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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Feb 24. 2021

자기 계발의 늪

더 이상 취미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럴듯한 취미를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취미라는 것은 본디 내가 좋아하고 즐겨하는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할 텐데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나 무난하여 전 국민의 공통 취미인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독서나 영화감상, 음악 감상 같은 것들 말고쉽사리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사실 취미라는 것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삶의 틈새에 꽃 피우는 시간의 공백을 채울 수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된다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좀 더 멋들어지고 그럴듯 보이는 취미를 찾기 위해 쓸데없이 힘을 빼는데 열심히였다.


고작 여름에 서핑을 몇 번 해본 것이 전부이면서 서핑을 취미라고 말하고 겨울에 친구들과 보드 몇 번 타본 것을 가지고 보드를 탈 줄 안다고 말하는 등, 취미가 나를 대변하는 어떤 상징인 것으로 착각하며 취미를 하나의 예쁜 포장지처럼 활용하곤 했다.


물론 완벽히 허세만을 부리기 위해 취미를 찾아 헤맨 것은 아니었다. 일종의 실용적인 측면을 고려하여 이것저것 살피기도 했다.


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잘하기만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득이 될 것이라며 선배들이 추천해주었던 배구를 배우러도 다녀보고 군대에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부려 본다는 탁구 자부심, 그 자부심에 불타는 친구들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탁구를 배우기도 했다. 몸짱이 되어 개인 프로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는 욕망에 개인 PT를 받아보기도 하고 앞으로 만나게 될 제자들의 얼굴을 그려서 학년말에 선물로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캐리커처 강의를 듣기도 했다. 단체 운동은 나와 맞지 않는 것인가 싶은 마음에 수영장과 복싱 체육관에 잠시 기웃대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취미에 대한 내 마음의 일부분이 허세였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한편으로는 정말로 내가 좋아서 일생을 살아가며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어떤 대상을 찾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마음에 드는 취미를 찾고자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삼 개월을 넘겨본 적이 없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재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취미를 찾아 헤매던 나의 여정은 취업과 함께 시작되었고 결혼 후 아이를 갖게 되면서 멈췄다.


생각해보면 취미를 찾고자 했던 이유가 정말로 취미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가만히 흐르는 시간의 공백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어색한 사람과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침묵의 시간을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처럼 비어있는 시간의 그 고요함을 오롯이 즐기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이것은 꽤 위험한 일이었다. 목표도 이유도 없이 그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시간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했으면서 스스로를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 계발이라는 또 하나의 톱니바퀴와 맞물려 멈추지 않고 나를 굴렸고 의미 없는 시간 속을 허우적대며 의미 있는 삶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과소비였고 충동구매였다.


현명하지 못한 소비를 하는, 그러니까 과소비 혹은 허투루 돈 쓰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던 내가 자기 계발이라는 상품에 현혹되어 무분별한 쇼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더 이상 이런 의미 없는 행위는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왔다. 평화를 찾아 헤맬 때에는 평화롭지 못하더니 평화를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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