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드트로닉이라는 회사의 유명한 동기부여 방식이 있다.
미국의 의료기기 회사인데 회사 제품을 사용해서 인생을 바꾼 환자들을 초대해서 직원들 앞에서 강연을 하는 것이다. 고객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일이 고객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도록 해서 직원으로 하여금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자칫 대수롭지 않아 보여도 동기부여 관련 책과 연구에서 자주 인용하는 사례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한 기부금을 모집하는 콜센터 사례도 있다. 이들에게 동기부여는 쉽지 않다. 냉랭한 고객의 대응에 이직이 잦았다. 기부금을 통해서 어려움을 극복한 이웃을 만나게 했고, 그 결과 이직률이 줄었다고 한다.
예일대학교 에이미 레즈네스키라는 교수는 '잡크래프팅' 이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했다.
잡크래프팅은 ‘주어진 업무를 스스로 변화시켜 의미 있게 만드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일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일 자체의 의미와 목적을 생각해 보거나, 일을 통해 도움을 받는 고객을 생각해 보도록 한다. 일에 대한 관점전환이 효과가 있을까? 잡크래프팅을 시도한 직원들은 삶에 만족하고 더 나은 성과를 올렸고, 높은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콜센터 직원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인사팀의 업무도 그렇다.
아무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그저 행정적인 일로 치부된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잘하는 것'이 인사 업무라고 생각하기 쉽다. 요즘은 블라인드나 잡플래닛 같은 익명게시판이 늘어나면서 공공연한 욕받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대목은 너무 슬프다.) 그 과정에서 인사팀 구성원들은 자가 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가치한 존재라고 인식한다. '회사는 그저 일터이고 내 삶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곳'으로 인식하는 직원도 늘어간다.
인사팀장으로서 인사팀 멤버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메드트로닉처럼 우리 일을 통해서 좋은 영향을 미친 사내 구성원들 경험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어떤 고객이 인사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내 잡포스팅'이 떠올랐다. 외부 채용을 진행하는 포지션을 내부 구성원에게 먼저 오픈해 직무 이동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 여기 선발되어 이동한 직원이라면 우리 일의 의미를 환기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팀원들 몰래 메일을 써서 솔직한 취지를 설명했다. 절반이라도 회신을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회신을 주었다. 그들의 편지를 모아서 팀원들에게 메일을 썼다.
팀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인사팀 덕분에...
'너무 기뻐서 눈물을 흘린 뻔했다'
'매일을 즐겁게 출퇴근하고, 야근을 해도 웃게 된다'
'입사 후 처음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의 메시지들은 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다른 회사의 이야기도 아닌,
우리 회사 직원이 저희 팀에게 전해준 메시지입니다.
올해 상반기 잡포스팅으로 이동한 직원들에게
소감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렸고,
많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회신을 주셨습니다.
그 메일 중에서 발췌했습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
간혹 업무에 바빠서 행정적으로 '쳐내는 일'이
우리 직원들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 되곤 합니다.
잡포스팅 업무뿐만 아니라 채용, 보임, 발령 등 모든 업무에서
우리의 태도와 의지가 직원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같이 노력하도록 합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두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다.
인사의 Fan을 확보했다.
인사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그들로 하여금 긍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구성원들도 다시 한번 그날의 감동과 감사함을 떠올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저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감사의 감정이 글로 쓰면서 더 구체적으로 생각 들었을 것이다. 인사팀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인사팀의 Fan이 되었을 것이다. 다른 구성원이 인사팀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 이들은 한 번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인사팀 멤버들에게도 우리 일이 고객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를 확신할 수 있는 일화가 있었다.
얼마 후 다시 잡포스팅을 진행했는데, 담당자가 확신 없는 표정으로 지원서 하나를 보여주었다. 정년퇴직을 몇 년 남기지 않은 현장 물류 사원의 지원서였다. 평소 같았으면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탈락시켰을 지원자였다. 전환배치를 받는 팀의 입장에서 젊은 직원을 선호하기에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직원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긴가민가하는 생각으로 그의 지원서를 봤다.
그는 입사 후 약 30년을 물류센터에서 근무했다.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은퇴 후의 삶을 생각하다 자동화 농장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배울 곳이 막막했다. 그러던 중 사내에 '자동화팀' 포지션이 오픈되었고 가능성이 없지만 한번 두드려보자는 심정으로 지원한 것이다. 담당자 또한 지원서를 보고 망설이다 내게 보여주었다. 그를 받아야 하는 팀은 부담스럽겠지만, 그에게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확신이 들었다. 한평생 회사를 위해 노력한 선배를 위해 회사에서 도움을 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런 선배님과 함께 일한다면, 후배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마침 보고할 일이 있어서 사장님을 만났다. 보고가 끝나고 슬쩍 사장님께 지원서를 보여드리며, 추진해 보겠다 했다. 사장님도 공감해 주시고 꼭 그분을 그 팀으로 보내주었으면 한다는 의견을 주셨다. 사장님을 등에 업고 그 선배님을 이동시켜 드렸다.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시니어 대상 잡포스팅'을 기획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배 중 은퇴 후의 삶에 도움이 될만한 직무가 있다면, 그 팀으로 매칭을 시켜주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지원하신 선배에게 새로운 기회를 드렸다. 좋은 홍보소재로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다른 구성원들도 좋은 취지의 일이라 칭찬해 주었다. 추진 담당자는 그 해 연말에 모범사원상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고객으로 하여금 감사편지를 쓰게 한 긍정효과가 아니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내 일에 의미를 부여해서 잡크래프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