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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가 일‘터’로

<놀이, 유년기의 예술> 5장~8장을 읽고_

by 사유무대

놀이의 역사가 일의 역사로
어린 시절, 내가 가장 몰입했던 놀이는 피아노 의자를 활용한 인형극이었다. 이야기를 만들고, 인형을 조정하며, 스탠드 조명을 활용해 방 안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공연을 하곤 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그때의 놀이에는 정해진 답도 없었고, 너그러운 부모님 덕에 끝내야 하는 시간의 제한도 없었다. 오롯이 내 방식대로 상상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선택한 일 속에서 그때의 놀이를 닮은 감각을 다시 느낄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놀이가 지금의 직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내 인생이 조각조각 분절되지 않고 연속성 있게 성장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 힘든 순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놀이의 역사는 삶에 확신을 주며, 일의 역사를 계속 써 내려갈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 된다.



구조화된 놀이, 잃어버린 자유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과거의 그런 놀이를 경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놀이 전문 학원, 디지털 기기의 발달, 놀이 중심 교육 정책 덕분에 겉으로 보기에 아이들의 놀이 환경은 더 풍요로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점점 더 구조적이고 제한적인 틀 안에서 노는 척만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러한 모든 놀이가 정해진 목표(입시, 성공)를 달성하기 위한 우회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부모나 교사가 만들어준 '안전한 놀이'에 갇혀 아이들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실패를 경험할 시간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다. 변칙과 비정형성을 기반으로 하는 놀이의 본질에는 다가가 보지도 못한 채, 제도와 돈으로 만들어진 '놀이'를 경험하며 어른이 된다. 이는 결국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의 삶과 직업 만족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창의적 사고와 자율적 문제 해결, 그리고 다양성이 중요한 사회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놀이의 본질이 사라진 환경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손실을 초래한다.



놀이와 일의 다리 놓기
아이들에게 다시 놀이의 본질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는 부모, 교육자,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 초등학교 시기까지는 아이들이 머무르는 모든 공간(집, 학교, 마을 등)이 진정한 의미에서 놀이터가 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더불어, 놀이를 바라보는 어른들과 나 자신에게 다음의 질문들을 던져보고 싶다.




*나는 아이들의 놀이를 시간 낭비로 여기지 않는가?
*나는 놀이에서 나타나는 즉흥성과 우연에 당황하지 않고 즐거움을 느끼는가?
*나는 아이들을 관찰하며, 개인의 흥미와 고유성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나아가 더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질문을 하는가?
*나는 놀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급히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가?
*나는 놀이 속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우쭐함, 좌절감, 두려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기다리고 있는가?





- 25년 1월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권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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