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전야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다.
토니는 그날도 선택 앞에 섰다.
갱단이 그를 불렀고, 일은 많지 않고 돈은 많았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나에겐 가족이 있어요.”
그날 밤, 전당포의 문을 밀었다.
팔목에서 벗긴 시계를 내밀고, 손에 쥔 것은 50달러.
값진 물건은 아니었지만, 아끼던 물건이었다.
그렇게, 그는 ‘필요’에 시계를 맡기고 ‘책임’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로레스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돌로레스는 토니의 셜리에 대한 묘사를 듣고 그가 단번에 유색인임을 알아차린다.
그러고는 편견이 있고 은근한 자존심이 있는 토니에게 일주일도 못 버틸 것이란 말을 한다.
돌로레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너무 달랐다.
너무 정돈되고, 너무 고고하고, 너무... 닫혀 있었다.
며칠 후,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셜리 박사가, 토니를 고용하겠다고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직접 말하지 않았다. 돌로레스에게 대신 전하게 했다.
어쩌면 셜리는 처음부터,
자신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이해해 줄 ‘관찰자’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토니는 그 누구보다도 낯설고도 흥미로운 관찰자였다.
그와 동시에, 계약 조건이 전달되었다.
선금은 절반.
잔금은 전부 마친 후에.
그리고, 얇은 초록색 책자 한 권이 함께 건네졌다.
《그린 북》.
미국에서 흑인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숙소와 식당이 적힌 안내서.
존엄을 위한 지침이 아닌, 생존을 위한 매뉴얼이었다.
그 책을 본 돌로레스는 이해가 안되는듯한 표정이었다.
지금의 우리의 입장도 아마 돌로레스와 같지 않았을까.
여행 당일, 토니는 셜리를 태우기 위해 차를 몰았다.
셜리는 멀끔한 정장 차림.
덮고 있는 담요 하나에도 태도가 배어 있었다.
짐을 보자 토니는 은근한 자존심을 부린다. 그의 손으로 짐은 실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엔, 시작도 전에 지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렇게, 두 남자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세상의 위선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은 자신도 몰랐던 무지를 마주하기 위해.
이 여정은 도로를 달리는 게 아니라, 서로를 향해 걷는 것이 될 것이다.
미국 남부를 향해 뻗은 도로 위.
차창 밖으로 풍경은 흘러가고, 차 안은 점점 더 좁아진다.
토니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샌드위치를 베어 문다.
입가에 묻은 마요네즈를 팔뚝으로 쓱 문지르고,
담배를 입에 문 채 창문을 반쯤 열어 연기를 흘려보낸다.
셜리는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다 입을 연다.
그의 일정표, 스타인웨이 피아노, 숙소의 위스키.
어쩌면 토니에겐 외계어나 다름없을 것이다.
토니는 대충 메모하며 대답한다.
못마땅한 셜리는 담배를 꺼주길 부탁한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요청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토니는 눈을 흘기며 담배를 꺼버린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내 돌로레스가 셜리에게 싸준 샌드위치를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먹는다.
소소한 복수였다.
차 안엔 조용한 긴장감이 내려앉는다.
셜리와 그의 동료들은 러시아로 대화한다.
그 대화를 들은 토니는 자신 있게 독일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셜리는 짧게, 그러나 뼈 있는 말투로 대답한다.
“러시아어입니다.”
그러나 토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독일인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다.
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아 스테이크를 썬다.
셜리는 고상한 표현으로 음식의 어떤지 묻지만 토니는 짜다고 대답하며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떠들어댄다.
하지만 셜리의 표정은 웃지 않는다.
그는 이런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이런 ‘대화 아닌 대화’는 셜리의 규격 밖의 언어였다.
밤이 되어, 숙소
서로의 방은 분리되어 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서로의 세계를 막연히 관찰하는 밤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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