도 하고 형태가 되기도 하고, 이어질 삶과 방향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예술을 알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삶의 풍요로움을 발견하는 기회이자, 감사한 하루가 모여 이제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예술교육가로서 사람들이 잠시 잊고 살아가는 것들을 톡톡 터치해 주는 역할을 해주고 싶다. 일상 속에서 “아! 예술이다."라는 순간을 포착할 수 있도록 틈을 열어줄 수 있다면 이보다 더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자기표현의 세련된 도구로 간직하길 바란다. 그것으로 서로 소통하고 뜨겁게 주장하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그렇게 저마다의 인생을 유영할 수 있도록.
_2025년 3월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김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