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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찬》시나리오. 1막

전직 김정일 요리사가 탈북하여 서울에서 식당을 차렸다.....

by SeaWolf


INT. 한강 다리 위 – 새벽

서울의 끝자락, 밤이 막 물러서는 시간. 검은 강 위로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바람이 다리를 따라 휘돌며, 금속 난간에 부딪혀 울린다. 불빛은 희미하고, 세상은 잠들었다는 듯 고요하다.

한 남자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다. 등장인물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그의 실루엣만이 달빛 아래 떨리고 있다. 손에는 오래된 조리도구가 들려 있다—검은 강철 나이프, 손잡이에는 ‘金’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그는 천천히 나이프를 들어, 달빛에 비춘다. 칼날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진다. 마치 눈물 같다.

그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낸다—성형 전 사진. 흐릿한 흑백 사진. 젊은 남자가 북한식 제복을 입고, 국빈 만찬장 앞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다. 그의 이름은 강철수.

또 다른 손바닥 위에는—봉투 하나. ‘DNA 검사 결과’라고 적혀 있다. 아직 뜯지 않았다.

강철수는 그 결과지를 바라보다,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조용히, 마치 삼키듯이.

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의 코트 자락이 펄럭인다. 그는 난간에서 몸을 떼고, 천천히 다리를 건넌다. 등 뒤로는 새벽의 서울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강철수 (V.O.)(조용히, 속삭이듯)요리란…처음엔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습니다.


INT. 지하 주택 주방 – 아침

낡은2층 주택의 지하. 콘크리트 벽, 곰팡이 자국,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 하나가 깜빡인다. 주방은 좁지만, 정돈되어 있다. 모든 조리도구는 정확한 각도로 배열되어 있다. 마치 군대의 정비대 같고, 동시에 예배당 같다.

강철수가 주방에 들어선다.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 흰 앞치마를 두른다. 손을 씻는다. 물이 흐르는 소리. 그는 거울을 본다—성형한 얼굴. 날카로운 이목구비, 수술 흔적이 옆턱에 남아 있다.

그는 냉장고를 연다. 안에는 고사리, 더덕, 도라지, 미나리, 갓 캔 송이버섯—모두 북한 산지의 재료들. 그는 손끝으로 하나씩 만진다. 마치 오랜 친구를 어루만지듯.

칼을 꺼낸다. 같은 나이프—‘金’ 자가 새겨진. 칼날이 빛을 머금는다. 그는 도마 위에 더덕을 올리고, 천천히 썬다. 얇고 정확한 슬라이스. 소리조차 거의 없다.

시계가7시를 친다. 그는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린다. 물이 끓기 시작한다. 그는 찻잔에 말린 국화와 대추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신다. 첫 잔은 항상 조상에게 바친다—작은 잔을 바닥에 천천히 쏟는다.

주방 벽에는 오래된 메모지들이 붙어 있다. 손글씨로 적힌 요리법. 하지만 그중 하나는 붉은 잉크로 쓰여 있다.


“죽음의 조리법:> 독을 섞지 마라.> 맛을 조절하라.> 배고픔을 유도하라.> 식욕을 자극하라.> 과식하게 하라.> 간이 먼저 죽는다.”

강철수가 그 메모지를 본다. 눈을 감는다. 잠시. 숨을 고른다.

EXT. 서울 골목 – 아침

낡은 동네. 세월이 쌓인 벽돌집, 빨래줄, 고양이가 골목길을 가로지른다. 간판 하나—작고 검은 글씨로 ‘마지막 만찬’이라고 적혀 있다. 문은 닫혀 있다. 문 옆에는 작은 종이 하나.


“이곳은 예약제 식당입니다.> 죽기 전 먹고 싶은 음식을 알려주세요.> 하지만 대신, 당신이 요리로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야 합니다.”

한 여자가 다가온다.60대쯤. 옷차림은 소박하지만, 눈빛이 날카롭다. 그녀는 종이를 읽고, 손을 떨며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낸다. 손글씨.


“죽기 전 먹고 싶은 음식: 김치찌개, 그때 그 맛처럼.”

그녀는 종이를 문 아래 틈새에 밀어넣는다. 그리고 멈춰 선다. 오랫동안.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INT. 지하 주방 – 오전

강철수가 종이를 들어 올린다. 읽는다. 표정은 없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는 냉장고에서 오래된 김치단지를 꺼낸다. 뚜껑을 연다. 김치 냄새가 퍼진다—깊고 시큼하며, 오래 묵은 발효의 향.

그는 김치를 도마에 올린다. 썬다. 국물도 따라낸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모든 재료를 정확히 측정한다.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린다. 불은 중불. 그는 불을 보며 속삭인다.

강철수(속삭임)김치찌개는…기억을 끓이는 국이다.

냄비가 끓기 시작한다. 김이 올라온다. 그는 그 김을 마주 본다. 눈을 감는다. 기억이 흘러든다—

**FLASHBACK – INT. 북한 국빈 만찬장 – 밤 (1990년대)**거대한 대연회장. 붉은 카펫, 금장 조명, 군복 입은 경호원들이 벽을 따라 줄지어 선다. 중앙 테이블에는 최고지도자와 소련 대사, 중국 특사가 앉아 있다.

강철수는 흰 요리복을 입고, 조용히 김치찌개를 서빙한다. 국자로 국물을 떠올린다. 김이 피어오른다. 지도자가 숟가루를 들고 국을 떠 먹는다. 만족스러운 미소.

하지만 옆자리의 중국 특사—장군 출신—는 국을 두 숟가락 뜨고 멈춘다. 얼굴이 붉어진다. 손이 떨린다.

경호원들이 다가간다. 특사는 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배가 아프다”라고 말한다. 강철수는 조용히 그를 본다. 눈빛은 차갑다.

그는 요리대장에게 귀띔한다. 요리대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다음 날 뉴스: 중국 특사, 갑작스러운 간부전으로 사망.

강철수는 조리실에서 김치를 씻는다. 손끝에 붉은 국물이 묻어 있다.

요리대장 (속삭임)“맛이 너무 좋았지. 그래서 많이 먹었지.그게 죄냐? 네가 죽인 게 아니라,욕심이 죽인 거다.”

강철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처음으로 죄의 그림자가 비친다.


INT. 지하 주방 – 현재

김치찌개가 끓는다. 강철수가 국을 시식한다. 맛을 본다. 잠시. 눈을 감는다.

강철수(속삭임)그때도…이 맛이었지.

그는 국그릇을 준비한다. 나무 뚜껑을 덮고, 식탁 위에 올린다. 식탁은 하나뿐. 나무 테이블, 두 개의 의자. 하나는 손님용, 하나는 자기용.

그는 종을 울린다—작은 청동 종. 소리가 골목을 따라 퍼져 나간다.


INT. 지하 주방 – 오후

여자가 들어온다. 문이 닫히고, 외부 소음이 사라진다. 그녀는 주방을 둘러본다.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오직 냄비와 김치단지, 그리고 그 김치찌개가 담긴 그릇.

강철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강철수오셨군요.김치찌개 준비했습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리에 앉는다. 강철수가 국그릇을 앞에 놓는다. 뚜껑을 연다. 김이 올라온다. 그녀는 국을 본다. 숟가락을 들지만, 먹지 않는다.

여자…이 맛이군요.

강철수는 침묵한다.

여자내 남편이… 그날 김치찌개를 먹고 죽었습니다.북한 만찬장에서.당신이 만들었다는 건 몰랐어요.지금도… 몰랐어야 했어요.

강철수는 고개를 든다. 처음으로 눈을 마주친다.

강철수…당신이 요리로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달라 했죠.

여자는 웃는다. 슬프게.

여자나요?내가 죽인 사람이라니…내가 죽인 건… 나 자신이에요.

잠시 침묵. 김이 식는다.

여자남편이 죽고, 나는 그를 원망했어요.왜 그렇게 많이 먹었냐고.왜 절제하지 못했냐고.그런데…알고 보니, 그는 그 김치찌개를 먹으러 간 게 아니라,그 자리에서 정보를 넘기러 간 거였어요.그는 스파이였고…당신의 요리가 아니라,내가 몰랐던 진실이 그를 죽인 거예요.

강철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강철수그럼… 당신이 죽인 사람은?

여자내 아들이에요.아빠를 원망하게 만들었으니까.18년 동안 아빠의 죽음을 요리 탓으로 돌렸으니까.그리고… 그가 자살했을 때,나는 또 그를 원망했어요.왜 그렇게 약하냐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소리 없이. 눈물만 흐른다.

강철수는 일어나, 찬장을 연다. 오래된 유리병을 꺼낸다. 안에는 김치 국물 같은 것이 들어 있다.

강철수이건…그날 만찬의 김치 국물입니다.내가 몰래 남긴 거예요.누군가의 진실을 기다리며.

그는 그 국물을 작은 병에 담아 여자에게 건넨다.

강철수이건…당신 아들의 기억을 위한 겁니다.그가 먹고 싶어 했던 맛이었을지도 모르니까.

여자는 병을 받아든다. 손이 떨린다.

여자…이제 먹어도 되나요?

강철수네.이건 구원의 맛입니다.

여자가 국을 떠먹는다. 맛을 본다. 눈을 감는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강철수는 창밖을 본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그의 그림자가 벽에 길게 드리운다.


INT. 지하 주방 – 밤

여자가 떠난 후. 주방은 조용하다. 강철수가 식탁을 닦는다. 그릇을 씻는다. 물소리. 그는 냉장고 위에 사진 하나를 올린다—자신과 아내, 어린 딸. 북한 시절. 모두 웃고 있다. 딸은 김치를 손에 들고 있다.

그는 그 사진을 본다. 손끝으로 딸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다시 주머니에서 DNA 검사 결과지를 꺼낸다. 이번엔 뜯는다. 종이를 펼친다. 읽는다.

그의 눈이 커진다. 숨이 멎는다.

화면이 검은색으로 전환된다.

강철수 (V.O.)(떨리는 목소리)…딸이 살아 있었어.

EXT. 공항 환승구역 – 새벽

무인 공항. 환승객들만 서성인다. 빛은 차가우며, 방송은 외국어로 흐른다.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걸어온다.

정민혁.34세. 검은 코트, 카메라를 메고 있다. 공식 신분은 ‘음식 평론가’. 하지만 그의 가방 안에는 국정원 파일이 들어 있다.

그는 스마트폰을 본다. 화면에는 ‘마지막 만찬’의 주소와, 강철수의 옛 사진이 떠 있다.

그는 사진을 확대한다. 눈빛이 차갑다.

정민혁 (속삭임)…아버지의 마지막 만찬을 만든 사람이 당신이군.

그는 전화를 건다. 연결된다.

정민혁예. 도착했습니다.작전은… 시작합니다.


INT. 지하 주방 – 아침

강철수가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다시 김치찌개. 이번엔 작게, 혼자 먹을 분량. 그는 국을 마신다.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문을 여는 소리. 강철수가 고개를 든다.

정민혁이 서 있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 미소를 짓고 있지만, 눈은 차갑다.

정민혁안녕하세요.“마지막 만찬” 주인이시죠?예약했는데요.“죽기 전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철수가 그를 본다. 침묵한다. 정민혁의 얼굴을 스캔하듯 바라본다.

강철수…무슨 요리를 원합니까?

정민혁김치찌개요.하지만…그게 아니라,“죽은 사람의 맛”이면 더 좋겠어요.

강철수가 눈을 반짝인다. 처음으로 긴장이 감돈다.

강철수그 대가로…당신이 요리로 죽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야 합니다.

정민혁물론입니다.제가 죽인 사람은…아버지입니다.

강철수가 손을 멈춘다.

정민혁그가 죽은 후, 저는 복수를 위해 살아왔어요.그리고 그 복수심이…아버지를 다시 죽였죠.그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다,누가 죽였는지 찾느라.

강철수가 그를 바라본다. 처음으로 인간적인 눈빛이 스친다.

강철수…당신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정민혁…맛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김치찌개였다는 건…슬프지만, 다행이기도 해요.

강철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조리대로 향한다.

강철수…그럼, 준비하겠습니다.

칼을 꺼낸다. ‘金’ 자 나이프. 칼날이 빛을 머금는다.

정민혁은 카메라를 든다.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그의 눈은, 강철수의 손을 주시하고 있다. 그 손이 어떤 요리를 만들지, 어떤 기억을 끌어낼지.


INT. 지하 주방 – 저녁

김치찌개가 끓는다. 두 그릇. 강철수와 정민혁이 마주 앉는다.

강철수가 뚜껑을 연다. 김이 올라온다. 둘 다 그 김을 본다.

강철수이 국은…죄의 맛이기도 하고,기억의 맛이기도 합니다.

정민혁이 국을 떠먹는다. 맛을 본다. 눈을 감는다.

정민혁…이 맛이군요.

강철수가 조용히 말한다.

강철수당신 아버지가 먹은 건…이 국이 아닙니다.

정민혁이 눈을 뜬다.

강철수그날 만찬엔 김치찌개가 없었습니다.그는… 다른 요리를 먹었습니다.그리고 그 요리는…내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정민혁은 충격에 빠진다. 침묵한다.

강철수나는 당신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하지만…내가 만든 음식으로 죽은 사람은 수십 명입니다.그들은 모두…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정민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눈빛이 흔들린다.

정민혁…그럼 왜 이곳에?

강철수속죄하기 위해.하지만…지금은…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민혁기다리고요?

강철수…딸을.

정민혁이 그를 본다. 처음으로 적이 아닌, 한 인간으로.

EXT. 한강 다리 위 – 새벽

다시 강철수가 다리 위에 선다. 바람이 분다. 그의 손에는 작은 유리병이 들려 있다—김치 국물.

그는 병을 바닥에 놓고, 성형 전 사진을 꺼낸다. 그리고 DNA 검사 결과지를 펼친다.


결과: 일치. 관계: 친자녀.

그는 사진을 가슴에 품는다. 유리병을 들어 하늘을 향해 들이댄다.

**강철수 (V.O.)**딸아…이제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해줘.아빠는… 준비되어 있어.

병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마치 신호처럼.

화면이 서서히 흐려진다.

FADE OUT.

END OF ACT1(1막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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