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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작가 Jun 15. 2024

[Book]서평: 블루 기타 변주곡

 _맥신 그린 박사의 링컨 센터 강의록

저자인 예술교육자이자 철학자인 맥신 그린 박사는, 20세기 미국의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블루 기타를 가진 사람」(Stevens, 「The Man with the Blue Guitar」,1937)이라는 시를 메타포로, 예술과 심미적 교육에 대해 여러 차례 강연을 하고 글로 묶어 내었다. 시의 소재인 ‘블루 기타를 가진 사람’은 1903년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늙은 기타리스트>(<The Old Guitarist>,1903) 속의 인물이다. 하나의 소재가 20세기 현대미술의 시작에서 출발해, 한 세대를 지나 시詩로 환생하고, 시간을 거슬러 1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다양한 예술의 장르에 걸쳐 그 의미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특별히 이 책을 서평의 대상으로 한 것은 그러한 시대를 관통하는 ‘힘’을 어렴풋이나마 공감한 터이기도 했고, 전체를 아우르는 몇 가지 핵심개념인 ‘예술교육’ 혹은, ‘미학교육’을 경험 많은 학자들은 어떻게 정의하고 어떠한 방향을 제시할 지에 대한 궁금증도 일었기 때문이었다.


- 심미적 교육이란


책의 전체에 펼쳐진 주제어는 ‘심미審美적 교육’이다. 사실 예술을 교육자들이라면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단어일 것이다. 구름처럼 형체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지나칠 수 없는. 그리고 ‘블루 기타’가 변주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예술로, 삶으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어떤 것’에 대한 상징이라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감각을 자극하며 배우는 즐거움, 미적 탐구를 욕망하게 하는 배움의 이상적인 면에 대해 주로 언급한다. 특히 <가르치는 행위 자체를 초월하는 배움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가치로운지>를 공감하며 더욱 밑줄을 그어 읽게 되는 글이다. 사실, 저자는 미국의 중심인 뉴욕, 그것도 각종 예술의 산실인 아트센터에서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이론을 넘어서는 이상적인 환경에서 나온 문장들의 나열일 수도 있기에 우리와는 동떨어진 주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보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직업인으로서, 혹은 제도의 한 부분이 되어 따라야 하는 공립학교 교사라는 위치를 느끼게 될수록,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한 이유로 촘촘히 읽어보았고, 저자가 중심에 두고 있는 이러한 ‘미학’ 혹은 ‘심미적 교육’의 줄기들을 찾아 정리하게 되었다.


인지적 이해의 중요성 ; 작품들의 구조와 형태를 이루는 언어를 이해하기

널리 깨있음(wide-awakeness) : 감각기관을 열어 보고, 듣고, 참여하여 의식적으로 감지하는 것                                 ; 예술작품은 자동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예술을 통한 경험을 명료화하기, 새로운 질문과 삶에 대한 탐구

미학의 실행 : 비평 / 비판적 담론이나 글쓰기를 통해 탐구, 명료화하기

지속하기, 계속된 탐구와 열린 시각을 유지하기     


이 책은 강연록을 편집한 번역본이기에 기승전결을 이루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히기 어려운 글이기는 하다.

그러나, 전체를 관통하는 ‘심미적 교육’에 대한 저자의 주요한 생각들을 뽑아 보니 위와 같은 내용들을 찾을 수 있었다. 강연의 주제가 다소 유사한 부분들이 많고, 목차에 일관성이 없음이 아쉽다. 하지만 반복되는 주장들 속에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작품들의 제목과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예술을 통한 선先경험들’이 명료해지고 풍성해지는 예시가 곳곳에 펼쳐져 있다. 또한 문학, 그림, 음악, 연극 등, 그 예술들 속으로 들어가 교육하며 사유했던 저자의 다양한 경험이 각각의 작품들이 가진 고유의 심미적 특징들과 함께 여러 가지 스펙트럼으로 비치고 있다. 고전에서 현대를 아우르는 각종 장르의 예술을 다루며 그 속으로 빠지는 ‘심미적 경험’은 독자들에게도 그 예술 수업 속으로 따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전달되고 있었다. 전공인 미술작품들 뿐 아니라 오래전에 읽었던 셰익스피어의 문학작품, 평소에 좋아하던 재즈 음악 등, 예술가들과 작품의 제목, 그 경험을 언급하는 것 자체 만으로도 따라오는 ‘간접적’ 미적 체험이 되었다. ‘예술’ 혹은 ‘미학적 가치’에 대한 교육, 경험의 힘을 다시 한번 공감하게 한다.

  평소, 예술의 가치에 대해 혼자 허공에 대며 외로이 부르짖는 건 아닌가 싶었다. 산업과 경제논리에 가로막혀 힘을 잃은 척박한 공립학교에서 홀로 교과를 운영해야 하는 많은 예술교사들이 이 글들을 읽는다면, 함께 할 동지를 만난 듯한 기쁨마저 줄 것도 같다. 어쩌면 많은 예술교육자들이 고민하고 세워 박아야 할 이정표들을 여러 갈래길 사이에 만들고 싶은 의도로 보인다. 우리 모두가 길을 잃지 않도록, 다짐하고 또 다짐케 하려는 노학자의 노력이 읽힌다.



- 상상력과 변혁에 대해     

  저자는 이러한 심미적 교육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상상력’을 꼽는다. 특히 제목인 『블루 기타 변주곡』을 비롯해, 책 전체에서 특별히 자주 인용하고 있는 스티븐스의 시 「블루기타를 가진 사람」을 한 줄씩 음미해 보면, 상상력에 대한 메타포로서의 ‘블루 기타’의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에게 블루 기타가 있군요.
당신은 주어진 그대로 이들을 연주하지 않지요.”     
그가 대답하길, “그대로의 사물은 블루 기타를 통해 새롭게 태어납니다.”


  말하자면, ‘상상력’이란 지각을 새롭게 하려는 것, 마치 재즈 연주가가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자신만의 즉흥연주 혹은 솔로 연주를 하듯 대상을 자신만이 가진 특성을 통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대상에 대한 이해의 측면을 간과하지 않는다. 특히 심미적 탐구를 넘어서서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우리의 삶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는다. <상상력이야말로 우리를 가상적 세상으로 초대하며 회화, 조각 같은 예술작품을 우리의 삶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하는 가운데, 시공간적 의미를 초월하는 활동적인 존재로 탈바꿈시킨다>(p.125)라고 말한다. 저자는 審美적 태도–아름다움을 찾는 방법과 태도를 ‘상상’의 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그 외에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다양한 저자의 경험과 교육철학자들의 문헌을 토대로 그 의미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상상력을 정의하는 방법도 흥미롭다.


 <새로운 것에 대해 표현하는 방식>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더 바깥으로 나아가는 것, 진보된 진화된 존재가 되기 위해 손을 뻗어 나아가는 것>
 <많은 이들이 예술에 대해 몰입하는 것을 막아온 인위적인 방해물을 뚫고 나오도록 하는 것>


   하나의 개념일지라도 소통과 공감을 위해 그 설명을 멈추지 않고, 그 학문의 넓이와 깊이가 집적되어 꼼꼼하게 세공하듯 묘사하는 설명이 특히 인상적이다.


- 교사의 상상력이 주는 힘에 대하여      

  저자는 상상력이라는 요소를 설명할 때, 존 듀이의 저서를 배경으로 자주 인용했다. 존 듀이는 상상력을 ‘세상이나 사물을 마치 다른 것일 수도 있는 것처럼 바라보는 능력’이라고 정의하며 특히, 교사들이 가지는 상상력의 힘은 <가능성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들며,...(중략).. 질서를 만들고 진정한 비전을 자극하며,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p.153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존 듀이가 1980년 경, 순수예술작품들이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점에 대해 ‘심미적 기아’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안타까움을 얘기했지만, 최근의 여러 가지 현대 재즈음악, 뮤지컬,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예술의 모습이 (과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또 다른 예술로서 인정받게 되는 것을 예로 든다. 즉, 우리의 경험은 놀랍게도 무한대의 확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오래된 관습을 무너뜨리고 전통적 예술을 은유적인 열린 공간에서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이고 예술교육자, 혹은 예술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펼쳐나가야 할 숙제인 것임을 반복적으로 여러 장에 걸쳐 짚고 있다. 특히 강조하는 ‘놀람과 개방’이라는 단어는 그대로, 나에게 각인되었다. 예술과 예술 교육을 통해 우리는 같은 것을 새롭게 보고, 그 안에서 놀라움을 경험하게 되며, 그러한 새로운 ‘놀라움’으로 인식이 넓어질 것이다. 이는 또 다른 것으로 열린 사고와 감성을 갖게 되는 선순환의 과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제한점이 많은 시대를 사는 교사로서, ‘이런 과정이 바로 우리 교실에서 매일매일 이루어진다면, 그것도 내 교실에 함께하는 모두가 그 가치를 알아준다면’과 같은 희망을 갖게 한다.

 사실, 우리 같은 제도화된 교실 안에서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수동적으로 수용하며 해놓은 것들을 그대로 반복하고자 할 때, ‘주도권’을 상실할 것이다.> p.223라고 계속해서 경고한다. 교사의 태도는 그대로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옮겨지게 마련이다. 교사가 그 힘을 잃기 시작하면 스스로 자신을 발견하고 이를 추구하려는 인간으로 인지하도록 도움을 줄 수 없을뿐더러, ‘심미적 가치’에 대해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상상’의 힘을 파괴시킬 수 있음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 우리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하여, 수월성, 변혁은 가능한가?     

  3장에서는 수월성과 표준에 대해, 그리고 가능성을 가지고 변혁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더 많은 작품들에 대해 더 많은 예술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하여 더 나은 어떤 것으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는 목적을 피력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지속적으로 경험하고 우리의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방법이라고 한다. 예술이 교육에서 소외되거나 학교에서 지향하는 수월성 중심의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들에 전면적인 반증을 분명히 하며, 특히 4,5번째 장에서는 이러한 모든 방법과 의식의 변화가 우리 주변의 공동체에 확산되고 함께 변혁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주장하며 교육을 통해, 특히 예술의 힘으로 이 모든 것들이 실천될 수 있음을 설득한다.     

- 다시 한번 강조하기 : 심미적 교육의 중요성     

  저자가 글 가운데 놓은 소제목 중 하나인 <대안적 현실로의 개방>처럼, 현실에 맞추어 대안을 만들되 그 이상의 방향을 굳건히 해두는 것이 지금의 교육자들에게 더욱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취지로 앞에서 언급했던 심미적 교육이 우리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굳건히 마지막까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 더 다양한 그 예술작품과 관련된 경험들의 이야기는 부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비판하는 것조차 진부해질 정도로 물질에 휩쓸리고 철학과 인간의 가치가 함몰되어 가는 세상이며 교육의 이념과 현실과 방법이 제각각인 시대이기에 이러한 글들이 왠지 모르게 더 조각마다 반짝거리며 깨우침을 주는 부분이 있다. 예술 교육만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남길 수 있는 예술교육자인 저자의 환경이 부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이 나라에서 예술을 통해 교육을 하려는 교사로서, ‘아름다움을 찾는’ 행위를 통해 ‘인간됨’을 사유하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낚고자 하는 초보 어부의 허황된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 벽에 부딪혀 실제로 완성된 무엇을 찾지 못한다 할지라도 ‘고래’를 찾고자 하는 - ‘審美’적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롭고 허물어져 가는 이 사회를 지키고자 하는 힘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많은 예술가와 교육자들이 그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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