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알아본 방어기제

철수와 함께 알아보는 정신분석 이야기

by 김수철


광복절 연휴 오랜만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왔습니다.

지킬 앤 하이드를 보면 언제나 묘한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겉으론 젠틀하고 도덕적인 의사 지킬이, 어느 순간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하이드로 변모하는 모습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로만 보이진 않습니다.

정신과 의사로서 저는 이 극을 볼 때마다 인간 내면의 무의식 구조와 심리적 방어기제를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분열(splitting)’이라는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눈에 띕니다.



분열: 흑과 백만 존재하는 세계


정신과적으로 아이가 약 3세 전후에 “대상항상성(object constancy)”을 획득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엄마는 나를 버리지 않는다’, ‘보이지 않지만 엄마는 가까이에 존재한다’ 등 세상 속에서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 안정된 믿음입니다. 이 과정을 잘 통과해야 사람을 ‘좋은 부분과 나쁜 부분이 함께 있는 하나의 전체’로 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 발달이 미숙하게 머무르면, 세상을 흑백논리로만 바라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완전히 좋은 사람, 또 다른 누군가는 철저히 나쁜 사람으로만 나눠버리는 것이죠.

이를 분열(splitting)이라 부릅니다.


이 방어기제는 순간적인 불안을 줄여주고 좋은 느낌만 붙잡아 두는 데는 유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대가가 따릅니다. 관계에서 상대방을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작은 갈등에도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곧 경계선 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나에게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등등 우리는 대인관계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미묘한 기류를 읽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분열을 통해 이 사람을 마냥 좋은 사람으로 생각해 버리면, “이 사람이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거죠.



지킬은 왜 하이드가 되었나?


극 속 지킬은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하이드’라는 다른 존재로 완전히 떼어내 버립니다. 이는 사실상 회색지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의 극단입니다.


삶에서는 수많은 회색지대가 존재합니다.


예컨대,

* 한밤중 차가 없을 때 신호를 무시하고 길을 건너도 될까?

*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도 괜찮을까?

* 친구가 괴롭힘을 당할 때 개입해야 할까, 애써 눈감고 넘어갈까?


이런 순간마다 우리는 뚜렷한 정답 대신, 애매한 선택지와 마주하게 됩니다. 성숙한 어른은 이런 회색지대를 고민하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며, ‘불완전한 답’ 속에서 균형을 찾습니다.


하지만 지킬은 그 균형을 거부합니다. 그는 ‘선한 나’와 ‘악한 나’를 융합하려 하지 않고, 외과적 수술처럼 잘라내 분리해 버립니다. 그 결과 ‘하이드’라는 파괴적 인격이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지킬도 하이드도 뒤틀려 있다


관객들은 흔히 하이드를 ‘나쁜 놈’으로, 지킬을 ‘고뇌하는 선한 의사’로 보지만, 사실 지킬 역시 결코 건강하지 않습니다.


* 그는 사회성이 떨어지고,

*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하며,

* 자기 신념만이 옳다고 고집합니다.

* 무엇보다 자기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이상화해 버립니다.


즉, 지킬의 문제는 단순히 ‘욕망을 억압했다’가 아니라, 욕망과 도덕, 선과 악을 융합하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이 실패가 바로 ‘분열’이며, 정신과적으로는 인격장애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는 작은 지킬과 하이드


사실 지킬과 하이드는 무대 위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완벽한 사람’으로 이상화하다가, 실망하는 순간 그를 ‘최악의 인간’으로 저주하기도 합니다. 또는 내 안의 공격성을 인정하지 못해, 그것을 타인에게 투사하기도 하죠.


삶의 성숙이란, 이 양극단을 조금씩 융합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흑과 백 사이의 수많은 회색지대를 인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나와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 말입니다.


지킬 앤 하이드를 본다는 건 결국, 우리 모두 안에 있는 ‘분열된 자아’를 마주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이전글듣기 싫은 소리를 삼키게 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