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고도 충분히 말할 수 있다 - 피에르 바야르
책을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는 그렇다고 주장한다. 아니, 되려 책을 읽지 않아야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독서에 대한 환상에 정면 돌파를 선언하며, 책을 꼭 읽어야만 말할 수 있다는 통념을 뒤엎고 있다. 중요한 건 '독서' 그 자체가 아니라,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라고 말이다. 즉, 그 책이 차지하는 맥락과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교양을 쌓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비독서는 결코 무지의 증거가 아니다. 그는 비독서를 네 가지 방식으로 나눈다.
①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
② 대충 훑어본 경우
③ 다른 사람들의 책 얘기를 들은 경우
④ 읽었으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이처럼 읽음과 안 읽음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며, 그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 책의 ‘상황’, 즉 다른 책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고백한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주장에 저항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무책임해.’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이 독서라는 행위를 너무 당연하게 신봉해 왔다는 사실에 각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책을 통해 사고를 넓히고 세상을 향해 더 깊이 질문할 힘을 키웠다고 자부했다. 그 힘으로 ‘당연함’을 의심하고 당연한 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대해선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다는 걸.
독서란 나에게 무조건 ‘좋은 것’이었다. 지식이 쌓일수록 삶의 깊이가 더해지고, 타인과 지적 소통을 하며 교양을 쌓아간다고 믿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 = 교양 있는 사람’이라는 등식이 내면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이란 무엇일까?
이제는 알겠다. 얼마나 읽었느냐, 얼마나 어렵고 두꺼운 책을 읽었느냐가 교양의 기준이 아님을.
세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아는 눈,
타인의 무지나 타인의 비독서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태도,
혹은 내가 그 책을 읽지 않았다고 고백하면서도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유연함과 용기.
교양이란 그런 태도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런데 갑자기 웃음이 난다.
이 책을 정독하며, 진지하게 독서의 허상을 분석하고 있는 나를 보면, 바야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다. 이런 식의 진지한 사유 흐름은 바야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책의 숨어있는 주제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그가 말하는 건 사실상 지식에 대한 강박, 독서에 대한 진지함, 교양에 대한 위선 같은 것들이 우리의 사유를 막고 자유로운 대화를 억누른다는 점일 테다.
독서,
여기서 바야르가 비판하는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고 교양 있는 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는 독서다. 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그는 책을 지식과 교양의 도구로 삼는 대신, 책을 놀이처럼 다루는 태도 - 무겁지 않고 즐겁게 - 를 앎의 새로운 방향으로 제안하고 있는 듯하다.
바야르가 지적하듯, 우리에게는 독서와 관련된 일련의 내면화된 두려움이 있다.
첫 번째, 독서의 의무에 대한 두려움.
우리는 독서가 신성시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으며, 신성시되는 모범적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것에 눈총을 받게 될 것이란 두려움을 가진다.
두 번째, 정독의 의무에 대한 두려움.
후딱 또는 대충 읽는 것 또한 인정받지 못할 일이다.
세 번째, 책들에 관한 담론의 두려움.
우리가 어떤 책을 읽는 것은 그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는 암묵적인 전제 하에 있다. 그러나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열정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p.12-13)
이처럼 우리는 독서를 경외한다. 책은 각 잡고 공들여 읽어야 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읽어야만 '진짜' 읽는 거라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정독하고 나서 깨달았다.
책은 빠르게 훑어도, 요약만 봐도, 귀동냥만 해도, 그 책에 대해서 충분히 '안다'아는 것이라는 걸. 단지 책을 읽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책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나는 묻고 싶다.
독서가 비독서보다 나은 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엄숙하게 읽는 일이 과연 그렇게 대단한 일이던가?
이 책을 읽으며 독서의 환상에서 한 껍질 벗겨졌고, 불현듯 책을 읽는 방식뿐 아니라 책과 살아가는 방식까지도 되짚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에 담긴 방법들을 우리 삶에서 실제로 실행해 보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실 나처럼 성인이 되어 이미 사회에서 각 좀 잡아본 사람들에겐 그동안의 진지한 태도를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변화란 언제나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법이니까.
그래도 아직 아이들은 희망이 있지 않을까?
아직 버릴만한 진지한 태도조차 잡히지 않은 나이. 내가 어떤 태도로 책을 대하고, 어떤 방식을 살아갈지 방향성이 없는 시기의 아이들.
26개월이 된 나의 아이에게 책은 그저 장난감이다. 어떤 날은 책을 중간까지 읽다 말고, 어떤 날은 자기가 꽂힌 단 한 페이지만 책을 펼쳐 들여다보기만 한다. 어떤 날은 좋아하는 책을 품에 안고 잠들고, 어떤 날은 책으로 색깔놀이를 한다. 나는 그런 아이에게 책은 정독해야 하고 반드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강박적인 환상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다.
조금 더 자라면,
“우리 오늘은 이 책을 읽지 말고, 이야기해 보자” 고 제안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