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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열시 May 09. 2020

발리 그린스쿨

11th Story _ 엄마와 딸의 아트로드 세계여행


자연주의는 불편함이 자연스러워질 때 알게 된다


 세계적으로 자연주의 생태교육으로 유명한 국제학교 그린스쿨 발리 캠퍼스 투어를 온라인 예약을 한 후 문제가 되는 것은 교통편이었다. 그린스쿨은 우붓 Ubud 중심가에서도 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꾸따 Kuta에서 그랩 택시를 타고 가도 돌아올 때는 택시를 부르기도 쉽지 않다. 숲 길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캠퍼스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결국 클룩 Klook으로 6시간 개인 가이드 승용차를 예약했다. 그린스쿨과 네까뮤지엄, 두 곳을 돌아보고 오면 딱 맞을 거 같았다. 그렇게 만든 일정대로 캠퍼스 투어를 향해 출발했다. 


 10시 30분 예약이었지만, 교통체증까지 고려해서 8시 30분에 출발한 게 실수였다. 1시간 일찍 도착했지만 보안요원이 입장을 시켜주지 않아 길가에 있는  학교 간이식당 테이블에서 잠시 쉬었다. 위아래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나무간판이 눈에 띈다. <숙이 김밥, 영혼을 위한 김밥 Soogi roll _ rolls for the soul과 한국 가정식 Homemade Korean food> 누군가에 의해 소박하게 만들어진 공간에서 김밥과 음료수를 사 먹을 수 있게 한 걸 보니, 5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쥐방울 드나들 듯했을 이 공간에 이야기가 많겠구나 싶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앞집 작은 개가 짖기 시작했다. 의자 옆에 빈 공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커다란 개가 또 짖는다. 검은색에 온 몸이 피부병이 생겨 이리저리 벗겨져 있다. 그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던 바짝 마른 숫탉이 함께 울어댄다. 서로 정신없이 울어대는 속에서 딸은 모기의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일순간에 여러 군데를 물리고 나니 딸이 울상이 된다. 딸은 모기 알레르기가 심하다. 크게 부풀고 염증까지 생긴다. 모기가 많은 곳을 되도록 피해서 다니지만, 이곳은 어쩔 수 없다. 숲 속이니까. 숲 속 학교 탐방을 내켜하지 않던 딸이 자신의 다리에 모기약을 바르며 무언의 부정적인 눈 짓을 보낸다. 


 이 말은 절대 이 학교에 다니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나도 발리가 너무 더워서 살기 힘들어...라고 응수했다. 이렇게 딸과 삐끗거리며 시작한 캠퍼스 투어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보낭에 안겨온 아기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기, 딸 또래의 초등학생들과 부모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 젊은이들이다.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은 다 같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선생님들일 확률이 크다. 연세가 있는 분들도 교육과 관계된 일을 하셨을 거 같았다. 


 나는 그린스쿨을 어떻게 알게 된 것일까? 아주 우연히 자연주의 생태교육을 추구한 그린스쿨의 창립자인 존 하디 Jonhn Hardy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고 홈페이지가 워낙 잘 되어있어서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홈페이지를 살펴보았었다. 한국 블로그에서도 이곳을 방문한 기록들을 읽게 되었고 발리에 오니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일요일이라 학교는 텅 비어 있다. 덕분에 블로그에선 아이들 수업을 받고 있는 교실은 들어갈 수 없다고 되어있었는 데, 텅 빈 모든 시설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자체 동력과 수질정화장치, 바이오에너지로 학교의 모든 시설이 유지된다고 하니, 학생들에겐 다양한 자연 에너지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참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그린스쿨_ 대나무로 엮어 만든 오픈형 교실


 대나무를 엮어서 만든 교실들엔 대나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작은 칠판과 서랍장이 전부였다. 바이오에너지를 위해 만든 재래식 화장실이 옆에 있어서 더위에 실려 더 강렬하게 퇴비 특유의 냄새가 계속 났다. 내가 느낀 건 제일 먼저 열악한 환경이었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에 가득한 교구들, 첨단 시설들, 아이들의 작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쾌적한 교실환경을 나도 모르게 자꾸 비교하고 있었다. 


 자연 생태주의 교육을 실천하는 학교로 세계 유명세를 타고 있는 그린스쿨의 입학을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린스쿨의 교육을 표방한 분교가 세계 여러 곳에서 오픈 예정이다.  한 시간 동안 교정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안내를 받는 내내 말문이 막혔다. 한 번도 이런 환경을 보지 못한 나는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다. 이곳에서 잘 지내는 아이들은 얼마나 다른 아이들일까?  이 불편함을 절대 불편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그린스쿨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죠?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아무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린스쿨 탐방객_ 대나무로 엮어 만든 거대한 다리 위를 걸어 강을 건넌다


 그린스쿨의 삶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곳이란 걸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의 탁자에 놓여 있는 어느 학생의 그린스쿨 공책을 들추어 봤다. 십자말풀이가 붙여있다. 영어단어를 익히기 위한 평범한 프린트물이다.  누군가가 놔두고 간 낡은 아동 실내화 한 켤레가 신발장에 놓여 있어서 한참을 쳐다봤다. 나도 모르게 한국에서 딸이 금요일마다 가져와야 할 실내화를 안 가져와서 주말마다 아이에게 " 때가 꼬질꼬질하게 붙은 실내화를 신고 다닐 거냐"라고 혼냈던 기억이 났다. 내 아이가 이곳에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는 순간이었다. 


 그 수많은 아이들의 가족들이 전 세계(현재 30여 개국)에서 찾아온 이곳은 과연 생태 교육의 지향점일까? 자꾸 머리가 복잡해졌다. 리셉션 장소 옆에 붙어있던 졸업생들이 진학한 유명한 학교들이 머리에 가득해진다. 결국 대학인 것일까? 생태학교를 다니는 것도  대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특이한 경력 사항인 것일까? 모두 같은 교육을 받는 공교육과는 다른 교육경력이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일까? 인공지능 로봇이 직업의 세계를 거의 차지하게 될 미래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자연 생태교육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곳 발리에 와 있는 걸까? 대체 나는 한국 교육의 어떤 부분을 인정하고 있지 않은 걸까? 그토록 오래 영어학원을 하면서 최근 3년간 사교육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내 직업에 심한 공허감을 느꼈고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무거웠다. 딸이 초등학생 3학년을 마치는 겨울, 2020년 1월에 결국 나는 사교육 시장에서 이탈하고 학원과 무관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무더위에 현기증이 난다. 잠시 그늘을 찾아 서있었다. 눈 앞에 미로 찾듯 숲 속 언덕길을 뛰어다니는 그린스쿨 아이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이들 교육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벽이 없는 저 텅 빈 그린스쿨 교실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상상하고 손 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게 하는 것일까?


 정교하게 잘 만들어진 교구를 활용해 수업을 하다 보면 그 교구를 잘 활용해야 하는 압박감에 매뉴얼만 쳐다보는 아이들이 많다. 어차피 매뉴얼도 없고 답지도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데, 자연 속에서 나뭇가지와 풀잎 만으로도 상상의 놀잇감을 만들며 하루를 보내면 왜 안될까? 배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없다면 우리는 배우는 것이 행복이고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모르게 된다. 


그린스쿨을 떠나면서 딸이 말한다. 

" 내가 다니는 학교가 훨씬 더 좋아. "


이 말은 이렇게 들린다.

" 엄마 내가 다니는 학교가 너무 좋아. 그러니까 걱정 마. 난 학교에서 행복해. "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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