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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랑, 둘이서만? 영국에서, 살만했어?

어쩌다 히드로에 도착했다.

by Scribblie

인천공항의 햇살은 낯설었다. 공기는 깨질 듯 차가웠다.


2020년 1월 18일. 아직 코로나의 정체도 채 모르던 때 그렇게 영국에서 돌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엔 코로나가 창궐하였고, 아직 유럽은 본격적 발병이 시작되지 않았던 때였다. 모두들 영국에서 괜히 돌아왔다고들 안타까워해주었으나, 영국을 아는 만큼 아이와 그곳에 있지 않음에, 한국에 있음에 감사해했다. 아니나 다를까 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기대했던 대로 영국다운 면모를 보이며, 코로나 세계 1위 사망률을 기록하고 환자수도 기암 할 만큼 늘어났으며 대응 방식도 참 영국스러웠다.

영국에서도, 돌아와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유럽 여행 많이 다니셨어요?"였다. 어떤 무용담이라도 늘어놓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의 주재원들은 숨겨놓은 희귀 포켓몬을 잡듯, 구글 지도에 새빨간 공이 다닥다닥 붙도록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한국 주재원들은 영국에서도 부르주아급이다. 영국 서민들도 바다 건너 값비싼 유럽 여행을 가는 것은, 서울에서 강화도 가듯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직장맘이 아이와 둘이 살며 여행을 다닌다는 것은 여행보다는 고행에 가까운 게 틀림없고, 살림하기에 빠듯한 런던 서민일 뿐이었다. 그저 영국인들이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위해 주로 찾는 곳들을 바지런히 다녔다.

영국에서 살아봤다고 다 아는 척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물음표를 확인하며 살아왔다. 그 물음표는 그곳에 정착해야 할지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누구나처럼 ‘영국 이민 가면 교육 헬조선 드디어 탈출!!’인 건지 가장 궁금했고, ‘내 아이만큼은 영국 원어민처럼!되려면 대체 뭘 시키면 되는 건지’, ‘행정 교본같이 여겨지는 영국에서는 내 집 마련 걱정 제로!?’인 건지, ‘공공의료 성공신화 영국의 의료는 판타스틱한 지??’, ‘젠틀한 영국 영어, 1-2년만 살면 늙은 나도 장착할 수 있는지?’, ‘영국에 장단기 머무르면 뭘 꼭 해야, 금 같은 시간도, 진짜 금도 안 아까운 건지?’ 나도 이 모든 게 궁금했다.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만났던 분들을 통해 알게 된 건, 유학생활을 해도, 주재원으로 그곳에서 4-5년씩 일하며 살아도, 어쩌면 이민을 가서 몇십 년을 살아도 온전히 그곳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유학생은 학교 생활, 학생으로 서바이벌하는 노하우, 그들의 향유 문화만큼은 빠삭하겠고, 주재원들은 여행부터, 주재원 전업맘 사회의 생활과 그들만의 자녀 교육 노하우까지 영국인들보다 전문가 수준이겠다. 제각기 각자의 조건에서 최대한의 경험을 하는 것일뿐,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도 살아보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 사회에서 겉돌다 오고 싶지는 않았다. 가장 보통의 영국인처럼 살아보고 싶었다. 그냥 32개 런던의 지자체 중에서도 Outer 런던의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서 영국인처럼 일하고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그런 것. 그들이 하는 것은 편견 없이 바라보고, 어색해서 그 자리에서 당장이라도 증발해버렸으면 싶더라도 웬만하면 다 따라 해 보는 것. 그다음에 해석하는 것. 그래서 마지막엔 머리보다 몸이 먼저 이해하는 것.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아무것도 모르던 영국 어린이를 벗어나, 반항기 가득한 사춘기 청소년처럼 울분을 터뜨리며 속으로 진창 욕을 하기도 했던 때도 있었다. 30분 만에 갈 길을 2시간 동안 돌아가며 "이런 개인의 기본권 씹어먹는 부르주아 중심의 멍텅구리 시스템 같으니라고"하면서 말이다.

아마, 누군가의 말처럼 '대한민국 내 유일하게 영국 지자체에서 일해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보통의 사회 틀을 운영하는 그곳에 깊숙이 들어가 영국 사회를 보고, 영국의 가장 보통의 삶을 살며, 그때 썼던 글들에 대해 2년 만에 도착한 편지처럼 답해본다. 그 멍텅구리 같음에도, 아니 그 멍텅구리 같음이 그리운 영국에 대해...


||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마음을 4개의 캐리어에 담아 떠났던 짐은 14개의 항공 수화물로 불어나 돌아왔다. 아이와 단둘이 귀국 정리를 하고 돌아오는 것도 큰 도전이었다. 비행기에 탔을 때 그 안도감이란...




어쩌다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할 줄 아는 외국어는 수험영어뿐, 유럽의 영문권=영국" 아메바 같은 단순 로직이 나를 히드로 공항에 내려놓았다.


그 영국 행의 시작은, 히드로 공항에 도착하던 날로부터 2년 전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연히 읽게 된 '일곱 살 여행'이라는 책을 덮으며, '아이 초등학교를 입학 전에 나도 저런 멋진 인생 경험을 아이에게 줄 수 있을까...'라는 콩알만 한 희망을 가슴에 묻었다.

유럽에 살고 싶다. 그런데, '할 줄 아는 외국어가 20년 전에 그만둔 수험 영어뿐이네?, 영문권=영국' 그런 아메바 같은 단순 로직이 그 시작이었다. 가진 게 없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건 뼈를 갈아 넣는 노력으로 공부해서 대학 가는 게 내 학창 시절의 전부였다. 그러니 제2 외국어는커녕 영어조차 백색 소음일 뿐이니 유럽에 가서 살아보고 싶다면 그나마 선택지는 영국 딱 하나였던 것이다.



인종차별 의심병이 훅 올라오는 입국심사 2시간은 기본, 체념=행복


히드로 공항의 낯선 냄새.. 낯선 빛깔.. 낯선 브랜드 상점들... 이국적이기 그지없던 히드로... 지금도 그 강렬한 대비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처럼 자동입국 심사가 되기 전이었던지라, 2시간은 우습도록 기다리는 게 유명한 히드로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EU 입국심사에서 쑥쑥 지나가는 유럽인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타국 살이 하다 보면, 근거도 없이 뻑하면 도지는 '인종차별 의심병'이 훅 올라올 정도로 말이다.

그런 히드로 공항이, 머지않은 훗날 안도감을 주는 곳이 될 줄, 도착하던 그날은 몰랐다. 유럽을 나갔다 돌아올 때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익숙한 영국 발음과.. 익숙한 냄새.. 익숙하고도 안전한 느림.. 입국 심사 대가 멀리 보일 때부터 그 안도감에 마음과 몸이 풀리는 그런 곳이 되었다. 어디든 내 집이 있는 곳이면 그럴 수도 있지만, 영국은 한번 살았던 사람은 다시 살고 싶어 하는 곳이라는, 그리고 런던 인구의 50%가 이민족이라는 건 단순히 내 거처가 거기 있어서만은 아닌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젠 자동입국이 되니 2시간씩 입국심사 줄을 기다려야 하지 않는다!


안녕? 런던 시골, Outer London.


한인 택시에 올라타고 인종차별 의심병이 차오르던 히드로 공항을 뒤로하고서야 한숨을 돌렸다. 그제야 차 창 밖이 내다 보였다. 그 모습은 유럽 본토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간판에 쓰이는 글자체와 색감이 프랑스와는 달리 볼드하고 원색적이었다. 그 투박한 맛은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서 뉴욕으로 이동할 때 보았던 바로 그 미국맛이었다. '역시 영국은 미국과 가깝구나'생각했다. 나중엔 일본과 우리나라 같은 묘한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뭔지 모를 미국맛 엉국

30분 남짓 지나니, 파랗게 어둠이 내린 영국의 도시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직관적으로 보스턴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 여행에서 가장 사랑했던 그 보스턴. 뉴욕에 비해 정적이면서 안정된 느낌, 오래된 타운하우스형 주택들이 낭만적으로 늘어서 있던, 2개의 싸구려 캐리어가 그 고즈넉한 평화를 요란하게 깨뜨렸던 그 마을. 지금도 보스턴을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그도 그럴 것이, 보스턴은 17-18세기 영국 청교도가 건너가 영국 식민지를 건설했던 초창기 미국 도시로, 보스턴 차 사건이라던지 영국의 영향 아래 미국과 영국 간 미묘한 힘겨루기의 장이었다. 15세기 튜도시대 건물부터 빅토리안 양식까지, 박물관 같은 건물들에서 진짜 사람들이 흔하게 걸어 나오는 Outer 런던에 들어섰으니 시공간 착각이 일어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는 지도 모른다.

우버를 부를 수도 있었겠지만 한인 택시에 몸을 실었을 때 그 안도감을 생각하면 한인택시를 탄 것이 감사했다. 한인택시에 올라 긴장을 내려놓고 기사님께서 들려주는 자동차 구매, 운전 기본 꿀팁, 살게될 동네 이야기, 학군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았다. 그렇게 조용한 런던 시골 킹스턴 한 구석, 쪼로롱 새가 지저귀는 에어비엔비에 도착했다. 다음날 아침 맞았던 평화로운 풍경 뒤로 닥쳐올 정착 폭풍을 그때는 실감하지 못했다.

도착 다음날, '노래한다'는 말이 와닿던 새소리 가득한 영국의 아침 -어느 에어비앤비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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