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유, 엄마로 성장하는 한 걸음.

단유가 이렇게 우울한 것이었다니.

by 뢰진아


병원에서는 아기한테 젖을 못 물리게 했었다.

원래 태어나면 바로 젖을 물려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있는 5일 동안,

유축기로 초유를 유축해서 가져다줄 뿐이었다.


퇴원 후 조리원에 간 첫날,

간호실장님이 아기를 방으로 데리고 왔다.

“아기 직수하셔야 해요~”

“네? 제 젖을 물린다는 말씀이세요?”

“호호호 그럼 제 젖을 물려요?”

그러고는 빠르게 수유쿠션을 내 배위로 끼우고

아기를 눕힌 후 내 젖에 아기 입을 갖다 대었다.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손도 만세를 하고 있었는데

아기는 원래 그래왔었던거라는듯 아무렇지 않게

내 젖을 탁 물고는 힘차게 빨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간호실장님이 나가고 온전히 아기와 나만 남겨져

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런 조그만 것이 어떻게 내 뱃속에서 튀어나와서

이렇게 자기 것인 마냥 내 젖을 물고 있나.. 싶었다.

아무도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꿀꺽꿀꺽

조그만 입으로 세게도 빨아먹는다.

내 가슴에서 젖이 나오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 나를 엄마라고 부르는 존재가 나를 찾는다.

배가 고프다고 밥 달라고.


조리원에서는 하루에 20번은 젖을 물렸다.

잠도 참아가며 새벽 수유 콜을 다 받았었는데

내가 엄마라고 아기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젖 주는 것

하나뿐이라는 생각에 더 집착해서 콜을 받았던 것 같다.

아기에게 내가 밥을 주다니. 그걸 나만 할 수 있다니.

너무 신성하고 감사하고 감동적인 일이었다.

수유할 때마다 아기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귀를 만지고

알아듣지도 못할 내 마음을 그토록 재잘거렸었다.

“아가야 사랑해, 맛있어? 배불러? 좋아?”


아기는 제법 젖을 잘 먹었다.

젖을 거부하거나 직수를 어려워하는 아기들도 있다는데

빠는 힘도 좋아서 선생님들도 모두 신기해했다.

2.9kg로 태어난 여자아기가 이렇게 잘 젖을 잘 빠냐고.

아무 문제없이 젖을 먹어주는 아기에게 너무 고마웠다.


집에 와서도 직수(젖을 직접 물림)는 계속되었다.

조리원에서 했듯 밤에도 열심히 젖으로 배를 채워주었고

힘든지도 모르고 아기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한 시간들이었다.


산후도우미가 있던 2주의 시간 동안,

차려주는 밥을 먹고 낮잠도 자고 하니 젖은 잘 나왔고

아기에게 물리는 시간외에 유축도 꽤 했다.

가슴크기랑 젖양이 비례하지 않음에 감사했다.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육아를 해낼 시간이 다가오자

밥을 챙겨 먹기도 어렵고 잠을 잘 자기도 힘들었다.

특히 아기가 밤낮이 바뀌어 새벽에 아예 잠을 자지 않아

출근하는 남편 대신 새벽에 혼자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힘들어도 아기를 위해서 아파도 열심히 해냈다.


몸이 피곤했는지 젖이 고장이 났다.

왼쪽 젖이 아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오른쪽 젖만 차올랐고 오른쪽만 수유를 했다.

왼쪽 젖은 아기도 성에 안 차는지 계속 거부를 했고

난 모유센터(오케타니)에 가서 상담과 마사지도 받았다.

그때뿐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오른쪽 젖으로만 직수를 했다.


2주 전부터 아기가 직수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손으로 밀어내고 입을 돌리고

15분을 채우던 직수 시간은 10분에서 5분이 됐다.

분유와 혼합을 하고 있었지만 직수 비중이 높았고

나름 완모를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분유 비중이 더 높아졌다.

그중 다행인 건 젖병이나 분유 거부가 없다는 것.

혹시 단유를 한다면 이때인가.. 싶어 졌다.


젖이란 건 어차피 언젠간 끊어내야 한다.

아기가 평생 젖을 먹고살 것도 아니고

두 달안에 아기는 이유식을 하게 되며

일 년 안에 밥을 사람처럼 먹기 시작할 것이다.

또 이가 나기 시작하면 젖을 씹어댄다는데.

어차피 끊어내야 할 거라면 지금 끊자.

추억이 더 쌓일수록 더 힘들어진다.

젖만 찾고 젖병과 분유를 거부할 때가 오기 전에.


단유는 욱해서 시작했다.

차차 횟수를 줄이다 끊는 방법도 있다는데

원체 성격이 차차가 안 되는 터,

3월 9일 저녁 6시 40분을 끝으로

끝인지도 모른 채 젖 물리기는 종료되었다.

마지막을 아는 마지막은 더욱 슬플 것이기에

마지막일 거라 생각지 못한 때가 그것이 되기를.


“단유만 하면 초콜릿 케이크 한판 사서 퍼먹어야지!”

늘 입버릇처럼 하루에 몇 번이고 말했었다.

워낙 초콜릿과 과자를 좋아했던 나이기에

임신부터 출산, 수유 중이었던 지금까지

늘 먹고픈 것을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는 컸다.

수유를 위해 매일 세끼를 챙겨 먹고

좋아하지도 않는 미역국과 소고기를 먹었다.

임신 중에도 하루 한 끼만 먹던 나에게

하루 세 끼 챙겨 먹기는 참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단유를 하면 신이 날 줄 알았다.

초콜릿과 과자, 케이크를 한가득 사놓고 먹어야지,

이제 파스도 붙일 수 있고 약도 먹을 수 있어.

다이어트도 맘껏 하고 하고 싶은 운동도 하고,

아프면 치료도 받고 마취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웬 걸, 단유를 시작하니 모든 게 우울해졌다.


아기에게 노력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더 해 볼 수 있었는데 그만둔 것 같았다.

하루에도 다시 젖을 물려볼까 몇십 번 생각이 들었고

젖을 찾아 품을 파고드는 그 모습이 너무나 그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유를 더 열심히 성실히 할걸,

수유가 힘들다고 칭얼댔던 순간이 너무나 후회됐다.

온전히 아기와 나만 교감하는 그 신성한 그 행위를

더 이상 다시는 할 수 없다니. 청천벽력 같았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져 연락을 갈구할 때처럼

젖을 무는 아기 모습이 너무 보고 싶어 졌다.

단유 우울증이었다.


딸꾹질을 하면 늘 젖을 물려 멈추게 했었다.

젖을 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딸꾹질이 멈추었다.

단유 후 처음 보는 아기의 딸꾹질,

모자를 씌우고 안고 토닥거리며 그저 기다려야 했다.

아기를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수백 번 되뇌었다.

아기의 딸꾹질은 이제 15분이 지나 겨우 멈춘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한다.

여태껏 잘해왔다고 그만하면 되지 않았냐고.

이제 먹고 싶은 것도 실컷 먹을 수 있는데 왜 우냐고.

아기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누가 부추긴 것도 아니고 내가 결심한 단유에

그렇게까지 우울해하고 울 일이냐고.

그럴 거면 다시 젖을 물려보라고.

조리원에서 햇살을 맞으며 젖을 먹는 아기 얼굴을

못 보아서 일거야. 고스란히 내가 견뎌야 하는 일.

임신, 출산, 단유까지 고스란히 엄마가 견디는 일.


하루 종일 눈물샘이 고장 나는 순간이 자주 온다.

아기를 재우기 위해 옆으로 안으면

아직도 아기는 젖을 주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려

젖 쪽으로 입을 뻐끔뻐끔거린다.

난 그 모습이 너무 가슴 아파 자세를 고쳐 안는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들 한다.

모든 게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고.

지금으로선 잊히는 것도 두렵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많이 찍어둘걸.

젖을 먹는 너의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남겨둘걸.

핸드폰을 쥐 잡듯 뒤져 폴더를 하나 만들어낸다.

수유하는 모습이 담긴 귀한 사진과 영상들.


훗날 지금을 기억할 때 잘한 거라고 여길 수 있었으면.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 결정이 잘된 것이었다고.

모유를 더 먹이지 못한 것이 엄마 잘못이 아니었다고.

3개월 수유 추억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기억에 남았으면.

그래서 주책맞게 긴 글을 써본다.

나중에 엄마를 안아줄 수 있을 때가 되면

엄마 잘했다고 한 번만 안아줘 아가야.

두 팔 벌려서 그때는 네가 엄마를 토닥토닥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