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UMIN HYUN Jan 03. 2021

부산 여행 (1/2)

스까묵기에는 아까워, 하나하나 찬란한 곳이 가득한 이 곳, 붓-싼

출발 


30년 남짓 살아가며 스무 번이 넘는 이사를 할 정도로, 그 누구라도 나의 삶에는 역마살이 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경우, 강원, 경기, 서울이라는 좁은 지역을 전전할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한국의 북부지역에는 조금씩이나마 일상적인 삶의 기억들이 묻어있는 반면, 영호남 지역의 대부분에는 일상이 아닌 일탈의 기억들이 강하게 남아있다. (물론 군생활을 했던 포항은 제외.) 


영호남의 수많은 지역들 중에서도, 부산이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은 내게 더 특별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락페스티벌에 참여하여 머리를 신나게 흔들어대던 다대포, 입대 직전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걸었던 달맞이길, 전역 직후 친구들과 동해안 일주의 기점으로 삼았던 사상, 한국을 떠나 일본에 정착 후 짤막한 휴가로 찾아 향수를 달래던 해운대 등, 부산은 매번 내게 새로운 매력들을 조금씩 내비치며 다양한 방법으로 나의 마음을 달래주던 도시다. 이번에도 무언가 비슷한 바람이 불었는지 나는 급작스레 부산에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튿날 아침,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다. 


이 사진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 어느 KTX역도 다 비슷해 보이긴 할 것이다.

피로가 상당히 쌓여있었는지, 자리에 앉아 부족한 아침잠을 채우기 위해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깊이 잠들어버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열차는 부산역에 도착하고 있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뭔가 모르게 서울역과는 미묘하게 다른 부산역의 공기가 느껴진다. 약간 더 높은 사람들의 톤 때문인지, 역사 군데군데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부산어묵의 향 때문인지, 혹은 그냥 나의 기분이 들떠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모든 것들은 나의 기분을 순식간에 여행 모드로 바꿔주었고, 이에 힘입어 나는 아침을 건너뛰어 평소보다 더욱 허기진 배를 채우러 나의 첫 행선지로 향했다. 



중구기사식당

입구 사진을 깜빡하여 퍼옴.

출처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부산은 기사식당에서도 밀면을 판다! 부산역 근처, 영주동에는 저렴하고 맛 좋은 기사식당들이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맛난 밀면을 먹겠다면 중구기사식당으로!"라는 글에 괜스레 현혹되어 이번 부산 일정의 첫 목적지는 중구기사식당으로 정했다. 


지도 상으로 보았을 때, 부산역을 나와 10분 남짓 걸으면 도착할 거리였기에 응당 도보로 식당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나 이가 상당한 오판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부산에는 수많은 구릉들이 있고, 기사식당이 위치한 영주동은 거의 산이라고 부르기에도 손색없는 높은 구릉에 위치해있었다. 2박 3일의 짐이 담긴 배낭을 메고 20분 정도를 걷고 나서야 나는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후라 그런지, 좁고 허름한 가게 안에는 동네 어르신 세 분이 밀면을 드시고 계셨다. 메뉴는 밀면과 비빔면, 단 두 개였고, 뭐 외지인이 언제나 그렇듯 나는 당연하게도 가장 유명해 보이는 밀면을 하나 주문하였다. 부부로 보이는 주인 내외가 각각 면을 삶고 밑반찬과 고명을 준비하였고, 5분이 지났을까, 맛깔나게 새빨간 양념장을 올린 밀면이 식탁에 올랐다. 

약간 퍼진 것 같아 보이는 면이지만, 특유의 찰기는 유지하고 있다.


맛만 놓고 본다면 뭐 조금 독특한 맛이 있는 괜찮은 밀면집이라 평할 수 있지 않을까. 기존에 먹어보았던 밀면들과 비교해 조금 더 삶아 과한 쫄깃함이 없는 부드러운 면과 기분 좋게 달짝지근한 육수, 양파가 아삭아삭 씹히는 매콤한 양념장이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5,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과 친절한 주인 내외로 하여금 집 앞에 있다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찾아올만한 가게가 아닐까 한다.   



Café NOON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오니 시간은 어느덧 한 시 반을 조금 넘기고 있었다. 어딘가를 더 둘러보자니 애매하고, 숙소에 바로 체크인하자니 이 또한 시간이 애매했기에, 소화도 시킬 겸 동네 구경도 할 겸 설렁설렁 숙소가 위치한 영도까지 걷기로 결심하였다.  


이런저런 가게를 구경하며 중앙동 골목을 따라 한 30여분을 걸었을까, 슬슬 갈증도 나던 찰나에 우연찮게 널찍하고 인적이 적어 보이는 카페를 발견하여 잠깐 쉬며 목을 축이기로 하였다. 밖에서 보았을 때는 그냥 굉장히 큰 카페인 줄로만 알았으나 들어가 보니 1층엔 카페가, 2층 위로는 게스트룸이 있는 호스텔이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투숙객들은 거의 없는 듯 보였지만, 이로 인한 정숙함은 도로의 소음과 열기로부터 잠깐 쉬러 들어온 내게는 도리어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다른 카페와 다르지 않을 평범한 메뉴 사이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골라 마시고 있으니, 동네 어르신 한 분이 타르트를 (아마도) 포장해가는 모습이 보였다. 굳이 전문 빵집도 아닌 호스텔에 딸린 카페에 와서 웃돈을 주고 타르트를 사는 모습 자체도 그렇지만, 왠지 어르신의 입맛에 맞지 않을 디저트를 사러 이 가게에 들어오신 그 모습이 너무도 생경했다. 근데 뭐 타르트를 원래 좋아하시는 분일 수도 있고, 지나가던 길에 소중한 누군가에게 줄 선물이 생각나 들어오신 것일 수도 있었기에, 나는 이내 나의 편협한 사고를 탓하며 잔에 남은 얼음만 아작아작 씹으며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라발스 호텔 

카페에서 나와 남쪽을 향해 조금 더 걸으니 영도대교가 보였고, 조금 더 걸어 다리 위를 지나고 있자니 저 멀리 내가 묵을 라발스 호텔이 보였다. 허름한 낚싯배들과 낡은 건물들이 야트막하게 펼쳐진 전경 사이로 우뚝 솟은 독특한 생김새의 호텔 건물이 자아내는 그 위화감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 다리 위에 서서, 이 느낌을 어디에서 또 느껴보았더라 하고 기억을 더듬고 있노라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세 시가 되어 체크인을 하러 호텔로의 발걸음을 서둘렀다. 

찍는 것을 깜빡하여 공식 홈페이지에서 퍼온 사진

다리 위에서 호텔 건물을 바라보며 느꼈던 그 위화감은 호텔에 입장함과 동시에 더욱 증폭되었다. 체크인 카운터가 위치한 로비 공간은 굉장히 좁고 층고 (정확히는 천정고)가 높은 데다 각종 할로윈 장식들이 더해져 마치 현대식 건축재를 이용하여 지은 고딕 건축물 같았기에 알 수 없는 불편함을 자아내었으나, 직원들의 나긋한 말투와 친절한 태도, 그리고 프로모션 패키지로 받은 트러플 발사믹 크림과 올리브 오일에 정신이 팔려 그런 불편함은 이윽고 사라지고 말았다.

묵었던 방의 내관과 창가에서 바라본 부산대교. 퍽 낭만적이진 못하다.

"방에 도착하니, 큰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부산대교의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와 같은 감상을 할 수 있었으면 했지만, 부산하게 움직이는 자동차의 소음과 너저분한 모습으로 정박해 있는 수많은 고기잡이 배들 때문인지 상상만큼 낭만이 가득한 공간은 결코 아니었다. 또한 회삿돈으로 해외 출장을 다니며 묵었던 5성급 글로벌 호텔 체인의 기준에 익숙해져서인지, 방 안에서 느껴지는 조잡한 배치와 저렴한 재질의 가구, 그리고 카페트가 아닌 딱딱한 마룻바닥은 내게 적지 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재정비 후 야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샤워를 하려 욕실 문을 연 순간, 나의 이 실망감은 그야말로 정점을 찍게 되었다. 욕조가 없는 것은 물론, 변기와 샤워 공간이 분리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 더해 오피스텔에서 자주 보이는 플라스틱 재질의 일체형 선반 샤워는 따로 언급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수압, 온수는 굉장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는 심각하게 숙소의 이동을 고민하였고, 고민 끝에 프론트에게 사정을 이야기 한 뒤 기존의 2박 숙박을 1박 숙박으로 바꾸고 내일 밤을 보낼 새로운 숙소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신선대 전망대 

다행히도 부산의 숙소를 추리는 과정에서, 라발스 호텔과 함께 결승까지 올라왔던 송정의 한 호텔에 빈 방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얼른 예약을 마친 뒤, 일몰 감상 스팟으로 점찍어 두었던 신선대로 향하였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한 15분 즈음 달려 신선대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택시에서 내려 등산로 입구를 찾고 있자니 또 한 번 굉장한 위화감이 나를 엄습해왔다. 승용차가 몇 대 주차되어 있긴 하였으나, 이상하리만치 인적은 없고 열댓 마리의 고양이들만이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고 내게 경계와 호기심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뭐 그래도 고양이는 귀여우니까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구경이나 할까-하였지만, 일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서둘러 정상을 향해 걷기로 다짐했다. 


잘 닦인 시멘트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신선대의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해바다의 수평선과 바삐 움직이는 부산항의 배들을 보니,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도 멋진 일몰과 야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해가 막 지고, 어둠이 더 짙게 깔리고 부산항의 조명이 더 밝게 빛나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남자가 정상에 올라왔다.  


신선대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항의 전경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다는 그는 서울말이 조금 희석된 부산 말씨로 혼자 온 내게 이런저런 말을 걸어주었다. 외지인인 내가 신선대를 찾아왔다는 사실에 상당히 놀란 그는, 부산에는 다른 멋진 곳도 많다며 현지인만이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허나 두뇌의 입력 기능을 최소한만 남겨 놓았던 상황이라 대부분의 정보는 휘발되어버렸다…) 



30분간 두런두런,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나눈 뒤 그와 나는 각자 갈 길을 가기로 하였다. 등산로는 조명도 없이 어두컴컴하여 길이 상당히 위험하였으나, 다행히도 유달리 달이 밝은 밤이었기에 이를 빛 삼아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였고, 버스에 올라탄 뒤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저녁식사 스팟으로 이동하였다.  

그 날은  달이 참 밝았다.



보수동 책방골목, 용두산 공원 

버스는 용호동, 남천동, 범일동, 부산역을 지나 마침내 자갈치역에 도착하였다. 본래 예정대로라면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저녁식사 스팟으로 이동해야 했으나, 호텔에서 나오기 전에 집어먹은 크래커 때문인지 아직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아 온 김에 보수동 책방골목과 용두산 공원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책방골목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거진 오후 여덟 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서점들이 닫혀있었다. 기념품으로 읽을 책을 사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나 느껴 보자 하여 좁고 기다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문득 어릴 때 살았던 이태원의 시장 뒷골목이 떠올랐다. (단지 이태원에서 팔고 있던 물건들은 중고책들이 아닌 빅사이즈 티셔츠, 온갖 짭퉁과 정체 모를 골동품들이었기에 그 분위기나 느껴지는 품격은 상당히 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서울에 남산타워 (였던 N서울타워)가 있다면 부산에는 용두산공원의 부산타워가 있다"는데,   실제 부산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지는 역시 미지수지만 근처까지 온 김에 올라가 보기로 결심, 국제시장을 지나며 씨앗호떡을 하나 사들고 용두산공원으로 향했다.  

관광객의 전유물, 갠지스강 씨앗호떡.
부산에 있는 충무김밥 전문점, 서울김밥. 혼돈의 카오스.
용두산 수문장. 부산엔 왠지 고양이가 참 많은 기분이다.

용두"산"이지만, 실제 높이는 조금 높은 구릉 정도기에 중앙성당 쪽 입구를 기준으로 5분 정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남포동 쪽에서 올라오면 정상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 수 있다.) 그리 높지 않아도 산은 산인지라, 부산시내와 부산항이 탁 내려다보이는 것이 꽤나 기분 좋은 곳이었다. 널찍한 테라스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캔맥주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급격하게 술이 땡겨, 서둘러 산을 내려가 다음 저녁식사를 위해 찾아둔 가게로 이동하였다.





달뜨네...아니고 멍텅구리...아니고 영도뼈다귀해장국 

고소한 고등어 초회와 맑은 청주를 즐기기 위해, 굽이굽이 난 언덕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버스를 타고 영도의 서쪽, 흰여울 문화마을 근처에 위치한 달뜨네라는 선술집을 찾아갔다. 허나 코로나로 인해 가게는 예약제로만 운영되고 있었을뿐더러, 재료도 다 떨어져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숙소를 옮기지 말고 하룻밤 더 자며 그 다음날 저녁을 노렸어야 했는데!) 


결국 숙소 근처로 이동하며 찾아두었던 멍텅구리라는 가게에서 문어숙회를 먹기로 하였다. 허나 가게 앞에 도착했을 무렵, 이미 가게는 만석이었고, 어쩐지 혼자 들어가서 먹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분위기인 것만 같아 이번에도 아쉽지만 다른 가게를 찾아야만 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웬 시장 골목을 지나게 되었고, 그냥 돼지국밥이나 한 그릇 든든하게 하려고 들어간 식당에서는 또 아니나 다를까, 이미 마감시간이어서 식사가 안된단다.  


밥 한 번 먹기 힘들군! 을 맘 속으로 되뇌다 보니 어느새 숙소가 코 앞에 있었다. 음식은 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대로 호텔에 들어가 편의점 음식으로 저녁을 때우기에는 뭔가 손해 보는 기분이었기에 아쉬운 대로 근처의 모텔촌에서 대충 식사를 하기로 결심하고 시뻘건 간판이 인상적인 영도뼈다귀해장국 집에 들어갔다. 


아마 이번 부산여행 중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한 스팟이 아닐까.

입장과 동시에 7천 원짜리 뼈다귀 해장국과 탁주 한 병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조기 구이와 계란후라이에 각종 먹음직스러운 반찬들까지, 웬만한 백반상보다 훌륭한 구성의 상차림과 함께 맑은 국물의 뼈다귀해장국이 나왔다. 보통의 빨간 국물 뼈해장국과는 다르게, 된장의 구수한 맛과 우거지가 듬뿍 들어간 국물은 입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감칠맛이 훌륭했다. 


단돈 만원에 부른 배와 알딸딸해진 기분으로 짭짤한 부둣가 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계획을 따라 걷다 급작스레 샛길로 빠져 만나게 되는 우연들이 아닐까-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하였다.  


라발스 호텔 조식 

체크인 직후 느낀 첫인상과는 다르게, 호텔에서의 잠자리는 상당히 편안하였다. (필시 좋은 매트리스 덕분일 것이다. 고로 침구에는 돈을 아끼면 안 된다.) 전날 밤에 술도 마셨겠다, 근처에서 맑은 복지리로 해장을 할까 고민하였으나 일단은 답사도 겸해서 부산에 온 것이니 호텔의 조식을 맛보기로 하였다. 


조식은 호텔의 꼭대기층인 28층에 위치한 카페&바에서 먹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한 방침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조식은 뷔페식이 아니라 한 상 차림으로 서빙되는 방식이었다. 뷔페를 좋아하지 않기에 한 상으로 나오는 조식에 조금은 기대감을 갖고 있었으나, 보통의 뷔페에서 먹을 수 있는 정도의 음식이 한가득 나왔기에 나는 또다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경관에 비해 맛은 영 별로.

음식 맛이 퍽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28층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즐기는 아침식사의 운치 때문인지 조식을 즐기는 그 30분이 라발스 호텔에 묵으며 보내는 가장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신기숲 

체크아웃 후 잠깐의 지체도 없이, 나는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로서 기대했던 신기숲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신기숲으로 향하는 길은 그야말로 멀고도 험난한 여정이었다. 소형차 두 대가 아슬아슬 지나갈만한 좁고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달리는 버스의 뒷자리에 앉아 있노라니 인터넷에 떠도는 글로 접했던 "외지인이 부산에서 버스를 처음 타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평탄하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프로 운전수 덕에 나는 무사히 목표했던 정류장에서 하차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며 또다시 약간의 등산을 하고서야 나는 마침내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소요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예상보다 빠르게 도착하였으나, 주변에 마땅히 기다릴 곳도 없어 보였기에 20분 정도를 카페 앞에서 기다리기로 결심하였다. 


입구 앞의 작은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자니 살살 불어오는 바람과 새소리, 이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염불소리 (신기숲 옆에는 송남사라는 절이 있다.)가 아우러진 시공간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웠다.  두세 개의 삶의 장면을 담아두었다 인생의 끄트막에 다시 꺼내 돌려볼 수 있다면, 필히 오늘의 경험은 그 안에 꼽힐 것이라고 확신을 하며 잠깐 동안이지만 일렁임 하나 없는 잔잔한 마음의 순간이 내게 찾아왔다.

 


뭐 하튼 그런 삼류 감상에 젖어들고 있자니 어느새 정오가 되었고, 이윽고 나는 그 날의 첫 손님으로서 카페에 입장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쑥과 관련된 라떼 메뉴가 간판 메뉴인 것 같았으나, 어쩐지 지금의 차분하고 가벼워진 마음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메뉴라는 느낌이 들어 가장 기본이 되는 차가운 핸드드립을 주문하였다.



내부는 마치 숲 그림이 가득한 미술관 같다. (우측 하단의 물체는 카페에 살고 있는 고양이의 침대라고...)

큰 창 너머로 보이는 푸르른 대나무 숲과 그 가지 사이사이에 퍼지는 햇살, 따뜻한 조명과 자연스레 낡은 느낌의 의자들이 어우러진 카페의 내관은 내게 있어 이상적인 응접실, 혹은 작업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 멍 때리고 있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훌쩍 지나가 있었고, 슬슬 배가 고파왔다. 아-결국 사람은 먹고 자는 것이 채워져야만 하는 동물이구나-라며 정신이니 마음이니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던 스스로에게 약간의 핀잔을 주고 영도에서 방문할 마지막 스팟인 선인장 식당으로 향했다.  


선인장 식당 

원래는 방문 예정 목록에 없었던 식당이었으나, 신기숲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우연찮게 본 식당으로 내/외관도 독특해 보이고 찾아보니 음식에 대한 평도 괜찮았기에 나는 이 곳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도 그렇고, 쓰이는 집기류 등이 일본에 살았을 적, 동네에서 종종 보이는 카레와 함박을 파는 음식점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약간의 향수를 느꼈다. 


10대, 20대의 여성이 굉장히 좋아할 법한 식당이란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만, 실제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연령층은 생각보다 다양하였다. 3대가 함께 식사를 하고 있거나, 중년의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는 등 나의 선입견에 또 한 번 빅엿을 날려주는 뭐 그런 광경이었다. 

문제의 난. 난 너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웨이팅이 좀 있었는지, 20-30분 정도 기다린 후에야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자그마한 개인용 화로에 올린 접시에는 함박과 난, 밥, 계란, 각종 야채와 와사비가 올라가 있었는데, 함박을 제외한 그 모든 것이 내겐 별로였다. 전반적으로 무난한 음식과 너무나도 어수선한 분위기와 소음 때문도 있지만,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싸구려 맛이 나는 난이었다. 코스트코에서 벌크로 구매한 난을 덜 데우면 이런 맛이 날까-싶을 정도로 난은 퍽퍽하고 밀가루 비린내, 혹은 미묘한 쓴 맛이 느껴졌고 다른 음식의 맛을 크게 해쳐버렸다. 


이전까지는 인스타용 음식점 중에서도 훌륭한 음식점들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으나, 선인장 식당에서의 경험을 통해 조금은 그러한 판단을 하는 것은 조금 더 조심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하고 반성하였다.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가파른 비탈길을 따라 내려와, 송정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덱데구르르 구를뻔


나머지는 너무 길어 2부로~

작가의 이전글 문경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