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이 다른 나라답게, 미국은 1950년대에 달을 무대로 한 War Plan을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소련이 우주경쟁에서 앞서가고 있어 매우 깊은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련은 1957년 최초의 위성, 1961년 최초의 우주인 미션에 성공했다. 미국의 지도자들은 혹시나 소련이 달에 먼저 도착해 군사기지를 세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밤잠을 지새웠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미국은 ‘계획’을 좋아하는 나라다. 현실성이 아예 없거나 애초에 실행할 의도가 없어도 일단 계획부터 짜고 본다. 이는 계획을 짜는 과정 그 자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많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US Color Coded War Plan이 있다. 20세기 초에 미국이 수립한 가상 전쟁 시나리오인데 그 대상으로 독일 같은 잠재적 적국은 물론 영국, 멕시코, 중국, 심지어 캐나다도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계획들이 그대로 실행되는 일은 없었지만, 분석 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세계대전, 나아가 냉전 과정에서 유용하게 활용됐을 것이 분명하다. 장담하는데 지금도 미국의 캐비닛 안에는 기후변화부터 우주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비공개 시나리오가 쌓여 있을 것.
이야기를 다시 달로 되돌리면, 일명 Project Horizon라고 불렸던 미국의 계획은 심플했다. 소련이 먼저 달에 기지를 세우면 핵을 떨궈서 지워버리겠다는 것. 핵을 썼을 때의 파급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먼저 소형 원자로를 터뜨려 보자는 시연 계획도 진지하게 검토했었다.
후대의 우리에겐 다행스럽게도 Project Horizon은 계획에 그쳤다. (자칫하면 달, 그리고 지구도 지금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뻔했다.)
하지만 Plan B로 다뤄졌던 Operation Fishbowl 미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달 지면에 직접 쏘는 게 아니라 ‘우주 공간’'에서 핵을 쓰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것. Project Horizon과 달리 이 계획은 실제로 수차례의 시연이 이뤄졌다.
그 결과, 과학자들과 정치인들은 핵의 위력(그리고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철저한 계산과 통제 하에 이뤄졌다고 생각한 시연으로 대규모의 통신 네트워크 파손 등 예상치 못했던 사건 사고들이 일어난 것.
일련의 시도 끝에 미국과 소련은 우주에서의 핵 사용을 금지하고 우주에서 군사 경쟁을 하지 않겠다고 합의하게 된다. 아이러니하지만 ‘우주에서 핵을 쓰면 어떻게 될까’'라는 엉뚱한 계획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말.
그리고 그 이후 약 60년이 흘렀다. 소련 대신 중국이 새로운 우주강국으로 도약했고, 인류는 그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발전된 기술을 가지게 됐다. 앞으로 20년 내로 인류가 달에 정주하는 시대가 온다고들 한다. 그 결과 우주를 둘러싼 긴장도 다시금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그 목적이 경쟁이든 공존이든, 이미 미국은 인류가 다행성종이 된 미래를 가정하고 제2의 Project Horizon을 짜느라 열심일 것이다. 그리고… 미국 말고도 시나리오 작업에 한참인 나라(그리고 기업)이 수십 개는 될 것이다.
Wish for the best, Prepare for the Worst. 지금이야말로 Think big and plan ahead 정신이 필요할 때다. 꼭 싸움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