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1869년 Thomas Nast라는 삽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엉클 샘(미국을 상징)의 추수감사절 만찬’이란 제목의 이 그림은 1869년에 그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진보적이다.
그로부터 15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세상은 PC와 DEI를 둘러싼 논쟁으로 시끌벅적하다. 아, 물론 그동안 진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리고 저 그림에 당시의 시대상이 온전하게 담긴 것도 아니다. (미국은 1960년대에 이르러 비로소 인종에 따른 투표권 차별을 제도적으로 근절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건 분명하다.
서양의 주류 철학은 역사를 고속도로처럼 묘사한다. 종종 헤매긴 하지만, 결국 인류는 더 나은, 보다 진보한 미래로 나아간다고 믿는다.
반면 동양 철학은 역사를 순환의 과정으로 여긴다. 마치 반복되는 사계절처럼 인류는 위대함과 어리석음, 풍요와 빈곤, 삶과 죽음 사이를 비틀거리며 방황한다.
19세기말, 미국은 경제적 활력과 도덕적 자신감이 넘쳤고 이에 힘입어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만국에서 온 사람들이 평화롭게 어울리며 만찬을 즐기는 그림은 당시의 진보적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 또 다른 그림이 있다. 우연인지 노렸는지 알 수 없지만 제목이 같은 이 그림은 앞의 작품과 고작 8년의 격차가 있을 뿐이지만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평화와 조화로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쥐를 먹는 중국인, 집사로 전락한 흑인, 따돌림당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그리고 입구에 막혀 밖에서 서성이는 다양한 이국인들.
불과 8년 만에 행복했던 만찬 자리는 불쾌하고 무질서한, 그리고 왠지 위험해 보이는 자리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몇 년 뒤인 1886년, 미국은 중국인들의 이민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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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은 마치 중력처럼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로 화합케 하고, 궁극적으로 영원한 평화를 보장해 줄 것이다."
1846년 영국 정치인 Richard Cobden이 남긴 말이다. 이후 약 2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세상은 저 말을 똑같이 읊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있다.
기술은 갈수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의 선조들이 겪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역사는 반복된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 보여도 그게 '최악'이란 건 대부분의 경우 착각이다. 최근 신냉전과 정치 양극단 때문에 불안해하는 분들이 많지만... 기출문제가 존재하는, 인류가 이미 풀어본 문제들이다.
아 물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식의 패배주의를 권하는 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지만 과거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순 있다. 계절을 흐름을 바꿀 순 없지만 장마에 대비해 물길을 파고 폭설에 앞서 온돌을 까는 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