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추동물, 생물 다양성 손실 훨씬 심각해
지난 4일 미국 하와이 토지자연보호부(DLNR)는 마지막으로 남은 ‘하와이안 나무 달팽이’ 한 마리가 새해 첫날 사망함으로써 멸종됐다고 밝혔다. ‘조지’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달팽이는 14년 전에 실험실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보호를 받아왔다.
19세기까지만 해도 하와이에는 조지와 같은 종들의 달팽이들이 흔했다. 멀리서 온 이방인들을 환영할 때 이 달팽이 껍질로 만든 화환을 목에 걸어줬을 정도였다. 하지만 남획과 외래종의 침입으로 인해 하와이안 나무 달팽이는 멸종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급기야 하와이 정부는 1997년에 마지막으로 남은 10마리를 실험실에 옮겨 새끼들을 번식시켰지만, 다른 새끼들은 다 죽고 조지만이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오던 차였다.
유일한 ‘하와이안 나무 달팽이’ 조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DLNR
달팽이 한 종의 멸종이 뭐 그리 중요해서 뉴스에까지 나오느냐고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사실 코뿔소나 오랑우탄처럼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동물들도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가 조지의 사망에 더욱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무척추동물이기 때문이다.
척추가 없는 동물을 총칭하는 무척추동물은 전체 동물종의 97%를 차지한다.
포유류, 조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를 제외한 모든 동물군이 여기에 속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식물이나 새보다 무척추동물에서 생물 다양성 손실이 훨씬 더 많이 나타난다.
런던동물학회에 소속된 런던동물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무척추동물의 20%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움직임이 둔한 무척추동물일수록 멸종의 위험성이 더 높다. 심지어 과학자들이 그들의 존재를 미처 알기도 전에 많은 종들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런던동물학회에 소속된 런던동물원의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무척추동물의 20%가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Pixabay
생태계에 치명적 영향 미치는 무척추동물 멸종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발간하는 위협대상 종의 적색 목록은 종의 위협에 대한 중요한 참고자료다. 하지만 여기에서조차 척추동물에 많이 치우쳐 있으며, 무척추동물은 표본 사례에서부터 많은 부분이 배제돼 있다.
그나마 생물 다양성 평가에서 꽤 관심을 받고 있는 무척추동물 분류군은 꿀벌, 나비, 딱정벌레처럼 꽃가루를 나르는 수분 매개 곤충들이다. 이들은 매년 전 세계 식량 작물의 약 70%에 꽃가루를 운반함으로써 식량 안보에 중요한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개체수가 감소해 주목을 끌고 있는 꿀벌의 경우 세계 유수 작물의 90% 이상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수분 매개체다.
굳이 수분 매개 곤충이 아니더라도 무척추동물의 감소는 생태계의 먹이사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연구진은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한 열대림의 동일 장소에서 곤충 및 거미를 채집해 그 개체수를 약 40년 전과 비교했다. 그 결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그 지역에 서식하는 개체수는 최대 30~60배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멸종하는 무척추동물을 먹고사는 새, 도마뱀, 개구리 등 척추동물의 수도 똑같이 급감하고 있다. ⓒ Pixabay
더욱 심각한 문제는 그들을 잡아먹고 사는 새, 도마뱀, 개구리 등 척추동물의 수도 똑같이 급감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특히 곤충만 먹고 사는 일부 조류의 경우 개체수가 40년 전보다 무려 9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척추동물의 상당수는 땅 속에서 살아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토양 무척추동물의 다양성은 토양 침식을 제어하고 영양염 순환을 포함해 생태계 기능과 서비스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영양염 순환이란 식물이나 미생물에 의해 섭취된 무기 질소와 인이 사람, 동물, 식물의 생물학적 환경과 무생물적 환경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의 모든 생물은 영양염류가 이처럼 정상적으로 순환해야 생명을 영위할 수 있다.
지렁이가 좋은 예다. 지렁이는 인간이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분뇨를 정화해 땅을 기름지게 해주는 한편, 많은 종류의 새들을 먹여 살리는 좋은 먹이가 되기도 한다. 때문에 세계 최초로 고대문명을 일군 수메르인들은 이미 4000년 전부터 지렁이가 많은 곳에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척추동물의 혈액 속에 숨겨진 신기술 정보
한편, 우리가 보기엔 하잘것없는 무척추동물도 때론 신기술의 소재가 되어 그 가치를 발휘하기도 한다. 바닷물 속에서 선박이나 부두 구조물 등의 목재를 파먹고 사는 바다나무좀(Gribble)은 수 세기에 걸쳐 선원들을 괴롭혀온 장본인이다.
그런데 영국 요크대학 등의 국제 공동연구진은 몸길이 1~3㎜에 불과한 이 무척추동물이 바이오연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핵심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비밀은 바로 무척추동물만이 가진 헤모시아닌 속에 숨어 있었다.
고등동물의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은 헤모글로빈이지만, 갑각류나 연체동물 같은 무척추동물에서는 헤모시아닌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 위키피디아
고등동물의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단백질은 헤모글로빈이지만, 갑각류나 연체동물 같은 무척추동물에서는 헤모시아닌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적색을 띤 헤모글로빈과는 달리 헤모시아닌은 구리 원자를 이용해 산소를 운반하므로 푸른색이다.
연구진은 바다나무좀이 목재의 질긴 섬유소인 리그린의 단단한 결합을 헤모시아닌을 이용해 분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다나무좀의 소화기관에는 공생 미생물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흰개미 등도 목재의 리그린을 분해할 수 있지만, 그들은 소화계에 공생하는 미생물을 이용한다. 즉, 바다나무좀은 공생 미생물을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목재의 질긴 섬유질을 분해하는 유일한 동물인 셈이다.
바다나무좀의 헤모시아닌은 앞으로 목재 폐기물이나 기타 식물성 폐기물을 쉽게 분해해 바이오연료를 대량 생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생물종 다양성은 신기술의 훌륭한 소재나 난치병을 치료하는 미래 생명공학의 원천 기술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과학계와 대중이 조지 같은 무척추동물의 멸종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들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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