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봄. 4박 5일
(1편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똑같이 숙소 앞 타코 집에서 아침을 먹고, Valladolid라는 마을을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탔다. 오늘 첫 코스는 Cenote Samula다. Cenote는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자연 우물로, 멕시코 유카탄 지역에 여러 개 발견할 수 있다. 마야인들한테는 신의 제물을 바치는 종교적인 의미도 있었고 인간의 시신을 버리는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파스텔톤 짙은 노란 벽이 인상적인 마을에 도착했다. 오자마자 젊은 남자가 우리를 세노테 입구까지 인도해주었다 (보통 이런 일이 있으면 나중에 팁을 줘야 된다. 물가가 싸니깐 팁을 너그러이 주자). 계단을 향해 지하로 가니 사진으로만 보던 신비로운 우물이 눈 앞에 펼쳐졌다. 한적하고 차가운 공기, 햇살의 경계가 그대로 보이는 투명한 물가. 영화 코코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발을 물에 담그자마자 작은 물고기들이 내 발을 간지러 피기 시작했다. 주먹만 한 물고기들도 거리낌 없이 내 주변을 누비고 다녔다. 친구가 갤럭시는 방수라는 걸 자랑하면서 수영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5년 후면 이런 관경이 흔하지 않을까.
수영을 하니 금방 지쳤다. 민물이라 떠있기가 정말 힘들다. 더군다나 공기가 차가워서, 더 수영하겠다고 하는 친구를 두고 밖에 나와 따뜻한 햇살 속에서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때웠다.
오늘의 메인 코스 치첸이사로 가는 길, 도로 한복판에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도착을 하니 앞마당에 멕시코 아주머니 3명이 유쾌하게 수다를 떨고 계셨다. 식당엔 아무도 없었고, 주방에 불도 안 들어와 있었다. 심지어 메뉴도 없다고 하셨다. 약간 불안했지만 아주머니들의 유쾌한 분위기가 너무 편안해서 남기로 했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따뜻한 집밥 스타일 타코 식사가 내 앞에 차려졌다. 토르티야도 먼저 더 주시겠다고 하시고, 주방 구경도 허락해주시고, 덕분에 힐링되는 식사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치첸이사를 보러 갔다. 늦은 오후 시간 사람도 많이 없어서, 한적하게 둘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전형적인 관광코스였다. 생각보다 거대하진 않았지만 분위기는 압도적이었다. 바람 때문에 모래가 많이 휘날렸는데 선글라스가 정말 고마웠다.
치첸이사 차로 5분 거리에 또 다른 세노테가 있다. 이 두 곳을 들리는 패키지 투어가 많아서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있진 않았다.
Cenote Il Kil은 Cenote Samula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천장에 있는 구멍도 훨씬 크고 웅성한 줄기로 둘러싸여 있어서 동굴보다는 정원에 온 기분이었다. 오늘 두 번째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어서 수영을 하러 갔다. 여기도 민물인지라 몸이 떠있기 정말 힘들었다. 다이빙 존이 있어서 다이빙을 몇 번 도전했는데, 할 때마다 물을 엄청 먹었다. 마음만은 백텀블링.
기분 좋게 수영을 하니 먼 길을 돌아가야 됐다. 저녁은 칸쿤 다운타운 근처 Puerto Santo라는 호텔 안에 있는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2시간 정도 운전을 한 뒤, 늦은 시간 식당에 도착했다. 어두운 조명에 밤 해변을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식당이었다. 참치와 새우 타코를 시켰는데 점심식사와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 촘촘하고 시원한 샐러드, 도톰한 해산물, 딱딱한 타코의 식감이 고급스럽게 너무 잘 어우러졌다. 메인으로 시킨 부드러운 문어요리까지, 하루를 마무리하기 완벽한 저녁 식사였다.
호스텔이 워낙 불편해서 새벽 5시쯤 잠에서 깼다. 다시 잠들기가 힘들어 일출을 보러 호텔 앞 해변가로 나갔다. 노래를 들으며 30분 정도 기다리니 깜깜했던 바다가 서서히 에메랄드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오늘 일정은 딱히 없다. 하루 종일 해변가에서 여유롭게 즐기기로 했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해변가로 다시 출동했다. 그늘 아래서 낮잠도 자고, 독서도 하고, 수영도 간간히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허기가 질 때쯤 또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근처 쇼핑몰에서 잠깐 돌아다녔다. 이렇게 여유롭게 멕시코 여행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