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기 시대, 교육의 응답』을 읽고_
생명을 향한 나의 응답
『민주주의 위기 시대, 교육의 응답』을 읽고
최근 연극학회 발제 원고를 쓰며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동안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을 주로 써왔기에, 학술적인 논지와 현장가의 진솔함 사이의 적정 온도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혁규의 『민주주의 위기 시대, 교육의 응답』을 읽으며 내용이 주는 유익함뿐 아니라, 저자가 글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과 어휘 선택, 구성, 톤, 그리고 학문적 근거와 진정성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3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단 한 번의 끊김도 없이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저자의 필력 덕분이자,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지만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과 가치를 가진 사람을 만난 듯한 반가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고민했던 ‘적정 온도’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친 노력과 교육 철학,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연결하며 글을 감정적으로 풀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 서사를 맨 마지막 장에 배치함으로써, 생애적 경험을 통해 앞서 전개한 객관적 논지에 진정성을 부여해 주었다. 만약 처음부터 자기 이야기로 시작했다면 자전적 미화로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덴마크의 민주주의 모델을 실천적 예로 제시하며 막연한 개념을 구체적인 실천 방식으로 제시한 점, 그리고 ‘공화 민주주의’의 개념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정리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은 여지가 있을 수 있음에도, 저자가 말한 ‘칭찬은 칭찬답게, 꾸중은 꾸중답게’를 뚝심으로 실천하는 것 같아 감명 깊었다.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깊이 공감한 문제는 ‘냉소주의, 혐오, 눈치문화, 다양성의 합리화’였다. 특히 예술가로 살아온 나에게 ‘다양성’은 늘 고민이 되는 주제다. 나 또한 과거에 여러 실수를 범했지만, 예술교육가들이 현장에서 아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유로 사유 없이 중요한 사회 문제(주제)를 다루는 모습을 종종 본다. 표현력을 키우겠다는 명목 아래, 함께 다져야 할 가치나 정의에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수업을 설계할 때 문제(주제)에 대한 그 나이의 아이들과 나눠야 할 이야기를 명확히 설정한다. 주제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이들이 그 안에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질문과 대화는 최대한 자유롭게 나누고자 한다. 저자가 법치(틀)와 시민참여(의견)를 함께 강조한 것처럼 말이다. 다양성의 가치는 너무 중요하지만, 이론으로 가르칠 문제가 아니라 교사나 부모가 삶에서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공감의 도덕화’ 부분은 특히 나를 돌아보게 했다. 연극 수업에서 드라마 상황에 몰입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만 바라보는 아이들을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경험과 교육을 통해 서서히 형성되는 복합적인 능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내 견해를 강화하는 정보만 소비하지 않기 위해, 내가 접하는 미디어와 유튜브 알고리즘을 점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화예술교육가로서 일하며 여러 복잡한 관계와 구조 속에서 갈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등불처럼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생명’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잠깐 언급한 기독교 정신의 ‘박애’와 닮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말을 듣지 않는 학생도, 소통이 어려운 부모도,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도 결국은 자기 방식으로 꿈틀대며 살아가는 ‘생명’들이다. 그 생명은 길어야 백 년 남짓 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의 방식으로 기쁘게, 주체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일, 그것이 내가 예술교육가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일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개인의 기쁨들이 모여 공공의 선과 연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p.171에서 저자는 묻는다. “당신이 상상하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나의 답은 이렇다. 각자가 진심으로 원하는 일을 하며, 그 안에서 자신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는 세상. 그런 의미에서, 예술교육가로서 기쁘게 일하는 나의 하루하루가 민주 시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또 다른 응답일지도 모르겠다.
2025.11.6.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권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