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글 :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우리말에 이런 말이 있다. ‘너 지금 잠이 오냐?’실적이나 성적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따끔한 질책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심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는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무언가 하는 일에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로 물어야 한다.'너 요즘 잘 자고 있니?'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잠은 어떤 방식으로든 부족하면 인간의 판단과 그로 인한 행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명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거나 수시로 잠을 박탈당하는 사람들은 그 어떤 경우보다도 수명이 단축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래서 고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고문 중 하나가 잠을 재우지 않는 것 아니겠는가.
단순히 신체가 손상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잠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는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자신도 모르게 내리는 경우가 생긴다. 노련한 주식 중개인이면서도 어이없는 실수로 0을 몇 개 더 붙이거나 빼고 매도·매수하는 경우도 지난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원인으로 밝혀진 사례가 많다. 아무리 정신무장과 군대 윤리교육이 잘된 병사들이라 할지라도 48시간 이상 잠을 자지 못한 경우에는 전투에서 엉뚱하게 양민부터 학살하는 사례가 전쟁사에서도 무수히 많이 보인다.
영국에서는 청소년들을 1시간씩 늦게 등교시켜(1시간 더 재워) 범죄율을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룰 수 없던 수준으로 낮출 수 있었다. 대형병원의 의료 사고를 낮추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은 의사들을 조금이라도 더 잘 수 있게 하는 조치를 통해 가능해졌다는 연구도 있다.
필자가 한 방송사와 같이 취재해 본 결과 심각한 수준의 난폭운전과 보복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지난 일주일 동안 수면 양이 평소보다 현저하게 적은 이들이었다. 수면에 있어 질적이든 양적이든 부족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와 실패에 대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연구와 사례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잠은 대부분의 경우 가장 쉽고 빠르게 다른 일들을 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거래되게 마련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늘 모자란 잠의 양만큼 부풀려진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간다.특히 한국은 이 점에 있어, 그 어떤 문화보다도 위험하다.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 미국 플로리다 대학 교수 연구에 의하면 욕구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수면과 여가다. 의외로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은 것은 술, 커피, 인터넷 사용 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직장이나 사회가 그 양을 줄여 욕구의 충족을 막는 경향이 가장 강한 것이 전자고, 가장 관대한 것이 후자라는 것이다. 직원들의 잠과 여가에 관심 가지는 회사가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회식이다, 커피머신이다, 와이파이 장비다 하면서 이런 것들에는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당연히 잠과 여가는 긴 시간을 필요로 하고 조직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회사나 기관이 신경 쓸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경영진이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우리 직원들과 구성원들이 요즘 잘 자고 있는지를 조직의 누군가는 늘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잠이 부족한 사람들의 수가 늘고 있다면, 혹은 구성원들의 평균 수면 시간이 전반적으로 줄고 있다면 그만큼 우리 조직에서 예상 밖의 사고가 터질 확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과가 좋지 않은 사람의 잠을 걱정해 주는 상사와 시스템이 있는 우리의 조직 문화를 한 번 기대해 본다. 투자 대비 성과가 결코 나쁘지 않다.
김경일의 CEO 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