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하나를 던져본다는 생각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리뷰: 스포일러 주의!

by 홍시

*리뷰 전체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의하여 주세요.


이 영화를 두 번 보았다. 개봉했을 때 한 번, 최근에 한 번. 첫 관람에는 멀티버스의 사용에 감탄하고 그쳤다면, 두 번째 관람하고 나서 나는 조부 투바카의 대사를 오래 곱씹게 됐다. 에블린이 수없는 유니버스를 다녀오고 베이글의 내부를 본 이후에, 에블린과 조부 투바카가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의미없다(Nothing matters.)라고 말하는 조부 투바카에게 에블린이 동의한 뒤, 돌 유니버스에서 조이(여기서는 조부 투바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다.)는 이런 말을 한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당신이라면 다른 말을 해줄 줄 알았어.


조부 투바카가 온 유니버스를 헤집어 에블린을 찾아다녔던 것은 에블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조이는 모든 것을 보고 의미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십 년도 더 전에 내 상태가 조이와 같았다. 특별한 의미는커녕, 조그만 의미라도 갖는 일, 상황, 물건, 사람, 행동 등이 아무것도 없었다. 삶은 막막했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려 약이 없으면 5분도 잠들지 못했다. 당시 내가 바라는 건 숙면보다도, 그저 안식이었다. 아무것도 의미가 없었다(Nothing mattered.).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아무것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조이, 조부 투바카가, 자신을 망가뜨린 어머니 에블린이 다른 말을 해줄 줄 알았다고 하는 말은 꼭 어머니에게서 구원을 바랐다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을 그렇게 몰아세운 것이 에블린이었는데도 에블린을 찾아 같은 것을 보여주었다는 것이, 에블린이라면 같은 이해를 넘어서 희망의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돌 유니버스에서 조이가 이 말("당신이라면 다른 말을 해줄 줄 알았어.")을 했을 때, 조이의 허탈함과 실망이 보였다.


조이가 에블린과 함께 베이글에 들어가려는 것도 자살이라는 단순한 키워드로 볼 수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의미 있지 않은 곳으로 에블린과 함께 넘어간다면, 조이는 거기서 안정을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온 유니버스가 다 보이는 이 세계는 너무나 많은 일이 책임질 수 없이 일어나고, 그 모든 일은 결국 의미없이 땅으로 떨어지니까. 조이는 넌덜머리 나는 세계에서 에블린을 데리고 떠나고 싶었을 것이다. 에블린을 사랑해서? 에블린에게 의지해서? 영화 내내 이야기되는 모녀관계를 생각해보면, 어느 것도 답이 아닐 수도 있고 둘 다 답일 수도 있겠다.


영화의 말미에, 베이글에 반쯤 들어간 조이를 끄집어낸 에블린이 말한다.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무엇도 의미있지 않으니까(Nothing matters.).


같은 말이어도 에블린의 말과 조이의 말이 주는 의미는 다르다. 조이가 허무를 말했다면, 에블린은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해볼 수 있다는 의지를 던진다. 이것은 희망과는 성격이 다르다. 희망은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에블린의 의지는, 가능성이 없어도 해볼 수 있다는 힘이다. 의미 없는 세상에서, 달라질 것을 기대하지도 않고 돌 하나를 던져본다는 생각이다. 세상이 달라지든 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돌을 던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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