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려대와 연세대에서 대규모 부정행위 사건이 터졌다.
학생들이 AI 툴(ChatGPT)을 이용해 시험을 치르고,
그 답안을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공유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AI를 썼다’가 문제처럼 보이지만,
실은 시험 제도 자체가 이미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신호로 읽힌다.
AI가 이렇게 발전한 시대에
대학은 여전히 ‘시험지’와 ‘감독관’에 매달려 있다.
학생이 아니라 시스템이 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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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사이버대학을 다니고 있다.
그는 강의를 ‘틀어만 놓고’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줌으로 진행되는 자격증 강의나 온라인 연수에서
집중이 끊어지는 경험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다.
편하긴 하다. 그러나 머리에 남는 건 없다.
결국 자격증만 남고, 지식은 남지 않는다.
지금의 대학은 ‘가르치는 곳’이라기보다 ‘학위를 판매하는 기업’에 가깝다.
학생은 학위만 원하고, 대학은 등록금만 원한다.
서로가 서로의 타락을 방치하는 구조다.
이 4년은 지식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졸업장을 사기 위해 소비되는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
“가르침이 없는 배움의 연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건 개인에겐 기회의 손실이자 사회 전체에겐 자원의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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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똑똑해질 수 있다”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AI는 평준화를 만든 게 아니라 양극화를 가속시켰다.
상위권은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다.
하위권은 AI를 배우길 포기하고 현재의 생활만을 유지한다.
그리고 그 사이, ‘중간층’은 증발한다.
그 누구에게도 두드러지지 않는 존재. 평범함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는 사람은 이젠 ‘평범’이 아니라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 인사담당자는 말했다.
“요즘은 모든 지원자가 AI로 자기소개 영상을 만든다.
다 완벽해서 결국 외모와 학벌로 뽑게 된다.”
AI가 만든 역설이다.
‘모두가 똑같이 똑똑해진 세계’에서
인간은 다시 원초적이고 비이성적 기준으로 돌아갔다.
누가 더 예쁘고 잘생겼는가, 누가 더 명문대인가?
결국 “AI가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 게 아니라, 인간을 더 가혹하게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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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학은 AI를 막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학생을 한 강의실에 몰아넣고
종이 시험지를 배부하고, 조교들이 감독한다.
하지만 이건 메일이 있는 세상에서 해킹이 겁나 손편지를 쓰게 하는 꼴이다.
한 교수의 인터뷰를 보면 “학생들이 학교의 명예를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부정행위를 못 하게 만드는 게 교수의 역할이지, “학생의 양심에 기대는 것”은 직무유기다.
많은 교수들은 여전히 ‘예전 방식으로 버티며 정년을 맞이하려는 사람들’이다.
이제 교수의 역할은 ‘지식을 가르치는 자’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구분하는 감별자’로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대학도 이미 이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점이다.
학생을 제적시키거나 F를 주면 등록금이 줄어든다.
그래서 학교는 점점 학생을 ‘고객’으로 대한다.
교육기관이 아니라, ‘유지기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대학의 종말은 멀지 않았다.
교육의 중심이 아닌, 논문을 생산하고 연구를 하는 연구기업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학생들은 대학이 아닌,
현장과 경험의 장에서 진짜 배움을 찾아야 할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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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모든 답을 아는 시대,
배움은 점점 더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AGI(일반인공지능, 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가 등장하면
신입 세대는 ‘배움을 통한 성장의 기회’조차 빼앗길 것이다.
일을 배우기도 전에 일이 사라지는 사회, 지식을 배우기도 전에 지식이 업데이트되는 사회.
배움의 공간이 사라진 사회에서 젊은 세대는 방향 감각을 잃는다.
이제 대학은 더 이상 지식의 공급처가 아니라, 지식의 무덤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덤 위에서,
우리는 여전히 ‘시험’과 ‘학위’를 붙잡고 있다.
AI가 모든 답을 아는 시대에,
인간은 다시 ‘어디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를 묻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혼란의 시대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