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로 진화
어쩌면 중국의 장자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을 통해 미래에 벌어질 놀라운 가상현실의 세상을 미리 접했을지도 모른다.
호접지몽이란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 어렵다고 말한데서 유래한 고사성어다. 현실인지 가상인지를 알기 어려운 모호한 경계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
기술이 발전하며 가상현실도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 ⓒ Visualise
어느 분야든지 마찬가지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상현실 분야도 진화하고 있다.
해당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가상현실이란 용어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에 대해 용어부터 개념까지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무너뜨릴 정도로 발전한 현재의 디지털 기술을 서술할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필요성에 의해 탄생한 개념이 바로 메타버스(metaverse)다.
초월이란 의미를 가진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용어로서,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metaverse)는 초월이란 의미를 가진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용어로서, 기존의 가상현실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주목받고 있다. ⓒ Pixabay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의 확장 개념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미국의 SF 소설가인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이 지난 1992년에 발표한 소설인 ‘스노우크래쉬(Snow Crash)’에서 처음 등장했다.
‘아바타(Avatar)’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해서 더 유명한 이 소설은,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아바타라는 가상의 신체를 빌려 활동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이 발표됐을 당시만 해도 생소한 개념과 텍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상상력의 한계로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다. 독자들은 SF소설이 그리는 또 하나의 배경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사라져가던 메타버스와 아바타가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3년의 일이다. 미국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가상현실 서비스인 ‘세컨드라이프(second life)’에 의해 메타버스와 아바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메타버스의 개념을 처음 선보인 세컨드라이프 서비스 ⓒ second life
세컨드라이프의 메타버스는 소설인 스노우크래쉬에서 등장하는 메타버스와는 근본적으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우선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면서, 가상의 공간이 얼마나 매력적인 공간인지를 느끼게끔 만들었다.
아바타로 변신한 사람들은 다른 아바타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생활했고, 때로는 경제적 인 활동까지 수행하며 돈도 벌었다. 특히 물리적 한계가 없는 가상의 공간이어서 사람들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순간적으로 이동하며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세컨드라이프라는 서비스의 명칭처럼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제2의 인생을 살며, 메타버스라는 공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누렸다.
당시 불었던 메타버스 열풍의 원인을 분석했던 노무라 종합연구소의 관계자는 “사용자의 분신인 아바타라는 캐릭터의 존재와 쇼핑이나 취미 등 다양한 가상 체험을 펼칠 수 있다는 점 등이 세컨드라이프의 인기 요인이다”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사용자의 분신인 아바타라는 캐릭터의 존재와 쇼핑이나 취미 등 다양한 가상 체험을 펼칠 수 있다는 점 등이 세컨드라이프의 인기 요인이다. ⓒ Pixabay
블록체인과 결합된 새로운 가상현실 서비스 등장
영원할 것만 같던 세컨드라이프의 인기도 아이폰이 촉발시킨 모바일 혁명으로 2010년에 접어들며 시들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디지털 단말기가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도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세대 디지털 기술의 총아로 불리는 블록체인과 융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메타버스는 새로운 형태의 가상현실 서비스로 거듭나고 있다.
새로운 메타버스 서비스의 대표주자는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다. 웹 VR 방식의 3차원 가상세계인 디센트럴랜드는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의 6배 정도 크기로 설계되었다.
메타버스와 블록체인의 융합으로 새로운 가상현실 서비스를 제공하는 디센트럴랜드 ⓒ Decentraland
부동산과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현실 서비스인 만큼, 디센트럴랜드의 부동산 거래는 현실세계와 유사하다. 도심지의 부동산 값은 비싸고, 외곽으로 나가면 저렴하다는 것이 디센트럴랜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1평방킬로미터(㎢) 정도의 땅이 우리 돈으로 6500만원 정도에 거래된 사례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디센트럴랜드의 관계자는 “가상의 공간에 있는 부동산은 암호화폐인 ‘마나’를 통해서 거래가 된다”라고 소개하며 “토지소유권도 블록체인에 의해 기록되므로 위·변조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권리가 확실히 보장된다”라고 말했다.
디센트럴랜드 관계자들은 부동산 거래 외에도 가상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콘텐츠를 제작하는 행위들이 비즈니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유적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나 어린이들이 즐겨찾는 놀이시설 같은 콘텐츠를 가상의 공간에 구현하고 입장료를 암호화폐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선보였던 ‘세컨드라이프’의 다음 버전이 아니냐는 질문에 디센트럴랜드 관계자는 “유사한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만큼 차이점도 크다”라고 강조하며 “가장 큰 차이점은 디센트럴랜드는 블록체인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 서버와 관리자가 없다는 점이고, 거래와 계약도 이더리움의 기반의 암호화폐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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