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에서 우물을 만나면...

몽골 고비여행記 #3

by 션표 seanpyo

몽골 고비여행記 #2


고비의 첫 목적지는 이흐 가자링 촐로(Ikh gazariin chuluu), 돌로 이루어진 산이다. 중고비 아이막의 중심, 만달고비에서 서남쪽 방향으로 80km 떨어진 곳으로 우리가 정한 첫 행선지다.





80km라고는 하지만 도로도, 이정표도 없는 초원에서 쉽게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표식이 없고 평평한 지평선이 비슷한 높낮이로 펼쳐 있을 뿐.






풀이 듬성듬성 해지면서 초원이 붉은 모래 빛으로 변해갔다. 가축들도 점점 보이지 않고 유목민의 게르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풀이 적어지니 앞서 지나간 자동차의 흔적도 희미하다. 거친 비포장로 멀리 하늘에서 보면 정해진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 같겠지만 울퉁불퉁한 지형을 안전하게 달리기 위해서 쉴 틈 없이 핸들을 좌우로 돌리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길을 잃으면 큰일 나겠구나'

고비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기름을 가득 채우고 가야 한다던 말의 의미를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든든한 멤버들이 있어 안심할 수 있었다. 요컨대 우리가 탄 SUV 차량의 네모난 창밖은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고비라기보다는 TV 화면 속 '세계를 간다 고비 편'으로 여겨질 만큼 마음이 평온했다.






말이 무리 지어 모여있는 것을 발견한 우리는 잠시 쉬어갈 겸 차를 세웠다. 빌게는 말에서 멀찍이 떨어져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재밌는 장면을 만들어 주겠다며 카메라를 들고 있으라 했다. 우리는 말 무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멀뚱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적당한 거리에서 걸음을 멈춰 서더니 말을 향해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기차처럼 뛰어들었다. 나는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깜짝 놀라 파인더에서 눈을 뗐다. 빌게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험은커녕 혼비백산한 말들이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대장 말은 갑작스레 닥친 위기로 인한 불안 때문인지... 벌건 대낮에 난데없이 종족 번식을 위한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말이 서 있는 모습보다 뛰는 모습을 찍어야 한다는 사진가 빌게의 배려였지만 정작 우리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그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고비, 고독한 우주의 항해



다시 이동이 시작된다. 끝없이 이어진 지평선이 세상을 하늘과 땅 두 개의 면으로 나누고 우리의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단조로운 조형미를 담아 아득한 풍경으로 펼쳐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은 왠지 쓸쓸하다.



몽골여행기_고비_23.jpg


이것은 '자동차'와 '사람'이다. 왜 이사진을 담았나 하면 마을을 벗어나 한 시간 만에 처음 발견한 피사체였기 때문이다. 고비에 있으면 '외로움' 혹은 '고독' 같은 형체 없는 단어가 늘 곁에 살아 숨 쉬는 느낌이 든다. 피사체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진은 더욱 고립을 시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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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황무지, 그곳에서 발견한 모든 것은 피사체가 된다. 하다못해 동물의 뼈만 봐도 쉽게 시선을 뗄 수 없다. 이곳에서 반나절만 머무른다면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고비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구이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아득한 우주를 표류하다 만난 지구인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다.



고비에서 길을 잃는다면...



중고비 아이막 중심에서 벗어나 여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시간상으로 봐도 더 가야 하고 특별히 길을 잃은 것은 아니지만 가도 가도 특징 없이 이어지는 지평선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감을 갖게 했다. 정해진 길이 있고 내비게이션이 있는 환경에서는 겪을 수 없는 희귀한 경험이었다.




결국 멀리서 발견한 유목민을 쫓아가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물어보았다. 자화는 깊은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에게 길을 물을 때는 유목민의 손끝을 잘 봐야 한다고 했다. 그곳의 유목민은 시계를 안 보기 때문에 거리를 시간으로 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가리키는 손끝이 땅 아래를 향하면 금방 닿을 수 있는 거리, 지평선을 가리키면 오늘 안에 갈 수 있는 거리. 만약, 손끝이 하늘을 향하면 오늘 갈 수 없는 먼 거리라고 말했다.




고비에서 우물을 만난다면...


무언가를 발견하고 차를 멈춰 세웠다. '호따그'는 지하수라는 뜻이다. 고비에는 초원의 중간중간 이렇게 사람들이 만든 지하수가 있는데 척박한 환경 속에 생활하는 유목민이나 가축들의 식수를 해결하기 위한 시설이다.



고비에서 이동 중에 우연히 호따그를 만나면 모른 척 지나치면 안 된다. 주변에 사는 손이 없는 가축을 위해 반드시 지하수를 길어 물통을 채우고 가야 한다. 이것은 길을 떠나는 이가 여행의 안전을 바라며 어워를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목민이건 여행자건 모두 지켜야 하는 초원의 관습이라 한다.





유목민이 떠나고 우리도 호따그 체험을 해보았다. 우리나라의 우물처럼 끈이 달린 바가지를 구멍 아래로 떨구고, 물을 길어 옆에 놓인 엉거츠(물통)를 채운다.





자신의 가축이 아니라도 척박한 땅에서는 모두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을 길어보니 지하수의 깊이가 생각보다 훨씬 깊다. 우리도 어느새 고비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을 달려 작은 솜(마을)을 만났다. 바다에서 만난 외딴섬처럼 황량한 대지의 바다 가운데 홀로 외로이 떠있다. 네바다 사막 위의 라스베이거스처럼 주변과 대비되는 화려함을 찾아볼 수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을 지나쳐갈 무렵, 초원 앞에서 끝나는 검은 아스팔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연으로 이어진 도로, 나에게 몽골은 이런 이미지를 가진 나라인 것 같다.





오랜 시간 체체의 운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차의 묵직하고 부드러운 흔들림이 어딘가 체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이흐 가자링 촐로를 지평선 위에 얹어놓았다.

멀리서 보고만 있어도 흐뭇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포장도 안된 80km의 초원을 2시간 반 만에 달려왔으니, 이 정도면 꽤 빨리 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고비의 첫 목적지를 향해 달려간다. 이흐 가자링 촐로로!










'진짜 몽골여행 고비' 영상 10분 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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