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고향에 돌아온 군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정신건강을 돌보는데 힘쓴다. 치료에서 더 나아가 예방적 의료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건강한 사람들까지 지원하기 시작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현대가 치료의 시대로 접어든 출발점으로 본다. 예방과 치료를 위한 국가의 선의가 부모의 불안과 맞물려 새로운 위기 국면으로 한 세대를 내몰고 있다.
저자는 부모들이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설명할 때 도덕적 언어 대신 치료적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다고 지적한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동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영웅적 캐릭터가 적대적 반항장애나 품행 장애를 겪는 환자로 보이게끔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는 사회불안 장애를 진단받고 언행이 이상하거나 판단이 서툰 10대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분류된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는 우울증이고 신체활동이 서툰 아이는 실행 장애다. 편식하는 아이는 음식 회피증이라서 혼나지 않고, 셔츠 뒤에 붙은 텍 때문에 피부가 따갑다는 아이에게는 무시하라는 조언 대신 고급 면 소재 옷을 사준다. 복도 소음 때문에 못 자겠다는 아이를 위해 수면음(백색소음)이 나오는 기계를 설치한다.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 아이는 난필증이므로 교정하지 않는다. 진단 및 치료의 바다에 매몰된 탓에 부모는 아이의 문제 행동에 그럴싸한 이유를 갖다 붙여 그것이 교정해야 될 상태가 아니라 질환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게 된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치료가 보급될수록 질병 발생률과 중증 사례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청소년 정신건강과 관련된 분야는 오히려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989년 이래로 유방암 초기발견 및 치료가 늘어나면서 유방암 사망률이 낮아졌고 항생제 보급 이후 산모 사망률 또한 크게 낮아졌다. 치과치료가 대중화되며 이 없이 사는 미국인 수가 줄었고 아동 질병 예방을 위한 예방접종이 보편화되며 아동 사망률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불안 우울과 관련된 치료법이 발달할수록 청소년의 불안과 우울증은 급증한다.
질환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불안감 확산이 억제 됐는지도 모른다. 66p
미지의 존재 앞에서 불안이 확장될 때도 있고 확정된 존재 앞에서 불안이 확산되기도 한다. 원인 모를 전염병이 퍼질 때 그 원인과 증상과 대처법을 모르기에 불안하다. 반대로 각종 정신질환을 명명하고 너무도 세분화된 질환들에 종속될 때 그 불안은 보편화되기도 한다.
네 기분에 집중해 보라는 말은 아이의 불안을 제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행위는 행동 지향과 상태 지향성이 있는데 상태지향성을 지닌 사람은 자신에 대한 생각(상태)에 몰입한다. 그리고 그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을 촉구하기보다 사고의 덫에 빠져 좋지 않은 감정을 곱씹게 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네 기분에 집중해 보라는 말을 포함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우리를 속이는 열 가지 말을 제시한다. 그것들은 우리를 돕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아이들을 더 괴로운 상태로 밀어 넣는다. 그 열 가지 말은 다음과 같다.
네 기분에 집중해 봐
그 기억을 다시 곱씹어보자
네 최종 목표는 행복이야
네가 불편하다면 없애줄게
어떻게 애들끼리만 있게 놔둘 수 있나요?
이 아이에게는 심각한 병이 있어요.
문제가 있다면 약을 먹어야 해
어서 네 트라우마를 털어놓으렴
해로운 부모와는 연락을 끊어도 돼
무엇을 하든 먼저 허락을 구하렴
기억을 곱씹어보자는 말은 반추라는 우울증상을 가져오고 최종 목표가 행복이라는 말은 행복하지 않은 일상이 더 많다는 삶의 진실과 마주하며 우울 증상을 초래한다. 불편함을 없애주는 일은 아이들을 겁 많고 인내심이 부족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애들끼리만 놔두지 못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부모는 아동이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이로운 진짜 놀이를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셈이다. 아이에게 심각한 병이 있다고 진단하는 일은 낙인효과로 인한 부정적 자아를 심고 약으로 문제상황을 해결하려는 태도는 아이의 인지와 감정을 둔하게 만들어 자아 발견과 정서 발달의 기회를 박탈한다. 트라우마를 털어놓으라는 말은 사소한 고통조차 무시하는 아이를 만들어내고 자기 현실의 문제를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인식하게 하여 해로운 부모와 관계를 끊게 만드는 의원병을 불러온다. 이는 결국 자식으로 하여금 "엄마를 화나게 만들면 자기 부모랑 연락을 끊은 것처럼 나랑도 인연을 끊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심는다. 심리 치료가 가져오는 여러 문제상황들은 최종적으로 행위 주체성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손상시킨다. 권위자의 허락과 판단에 의존하며 살아온 청소년들은 결국 스스로를 믿지 못해 도전이나 시도를 하지 못하는 성인이 된다.
사회정서학습과 회복적 생활교육은 국내 국공립 교육기관에서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패러다임이다. 학생의 정서를 배려하고 보살펴 문제상황을 해결하고 정서적 뿌리를 탄탄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정서학습과 가해자를 가해자로 보지 않고 그 역시 문제가 있기 때문에 폭력적인 행위를 저지른 것이므로 인도적 차원에서 회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보는 회복적 생활교육은 인권 감수성과 맞물려 작동하며 그것이 무언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가르쳐야 될 것을 가르치지 못하게 만든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억울함을 학생 교육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느끼게 된 셈이다.
켈리는 뉴욕주 북부에서 공립 중고등학교 상담 교사로 7년간 일하다가 2021년 그만두었다. 제멋대로인 아이들이 날뛰는 난장판 같은 학교를 더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그녀의 코앞에서 문을 있는 힘껏 쾅 닫고 나가버렸고, 복도에서 성희롱이 담긴 농담을 그녀에게 던졌다. 기분이 내킬 때마다 교실 밖으로 나가 학교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정신 건강상의 이유로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모든 파괴적 행동이 용서되거나 노골적으로 환영받았다. 켈리는 학교 측에 항의했지만 문제라고 느낀 사람이 자신 뿐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됐다. '언제든 수업에 빠질 수 있는 권리' 같은 교육적 배려 덕분에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라고 주장하는 학생은 누구나 수업에 빠지고 상담 교사와 만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시스템을 필요에 따라 잘 활용했다. "애들은 주로 싫어하는 과목 수업을 받아야 할 때 그 방법을 이용했어요." 켈리의 말이다. -160p
오리건주의 여러 고등학교에서 사회 정서 학습 프로그램을 감독하는 크리스틴은 조절장애 증상을 보이는 학생 수가 적어도 2016년 이후로 급증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감정을 터뜨리고, 짜증을 부리고, 소리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울고, 자살하겠다고 위협하고, 선생님한테 욕설을 하는 등 형태도 다양합니다." -161p
이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수없이 관측되고 있다. 그것은 교권 침해로 확장되며 학교는 교육을 위한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교육적 행위를 수행할 수 없는 행위 불능상태에 빠져버린다. 교육을 집행할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준이 전무한 상태에서 학교와 교사는 행위를 수행할 의욕을 상실할 뿐 아니라 직업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느끼게 된다. 아이들을 트라우마에 빠진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인간에게 역경을 이겨낼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버린 것과 같다. 아이들을 역경을 겪으며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 사회의 모두가 아동기 트라우마라는 개념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 아이에게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찾아내려 안달이다. 누구나 어린 시절에 겪은 숨겨진 트라우마가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킨다. -181p
양이 득세하면 음이 꿈틀대듯 양육에 있어서도 정반합의 규칙성이 적용된다. 아동기 트라우마라는 개념은 개인의 책임을 면책시킨다. 현재 발생하는 문제 상황의 모든 이유를 아동기 트라우마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동기 트라우마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마음 읽어주기라는 육아 트렌드를 부상시켰다. 이로 인한 부작용이 청소년들의 걷잡을 수 없는 이상 행동을 발생시키고 그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애들은 맞으면서 커야 된다는 과거로의 회귀를 옹호하는 발언조차 서서히 세를 확장하는 듯해 보인다. 폭력과 폭언으로 아이들을 길러냈던 시절을 지나 배려와 온정의 양육이 한 시대를 관통했다. 이제는 그 둘을 넘어 냉철하고 지혜로운 양육이 필요한 시대로 진입할 시점이다.
포유동물의 가장 이타적인 행동은 자식을 위해 뭔가를 할 때 나타난다. 가장 폭력적인 행동도 자식을 지킬 때 나온다. 공감이 인간의 상호작용을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면, 내집단 구성원만 지나치게 세심히 보살피는 태도와 외부인에 대한 무관심 및 잔인함이 나타날 수 있다. - 245p
이 책의 핵심 문장이다. 공감이 어떻게 아이를 망치는지를 넘어 공감이 사회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할 때 우리 사회가 직면할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공감은 아이들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내집단 외부에 있는 모든 존재를 향해 독을 뿜어대며 서로를 할퀸다. 평화를 지향할 것 같았던 공감이라는 요소가 오히려 가장 파괴적인 상황을 불러일으키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다. 꽃은 흙밭에서 자라고 낡은 아치를 보강할 때는 하중을 늘린다는 저자의 말이 뇌리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