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우리도 간다
1969년 7월, 인류는 처음으로 달에 족적을 남겼다
그로부터 50여 년, 인류는 다시 달로의 귀환을 준비하고 있다. 선두에 있는 것은 이번에도 미국이다. 논란의 연속이었던 트럼프 행정부였지만 미국의 우주개발에 다시 불을 붙인 업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2017년, 트럼프는 유인 달 탐사 프로그램의 재개를 선언했다, 이제는 '아르테미스 계획'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바로 그것이다. (참고로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아폴로의 쌍둥이 누이이자 달의 여신이다)
뒤를 이은 바이든 행정부는 전 정권의 많은 것을 부정했지만 우주만큼은 예외였다. 인선 및 일정을 둘러싼 진통이 다소 있었지만 작년 12월 아르테미스 발사체(SLS)와 우주선(Orion)의 성능을 검증하는 아르테미스 1호가 성공리에 완수되었다. 이제 목표는 2025년 유인 달 착륙이다.
과거와 달리 이번엔 미국만 나서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은 2020년에 이미 달 표본 채취에 성공했으며 2027년까지 달 기지를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인도, 일본이 올해 무인 달 착륙을 시도할 예정이며 이스라엘, 호주, 캐나다 등도 달 탐사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작년에 달 궤도선 (궤도를 돌면서 달님을 관측하고 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다누리를 쏘아 달 탐사의 막을 열었고, 2032년에는 무인 달 착륙선을 보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착륙선 개발은 내년부터 시작 예정)
수십 년이 넘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왜 갑자기 달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곳 지구에도 해야 할 일(=돈 드는 일)은 차고 넘치는데. 미국이 2025년 유인 달 착륙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돈은 930억 달러다. 심지어 이것도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이런 종류의 미션은 언제나 계획보다 돈이 더 들기 마련이다. 둘째, 달 착륙 이후 예정되어 있는 본격적인 달 개척에 들어가는 비용은 빠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달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50년 전과 지금의 달 탐사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말 그래도 탐사가 목적이었다면 이제는 달을 상주할 수 있는 거점으로 개척하는 것이 목표이며, 그 배경에는 허세가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식민지’라는 표현이 더 솔직한 느낌이 들어 선호하지만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분위기다).
거점을 확보하라
바둑에서 3x3을 선점하면 한 귀를 차지할 수 있다. 밖으로 더 깊은 우주를 개척하고, 안으로 궤도위성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데 있어서 달은 매우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할 것이다.
달은 지구보다 중력이 6분의 1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훨씬 더 적은 연료로 깊은 우주를 탐사할 수 있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위성이나 로켓을 수리 또는 주유하는 정거장으로도 활용 가능할 것이다. 달에 통신국을 세워 지구 궤도 위성들과 연계하여 진정한 우주인터넷을 구현하는 아이디어도 논의되고 있다
만약에 우리의 기대처럼 달에서 물과 산소를 채취할 수 있게 된다면? 남극기지처럼 달기지에도 상주 인원 주둔이 가능해진 달의 전략적 활용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자원을 확보하라
영화 ‘Don’t Look Up’에서 미국의 지도자들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소행성을 폭파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행성에 매장되어 있는 각종 희귀광물을 탐내다 인류 멸종 (아주 잘 만든 영화다, 추천)
달에는 엄청난 량의 광물과 희토류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는 것이 헬륨3. 1g만 있어도 석탄 40톤과 비슷한 에너지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태양풍에 의해 달에 계속 쌓이고 있어서 고갈될 우려도 없다
어떻게 지구로 자원을 가지고 돌아올 것인지라는 난제가 있긴 하지만 환경오염과 에너지 고갈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미래를 확보하라
극한의 환경에 도전하는 우주개발은 새로운 기술에 영감을 주는 혁신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 MRI, 컴퓨터, 스마트폰, 전기차, 무선 충전, 메모리폼까지 우리 일상 곳곳에는 우주 개발에서 파생된 기술들이 녹아들어 있다. 아폴로 탐사는 멋진 사진 몇 장과 흙 한 줌만 남긴 것이 아니라 3천여 건의 특허와 수많은 신기술, 신산업으로 남겼다.
아르테미스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겠지만 그 돈은 우주 허공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인류는 뚜렷하고 도전적인 목표가 있을 때 가장 큰 잠재력을 발휘한다. 과학적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달을 제2의 지구로 삼는다는 것처럼 확실한 목표는 없다
Final Thought
중국이 우주개발에 집착하는 이유를 미국의 포위망을 탈출하기 위해서라고 보기도 한다. 제해권, 제공권을 넘어 제우주권의 시대가 올 것이다. 우주 거점을 선점하면 지구 육해공에 펼쳐 놓은 포위망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달 기지는 우주시대의 ‘항공모함’이 될 수도 있다
당장은 지정학적 용도가 커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기술적 파급력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우주경제가 커지면 달은 지구-지구궤도-달-화성을 연결하는 우주 실크로드의 요충지로 떠오를 것이다. 수에즈 운하가 대영제국, 파나마 운하가 미국의 부상을 상징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달 착륙선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선정되어 검토 중이다. 정부에서 2032년 달 착륙을 선언했고 다누리도 순조롭게 미션을 수행하고 있는 만큼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을 보인다
유일하게 우려되는 부분이라면 국민들의 지지. 성과를 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우주산업은 국민 지지에 기반한 정책 동력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이제부터 미국을 시작으로 선진국들의 화려한 우주 미션들이 예정되어 있다. 국민 여론이 우주개발 불요론 (우린 안될 거야)으로 흘러갈지 아니면 성원하는 목소리(일본에게 질 수 없다)가 커질지 궁금하다.
Note: 최근 KISTEP(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서 재미있는 대국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달 착륙선 사업’을 위해, 향후 5년간 한시적으로 최대 얼마까지 추가로 세금을 낼 용의가 있습니까’를 묻는다, 과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매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