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파란 여행

세계유산 가야의 고분군

44호분을 찾아서

by 한명화
고분군을 오르는 입구에 비치됨
고분군을 향하여 힘들지만ㅡ
포토존에 앉으면?
앞산줄기에도 옆산줄기에도 걷는 길가에도 ㅡ


쉴수있는 벤치에 앉으면 건너편 능과 마을도 보임
높은곳에서 보이는 산능선은 모두 고분군
44호분 능 옆으로 큰 나무에 있는 그네 ㅡ포토존
44호분 능
44호분의 발굴당시 확인된 순장의 모습과 출토품
더 가까이 가지말고 이곳에서 보라는 표시가 있었다
큰 나무 밑에 벤치가 있어 잠시 쉴수가 있었다
아직도 발굴현장에 일하시는 분들이 보였다
오를 때는 힘들었지만 내려 올때는 ㅡㅡ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령 지산 고분군을 돌아보기 위해 안내판 옆을 지나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지나 깔개를 깔아놓은 길을 따라 오르니 확 트인 능선이 나타나고 여기저기 봉긋 거리는 봉분들이 즐비한 곁을 걷는다

봉분들을 보니 왕가의 공동묘지인가? 싶다

고분들을 돌아보고 좀 멀고 오르막이라 힘들지만 능선 정상에 있다는 순장의 충격을 안겨준 엄청난 크기의 44호분 능을 만나보기 위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이쪽저쪽 눈을 돌리면 지산의 능선들이 고분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일반 백성이라면 이렇게 묘를 쓸 수가 없을 것이니 대가야 왕가의 묘지 터였나 보다

이 처럼 고분이 많다면 가야의 역사는?

글을 쓰며 찾아보니 대가야의 도읍이었던 고령이 562년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하는데

이 처럼 오랜 역사가 있으니 고분도 많은 게 당연한 것이겠지라며 고개가 끄덕여진다


수많은 고분 곁을 지나고 곁에 세워둔 안내도 읽다 보니 순장묘도 많아 마음 아파하며

오르다 보니 포토존이 있어 좀 쉴 겸 앉았다 하지만 펼쳐진 풍경은 고분이다

계속 모르다 보니 마지막 고분인듯한 정상의 고분이 나타나고 곁에는 벤치와 큰 나무에 그네도 매여 있어 왕릉을 즐기며 그네를 타보라고? 그럼 타 봐야지 않겠어?

위쪽에는 아직도 발굴 중인듯한 모습과 쉼터나 연장 등을 둘 것 같은 녹색 텐트가 있다


그네에서 내려와 커다란 능 앞으로 가 보니

이 큰 무덤이 바로 만나고 싶었던 44호분

이 엄청난 능의 내부를 왕릉 전시관에서 들어가 보았으니 고분 앞에 세워둔 안내판을 보며 고분 안을 다시 생각하자 순장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했다

고분 앞 안내에 의하면?

ㅡ5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돌 댓널무덤이다

ㅡ봉분의 지름이 25~27m인 대형 고분이다

ㅡ1977년 조사되어 문헌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우리나라 고대 순장의 실체를 처음으로 밝혀준 대가야 대표적인 고분이다

ㅡ무덤구조를 살펴보면?

순장은 으뜸덧널이 1명, 딸린 덧널에 각 1명, 순장덧널에 30여 명이 확인되어 모두 37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최대규모의 순장무덤으로 순장된 사람들의 연령과 직업 또한 다양하다

ㅡ무덤에서 나온 여러 유물을 살펴보면 대가야가 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짐작.


44호 고분 앞에서 다시 한번 순장에 대한 안내글을 읽어보고 내부를 그린 전개도를 보며 왕릉전시관에서 물론 모형이지만 눈으로 보았던 광경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목적했던 44호분도 보았으니 능 앞 큰 나무 밑 벤치에 앉아 짝꿍과 가야의 역사가 묻힌 원인을 이야기하며 어쩌면 신라의 침공이 가야의 역사를 소멸시켰겠구나 ㅡ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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