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를 받아 어렵게 섭외한 재즈 트리오(아코디언(!!!), 드럼, 기타)는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앞으로도 내가 이벤트를 개최한다면 이 분들을 모실 계획이다. 혹시 궁금하신 분이 있으시다면 댓글 남겨주시길! (공연비도 너무 합리적이다) 본식은 내가 직접 선곡한 트랙으로 틀었고, 피로연 때 등장하셔서 2시간 동안 연주를 하셨는데, 세 분이 악기를 들고 입장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찌릿하다.
(2)하객의 흥
코로나 인원 제한으로 인해 플러스원을 허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데면데면 테이블에 앉았어야 했는데, 신기하게 흥을 돋구는 테이블들이 있었다. 감사하고 기뻤다.
(3) 술
오픈바를 해서 와인을 무제한 제공했다. 한 병에 6만원으로 비쌌지만... (예식장에서 이 와인만 가능하다고 함) 다들 와인이 맛있다며 끝없이 마시러 갔다. 술값으로 적자가 나면 성공한 예식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도 기뻐서 함께 많이 마셨다. 예식장이 현장에서 여러 실수를 하는 바람에 미안하다고 밤 9시부터는 와인에 더 이상 가격을 매기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새 똑똑한 시동생이 협상해 낸 결과였다.
(4) 어머님들의 의상
이전 글에서 남겼듯, 어머님들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한복인듯 한복 아닌 것 같은 망사 원단을 흩날리시며 우아하게 거니는 모습이 멋졌다. 시어머님은 55 몸매를 유지하고 계시지만, 우리 엄마는 그렇지가 않다. 여동생 결혼식 때 엄마가 빌려 입으신 한복이 엄마 몸매의 단점을 더 드러냈기에. 내 결혼식 때는 엄마의 모던한 세련됨이 뿜뿜 풍기게 하고 싶었다.
디자이너 쇼룸에 갔을 때, 시어머님이 갑작스레 "저는 핑크가 좋아요. 요즘엔 아들 엄마가 무슨 색 입어야 된다 이런 거 없대요."라고 선언하시고 핑크를 착용해보시는 바람에, 우리 엄마가 살짝 언짢아졌던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지만. 사실 엄마는 핑크보다 에메랄드색이 훨씬 세련되게 잘 어울려서 결론적으로는 좋았다.
하여튼 그 날 두 어머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청담동에서 큰 맘 먹고 한 메이크업도 빛을 발휘했다. 시어머님은 흰 피부에 밝은 핑크가 눈부시게 잘 어울려 소녀 같았다. 우리 엄마는 모던하고 고혹적(!)이었다. 엄마의 세련된 이대 미대 동창들이 엄마 드레스가 너무 예쁘다고 부러워했다. 두 분이 테이블 사이를 걸어다닐 때마다 선녀들이 다니는 것 같아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그 날의 가장 멋진 내 작품이었다.
오랜만에 그림 좀 그려봄
요렇게 답례품도 마련 (thanks to 사당동 지금의 세상)
11월의 나잇 파티
그렇게 꽤 재미있던 결혼식 뒷 정리를 마치고 밤 11시쯤 호텔로 가던 택시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9시가 지나갈 무렵, 시어머님이 강제로 결혼식장을 뜨실 뻔 했다는 것.
결혼식 준비를 할 때 아버님이 "큰 형이 머무실 숙소를 알아봐라."고 남편과 시동생에게 명한 적이 있었다.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남편이 불평을 하면서 전해주었던가 지나가는 말로 들었다. 그 때 남편도 시동생도, "됐어! 뭐하러 방을 잡아줘! 무시해!"라는 반응이었다. "10만원 정도만 쓰면 되는데, 무시를 해도 되나..? 그냥 잡아드리면 안되나?"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친척들 아무도 방 안 잡아주는데, 왜 큰 아빠만 잡아드려? 장모님도 호텔에서 안 주무시고 내려가겠다고 하시잖아. 우리 친가 친척도 다 내려갈 거고, 아빠도 그것 때문에 9시에 끝내자고 우겼던건데. 왜 큰아빠 방을 잡아줘야 하는지 모르겠는데??"라고 했다. "그래도 안 잡아드리면 안 잡아드린다고 말씀이라도 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그러면 또 동생한테 전화해서 호통칠거야. 당장 예약하라고. 그냥 무시해. 내가 책임질게."라고 이야기했다.
후에 이 대화를 이야기하니 남편은 전혀 기억이 안난단다. 내가 꿈을 꾸었나. 결혼준비로 정신 없이 바쁘던 시절이었는데, 그 때의 쎄한 그 느낌을 나는 또렷이 기억난다.
그리고 문제가 터졌다.
아버님의 큰 형은 이벤트를 오래 못버티시는 분이라, 본식이 끝나자마자 7시반쯤 친구들을 만나러 교대역에 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님에게 "내가 잘 곳은 어디에 있는가?" 전화를 하셨다. 그제서야 아버님은 큰 형님의 숙소를 잡아두지 않았단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셨다고. 남편과 도련님이 교대역 부근에 호텔을 잡아주겠다고 하였지만, 아버님은 "됐어!!! 돈쓰지마!!"라고 하시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내셨다.
내가 형님을 모시고 잘테니, 당신은 둘째 네 집에 가서 자. 지금 당장 호텔에 가서 당신 짐 옮겨.
때는 9시. 우리 식은 10시까지로 예정되어 있었고, 어머님의 친지들은 재즈 공연을 한창 즐기고 신청곡도 넣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던 때였다. 도련님은 "우리 집 좁아서 안돼! 엄마 그냥 놀게 둬!! 왜 우리 집에 와서 자라고 해!"라며 반대를 했지만, 아버님은 들은 척도 안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은 당황을 하셔서 본인의 짐을 챙기기 시작하며 친지들을 급하게 집에 보내셨다고 한다. 어머님이 옷이며 선물이며 한 짐을 들고 택시를 부르러 나가시자, 우리 엄마도 시어른이 어디가시나 놀라서 황급히 따라나갔다고.
결국 남편과 도련님이 교대역 근처에 호텔을 잡아서 큰 형님께 안내를 해드리고, 시어머님은 친지가 떠난 결혼식장에서 10시까지 넋이 나간 채로 앉아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님은 지금 어디 계셔?"
"호텔에 있지."
"아버님은?"
"같이 호텔방에서 자고 있겠지."
오 마이갓.
아버님에게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던 나는 지금 당장 아버님께 가서 무슨 영문에서 그러신건지 대화를 나눠보자고 했다.
남편은 나를 뜯어말렸다. 아빠는 역정을 낼 거고, 말이 통하지 않을 거라고.
열불을 내는 나에게 남편은 부탁을 했다.
그러면... 우리 엄마랑 와인이라도 한 잔 마셔주면 안될까? 우리 엄마 지금 잠도 못자고 있을거야.
그 때만 해도 집안 분위기를 모르던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남편의 부탁에 응했다.
남편도 마음의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벌어진 밤 12시의 술판.
남편 말마따나 시어머니는 눈이 부으신 채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셨다.
우리 셋은 호텔 부근의 편의점에 가서 와인 한 병을 샀다.
그리고 후에 한 병을 더 사왔다.
어머님은 계속 울음을 멈추지 못하셨다.
아버님은 사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하셨다가,
속이 문드러져서 참을 수가 없다는 말씀을 번갈아 가면서 하셨다.
나는 며느리 앞에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억눌러야 하는 어머님이 안타까웠다.
아버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앞에서
한숨을 쉬며 가슴을 치고 마는
어머님과 두 아들의 행보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집이었다면 상처를 준 상대방에게 '이건 잘못된 것 같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
이 날 밤의 대화 중 상당 부분은
남편과 어머님으로부터
'그런 상식적인 접근은 우리 남편(아빠)에게 안 통해!'라는 말을 듣는 것이었다.
Mom-in-law (Adobe Firefly)
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까.
왜 슬프다고 할 수 없을까.
어머님이 내가 곁에 있어주어서 행복하고 고맙다고 하셨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풀리질 않았다.
제주도로 2박 3일 신혼여행을 가서도 주변 아버님 동년배의 어른들께 전화를 돌리며
'도대체 아버님이 왜 그런 것인지' 이유를 물어보았다.
다들 뾰족한 답이 없었다.
그 시대 어른들은 그런 것이라고.
일찍 할아버님을 여의고 큰 형을 아버님처럼 모시다보니 결례를 범했다는 생각에 앞서 부인의 마음이나 부인의 친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 본인의 '휘하'에 있는 가족을 희생해 큰 형님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을 것이라는 것. 호텔을 잡아드린 이후에도 어머님 생각은 커녕, '진작 큰 형님을 잘 모시지 못해 죄송하다. 한 번 더 챙길걸'하는 생각 뿐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