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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May 03. 2021

스칼렛 오하라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

스칼렛은 왜 그렇게 애슐리에 매달렸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매력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지만 흑인을 그리는 방식에 있어서는 전면적인 비판을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인으로만 등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스칼렛(비비안 리 분)은 하녀 프리시가 겁에 질려 제대로 행동하지 못하자 팔아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백인에게 흑인은 자신을 키워준 유모임에도 자신들이 부리는 하급 계층에 지나지 않는다. 흑인을 다루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스칼렛 오하라라는 희대의 난년(..)을 낳은 작품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이름도 스칼렛 오하라에게서 따왔다고 하고, 비비안 리가 언제나 스칼렛을 연기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다가 실제로 캐스팅된 일화 또한 유명하다. 스칼렛 오하라는 비판받을 지점도 있지만 19세기의 인물로서 놀랄만큼 급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여성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스칼렛을 지인으로 알고 지냈다면 가까이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지켜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스칼렛이 매력적인 인물인 것은 거부할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그럼에도 스칼렛에게 품었던 한 가지 의문은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스칼렛은 왜 그렇게 애슐리에게 집착했을까.


학부시절 들었던 영화 수업에서 교수님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학창시절 관람하고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기억을 공유해주신 기억이 있다. 영화가 책을 읽고 상상한 그대로였다고. 하지만 영화를 사랑한 교수님조차도 애슐리 역은 좀 아쉽다고 말씀하셨을 만큼 영화 속 애슐리는 스칼렛이 왜 그토록 목을 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매력이 없다. 책을 읽고 상상했던 애슐리는 좀 더 젊은 미소년형 얼굴이었으나 영화 속 애슐리(레슬리 하워드 분)는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 분)보다도 나이들어 보이는 아저씨였다. 스칼렛은 수많은 구혼자를 뿌리치고 자신을 원하지 않는 애슐리에게 집착하며 애슐리가 멜라니(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분)와 결혼하자 홧김에 찰스 해밀턴과 결혼해버린다. 스칼렛이 애슐리에게 매달렸던 이유는 결국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없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부잣집 자제에 잘생겨서 인기가 많은 레트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으면서도 스칼렛은 몇 년이 지나도록 애슐리를 잊지 못하지만 정작 애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자 애슐리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스칼렛에 지쳐 떠나가는 레트를 붙잡지만 레트는 문을 열고 나가버리고 스칼렛은 언제나 그랬듯 다시 자신을 다잡고 레트를 돌아오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스칼렛에게 변명할 여지를 주자면 영화와 소설 모두에서 드러나는 서사 이전에 애슐리와 스칼렛의 사이가 어땠는지 보는 이들은 알기가 어렵다. 정말로 애슐리가 스칼렛이 오해할 만큼의 애정표현을 했던 것인지 스칼렛이 혼자 착각한 것인지 판단할 만큼의 전사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보면 애슐리는 스칼렛에게 키스하고 사랑한다 속삭이는 것을 보면 애슐리도 스칼렛을 좋아했지만 결혼 상대로는 영 아니라고 판단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멜라니와 결혼하고 스칼렛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지만 아내가 된 멜라니에게 부정을 저지를 수 없어 스칼렛에게 가지 않았다고 해석할 여지도 다분하다. 어쩌면 스칼렛이 애슐리에게 끌렸던 이유는 외모만 보고 연인이 있는데도 스칼렛에게 홀랑 넘어가는 다른 구혼자들과는 달리 애슐리가 연인에 대한 정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애슐리에게 주구장창 매달리던 스칼렛이 결국 레트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이유도 여성편력을 자랑하던 레트가 스칼렛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후부터는 스칼렛에게만 헌신했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기 때문이다. 레트에게 벨 와틀링이 있긴 했지만 레트에게 벨은 상담사였을 뿐 그 이상의 감정으로 발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벨을 통해 스칼렛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있으면 레트가 스칼렛보다 성숙한 인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기실 레트가 말했듯 레트와 스칼렛은 매우 닮은 인물이다. 서사 내내 스칼렛에게 사랑한다 말하는 레트에게서 진심이 느껴질 때가 드물 정도고 오히려 스칼렛보다는 스칼렛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보니 블루에게 더 진한 애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레트가 스칼렛을 사랑했던 이유는 스칼렛이 자신과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칼렛이 손에 넣기 어려운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구혼자를 뿌리치고 가질 수 없는 애슐리에게 매달리면서도 자존심이 강하고 돈을 위해서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결혼도 마다하지 않는 스칼렛은 돈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살 수 없는 여성이다. 스칼렛이 전쟁을 거쳐 황폐해진 남부에서 가난으로 고생하자 언제든 스칼렛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레트는 스칼렛이 돈을 위해 두번째 결혼을 감행하자 자신이 아니라도 돈을 위한 결혼을 해줄 수 있는 남자는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스칼렛의 두번째 남편이 죽자 결국 스칼렛에게 청혼한다. 레트는 스칼렛을 구해준 적도 많고 스칼렛의 비밀도 지켜주었지만 스칼렛의 마음을 얻지는 못한다. 레트와 스칼렛은 불꽃튀는 결혼생활을 이어가지만 서로에게 진심이 담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관계까지 발전하지는 못했고 결국 스칼렛에게서 레트가 떠나가는 원인이 된다. 스칼렛과 레트의 이별은 스칼렛에게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며 성숙한 대화를 시도하려 하지 않았던 레트에게도 책임이 있다.



남성편력으로만 보자면 스칼렛은 문제가 많은 여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쟁을 거친 스칼렛은 성인으로 성장한다. 전쟁터에서 다쳐서 실려온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로 활약하기도 하고 의사도 없이 멜라니의 아이를 받아 타라까지 이송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스칼렛은 무너진 남부와 가정을 복구해낸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자매들은 아직까지 결혼에만 매달리고 있고 아버지는 정신줄을 놓은 상황에서 스칼렛은 가장으로 활약한다. 타라의 흙을 움켜쥐고 다시는 굶주리지 않겠다 울부짖듯 다짐하는 스칼렛은 그 자체로 전사다. 하인들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칼렛은 적절한 지시를 내리고 산모인 멜라니를 돌본다. 배고픈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끌어모아 목화농장을 재건하는 스칼렛은 흑인의 노동으로 대표되는 목화를 손수 딴다. 타라에 매겨진 세금을 레트로부터도 구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동생의 연인을 빼앗아 세금을 지불하는 스칼렛은 수단에 있어서는 비판받을 여지가 다분하지만 어떻게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 가장의 위치에 올랐다고 볼 수도 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스칼렛에게서 묘한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스칼렛의 강인함 때문일 것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연애 소설이기도 했지만 인생의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강인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애슐리를 향한 스칼렛의 집착조차 스칼렛만 보면 홀려버리는, 지조라고는 지지리도 없는 남성들과 적당히 결혼해 살던 동시대 여성들과는 달라보인다. 스칼렛은 비뚤어진 집착이었을지언정 애슐리를 얻어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레트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무너지는 대신 타라로 돌아가 레트가 돌아오게 하겠다는 결심으로 서사를 마무리한다. 재능이 한 개인에게 주어진, 다른 이들과는 구별되는 어떤 것이라면 스칼렛의 재능 중 하나는 미모였고 생존을 위해 스칼렛은 자신의 재능을 극한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지인으로 알고 지냈다면 극혐했을 이런 캐릭터를 멜라니는 흐린눈(..)으로 감싸안고 스칼렛 또한 멜라니에게 질투섞인 애정으로 보답하기도 한다. 길고 긴 소설을 읽으면서도 결코 지루할 새가 없었던 이유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인생을 개척해 나가려는 스칼렛의 용기 때문이었다. 또한 연애와 결혼에 매달리던 여성이 주로 주인공이었던 당대 소설과는 다르게 여자가 사업이라니 하는 (개)소리를 들어가면서도 사업을 재개하고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에 목화가 잘 팔릴테니 목화 농장을 키워야겠다고 말하는 스칼렛의 사업자적인 면모 또한 독자를 놀라게 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스칼렛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보기도 어렵지만 새드엔딩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전쟁의 시기를 젊은 시절을 통해 겪어낸 스칼렛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기지를 발휘하고 사랑에 목매면서도 책임감을 잃지 않는, 인생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결코 놓아주려 하지 않았던 여성이다. 그리하여 스칼렛은 비극처럼 보이는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라며 비극의 자리를 쉽사리 내어주지 않는다. 어쩌면 애슐리의 말대로 스칼렛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은 타라이며 애슐리와 레트와 멜라니를 모두 잃고도 타라를 잃지 않았기에 언제든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재개봉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무려 20세기가 되기도 전에 현대의 그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여성의 인생사를 다시금 스크린에 펼쳐 보였다.


*이미지 출처는 모두 네이버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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