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나의 생각을 꺼내어 보여준다는 것

by 정 호
내가 경험한 최초의 sns는 싸이월드였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단순한 감상을 남겼던 것이 내 인생 최초의 공식적 글쓰기였던 셈이다. 그것은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로 연결되었고 sns에서 자연스레 멀어진 지금에 와서는 브런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남들에게 나의 글을 보여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브런치에 작가 등록이 되어야만, 일종의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타인에게 나의 글을 공개할 수 있는 구조는 묘한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작가 등록이 되었을 때는 성취감마저 들게 했다. 한데 막상 작가 등록이 되고 나의 글을 공개할 수 있게 되자 그전에 아무 생각 없이 글을 끄적일 때와는 다른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비롯하여 여러 근심과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브런치에 글을 꾸준히 올리려는 마음을 먹고는 있지만 한편으론 언제까지 글을 올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 보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생각을 정돈하여 남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글을 쓰는 최초의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보려고 한다.


두려움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두려움이다.

특정분야에 종사하고는 있지만 그 분야에 관한 글만 쓸 예정도 아닌 데다 그 분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렵다. 그리하여 깊이도 없고 내공도 없는 흔하디 흔한 글이라는 비웃음을 살까 싶어 시작하기도 전에 두렵다는 생각이 먼저 머릿속을 헤집어놓는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받게 될지도 모를 비난 역시도 두렵다. 사람 사는 이야기에 정답이 어디 있느냐고 말하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워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아직은 익숙지 않은 것 같다. 때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라는 것이 취향의 문제가 아닌 절대적으로 틀린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런 두려움을 증폭시키는데 불쏘시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글과 삶이 다르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렵다. 나는 예수도 아니오 부처도 아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지만 때로는 말하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을 드러내는 순간 이 지점 역시 공격받기 쉬운 약점이 되어버리고 만다. 줄의 글로 인해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싶어 나를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자꾸만 변명을 늘어놓고 싶다


부끄러움


두려움 다음으로는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익숙지 않은 솔직함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랄까? 글을 쓴다는 것은 반드시 자기를 드러내는 과정이 포함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언어로 꾸며낸다고 한들 자신이 묻어나지 않는 글은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글쓴이 자신조차도 만족시킬 수 없다. 하여 글쓰기에 있어서는 솔직함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데 수많은 페르소나를 갈아 끼워가며 사회적 동물로써 살아왔던 내가 가면을 하나하나 벗어내며 자발적으로 민낯을 드러낼 생각을 하니 도저히 부끄러워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켜있는 생각을 제대로 정돈하지 못하고 서둘러 꺼내었다가 질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또 한 번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제대로 갈무리되지 못한 생각의 파편들은 부족한 표현력 때문일 수도, 생각의 뿌리 자체가 깊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돈되지 못한 표현 때문에 가벼운 글이라는 소릴 들을까, 혹은 힘을 너무 준 글이라는 소릴 들을까 글을 내놓기도 전에 벌써부터 부끄러워져 어딘가 숨을 곳을 미리 알아봐 두어야 할 것만 같다.


걱정


이제는 걱정이 된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글을 쓰며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작가들이 글 쓰기 전과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고들 말한다. 내가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순간 저 말의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예언이자 세상에 대한 선언과도 같다. 글은 말과 다르게 한 번 세상에 나오면 말 그대로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누군가가 나의 글을 근거로 삼아 언제든지 비판할 수 있도록 나의 삶에 배수진을 치는 것과도 같다. 자아의 해방을 위해 솔직한 글쓰기를 추구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나는 과연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이 되기는 한다.


나의 글로 누군가가 마음 상하진 않을까?

글을 쓰다 보면 필연적으로 주위에서 소재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네가 경험한 모든 것들을 수업의 정교한 도구로 사용하라"는 교육학자 수호믈린스키의 말은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글쓰기의 정교한 재료가 될 터인데, 그러다 보면 내가 쓴 글을 지인이 읽게 되는 경우에 본인의 이야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될 것이다. 항상 나의 주변에서 소재를 가져올 때에는 최대한 그 주인공이 드러나지 않도록 잘 다듬을 테지만 혹시라도 나의 섬세함이 부족하여 누군가의 마음이 상하는 일이 발생할까 싶어 걱정이 된다.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효율적인 예시자료일 뿐 결코 저격글이 되지 않기를 항상 유념하고 또 유념하고자 한다.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진 않을까.

나를 알아가고 자유를 도모하는 수단이 되어야 할 글쓰기가 오히려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되는 계기는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예술하는 사람들은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예술을 해서 우울해지는 것인지 우울한 사람들이 예술의 길로 빠지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다. 내면의 깊은 골이 있어야 퍼올릴 무엇인가가 고일 테니 말이다. 글을 쓰다 보면 좋지 않은 일을 다시 떠올리며 곱씹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잊고 지내던 옛 생각에 괜스레 센티해질 때도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아무래도 힘들던 시절의 내가 가여워질 것만 같다. 글쓰기는 그래서는 안되는데 걱정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면 당장 글쓰기를 멈추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외로움


외로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글을 쓸 때는 타인에게 나의 글이 어떻게 읽히는지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에, 보다 자유롭고 자기 검열 없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남들에게 보여주는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다면 힘이 나서 더욱 글쓰기에 매진하게 될 테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거나, 심지어 좀 읽어주세요 하고 쓴 글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을 때에는 허탈하고 외로운 감정이 생길 것도 같다.


사실 브런치를 시작하며 가장 고민이었던 생각은 두 가지였다.

지인들에게 알릴 것인가

알린다면 어디까지 알릴 것인가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솔직함의 담보 여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면식이 없는 타인에게 나의 글을 공개하는 것은 물론 걱정되는 일이긴 하지만 지인들에게 공개하는 것과 비할바는 아니다. 과연 나의 글을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교육을 말할 땐 동료 교사들로부터, 가족을 말할 땐 가족들로부터, 우정을 말할 땐 친구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자유롭고 싶었다


평온하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은 점점 단조로와지고 사람과의 만남은 점점 제한적으로 변해갔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었으나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한계라는 고루한 변명을 부끄럽지만 굳이 한 번만 더 인용하고자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찾은 자유와 해방의 방식은 글쓰기가 되었다. 글을 쓸 때 자유로웠다.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며 나와 마주하는 그 순간도 좋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나를 위한 행위였으며 몰입이 가능한 순간이었다.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 사춘기 시절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왜 사는가로 시작되는 질문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근원적인 질문이다. 고대 철학자들이 사유하며 나눈 무수히 많은 기록들로부터 우리는 답을 찾으려 애써 노력해온 조상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언제 존재하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생각하는 인간, 더 나아가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인간만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하여 나는 생각을 표출함으로써 존재하고자 한다.


그것만이 내 성장.


성장하고 싶고 더 나아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성장은 새로운 것을 익히거나 잘못된 것을 수정할 때 이루어진다. 새로운 것을 익히는 과정, 틀린 것을 고치는 과정, 둘 다 글쓰기를 통해 도모할 수 있다. 글쓰기는 무언가 새로 알게 된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익히도록 도와주고, 기존에 내가 잘못 알고 있던 것들을 타인의 피드백을 통해 바로잡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인간관계의 질적 성장을 바라기 때문.


그간 살아오며 기준을 남에게 두고 살았다. 쉽게 말해 갈등을 원치 않아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소리다. 평화로웠다. 사람 좋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주변에 사람도 적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피곤해졌다. 나를 잃어가며 관계를 유지했던 탓이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나니 인간관계의 운신 폭이 상당히 좁아져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망을 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모험이 있다.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누군가는 책을 통해, 누군가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새로운 모험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모험이 될 것만 같다. 두렵지만 설렘을 주고 언제든지 온 힘을 다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일.


이런 마음과 생각을 갖고 글쓰기를 시작하려 한다. 틈틈이 이 글을 다시 보며 생각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유지하고자 한다. 우연히 지나치던 걸음을 이 글이 멈추게 했다면 나의 생각과 함께 잠시 동행해 주길 바라며, 나와 함께한 시간이 당신의 세상에 작은 물결을 일으킨다면 아마도 그것은 나의 인생 최고의 찬사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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