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은 돈이 넘치는 시대였다.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전 세계 금리는 0%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해 왔다. 사실상 돈을 거저 빌릴 수 있었던, 투자를 넘어 투기를 조장하는 사회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 막대한 돈을 끌어와 Startup들을 상장시킨 다음 큰 이익을 남기고 Exit 하는 걸 반복하는 Venture Capital들이 전 세계 투자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저금리는 심리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나 시간의 개념을 왜곡한다. 금리가 낮아져 빌린 돈으로 버텨야 할 시간이 길어지자 반대급부로 먼 미래가 갑자기 가깝게 느껴지는 부작용이 생겨났다. 온 세상이 넘치는 돈에 취해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자극적인 아이디어들에 거액을 투입했다. 제대로 된 매출 전망도 없는 회사들이 멋진 스토리텔링과 한순간의 유행, 신격화된 셀럽 CEO의 이미지에 힘입어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기 일쑤였다. 투자를 하는 자와 받으려는 자, 둘 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서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미국 연준은 2022년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버핏이 말했던, ‘파도가 빠지면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던 게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바로 그 순간이 온 것이다. 돈이 귀해지자 그동안 Fundamental 없이 허풍으로 벌어먹고 살았던 회사들은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스타 경영자들 중에서도 고소에 시달리거나 옥살이를 하게 된 사람들이 속출했다. 돈이 흔했던 시절엔 암묵적으로 용인되었던 허풍 테크닉도 더 이상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다. (Fake it until you make it)
음, 그렇다면 쉬운 대박을 노리던 저금리 시대의 행태는 금리가 오르면서 다 사라진 걸까? 그렇진 않다.
요즘 산업 트렌드를 지배하는 키워드는 역시 AI이다. 생성형 AI의 화제성에 힘입어 엔비디아는 세계에서 가장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 중 하나가 됐다. 최근 Deepseek 사태가 보여줬듯이 나머지 Magnificent Seven 멤버들도 회사 가치의 상당 부분이 AI에 대한 세상의 기대감에 의존하고 있다.
금리가 높을 때나 낮을 때나 인류의 짧은 시야와 줄어들지 않는 탐욕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의 현찰과 시간, 그리고 영혼을 투자할 수 있는 테마를 간절하게 찾아 헤맸고 그 결과 AI라는 구세주를 만났다.
생성형 AI는 분명 실체가 있고 엄청난 파급력이 예상되는 기술이다. 앞으로 기술이 더 정교해지면 각종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성 혁명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AI를 우리 일상 속에 어떤 형태로 접목할 수 있는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몇몇 업종에서 선제적으로 AI를 활용한 공정 자동화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AI를 민감하고 중요한 분야에 활용하기 위해선 할루시네이션, 전력 부족, 보안, 지재권 등 관련 규제 정비 등 여러 가지 난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과거 카톡이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AI를 활용한 Killer app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AI를 마치 램프의 요정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저출산, 경기 침체, 공급망 문제에 이르기까지 – 마치 AI가 모든 걸 다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고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AI도 기술을 넘어 상용화된 제품으로 자라 잡기 위해선 아직 갈 길이 멀다. 대량의 규모로,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인 니즈를 꾸준히 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수준의 가격대로 제공할 수 있어야 비로소 AI 주식에 반영된 가치에 실체가 생기게 될 것이다. AI가 거품인지 진짜 붐인지는 AI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달렸다.
하지만… 누굴 탓하겠는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건 아무리 금리를 높여도 변하지 않는다. 단지 탐욕을 투사하는 대상이 바뀔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