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고 노르웨이의 국경 넘기 ft. grocery shopping
아, 이게 내 첫 경험이 되겠구나.
비행기도 아니고 배도 아닌, 차를 타고 국경을 넘는 첫 경험 말이다. 근데 그 이유가 장을 보러라니.
내가 노르웨이에 살기 시작한 지 2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는 장을 보러 떠났다. 무려 스웨덴으로. 새로운 나라를 탐방하는 여행도 아니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한 것도 아니고 장을 보러. 순수하게 장을 보러 차를 타고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을 넘었다.
나는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내 여권도 챙겨갔다. 남편은 노르웨이인이니 검사를 안 한다 쳐도 나는 아니니까 혹시 몰라하면서 필요 없다고 말하는 남편의 말에도 일단은 들고 갔더랬다. 그리고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차에 올라탔다. "도로 옆에 여기는 스웨덴이라고 쓰여있고 거기에서 사람들의 신분증을 검사하겠지? 국경을 차로 넘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차에서 내려서 이쪽 발은 노르웨이에, 이쪽 발은 스웨덴에 있지롱! 같은 것을 할 수 있을까?" 혼자 넘치는 상상력으로 스웨덴으로 향했다.
그런데 웬걸 내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오슬로에서 스웨덴으로 이어진 고속도로인 E6번을 쭉 타고 가는데 '스웨덴'이라는 표지판을 그냥 슝- 지나간다.
으잉?
뭐 내려서 확인하고 그러는 거 없어? 그냥 간다. 그렇게 우리가 장을 볼 슈퍼마켓까지 슝-갔다.
으잉?
실망이다. 나는 거기에 뭐 내리는 곳이라도 있어서 내가 상상했던 대로 양발을 다른 국경에 하나씩 걸치고 사진도 찍고 좀 그럴 줄 알았더니. 이건 뭐 광양에서 광주 가는 고속도로 통과하는 거랑 똑같잖아. 심지어 국도로 가는 느낌이다. 고속도로의 톨게이트 통과 같은 것이 없었다. 그냥 이어진 길을 쭉 따라가니 '광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는 표지판이 길의 오른쪽에 덩그러니 세워져 있는 느낌. The end. 아 이런 거였어? 차로 국경 넘기? 상상했던 한 발씩 걸치고 국경에서 사진 찍기를 못한 나는 약간은 실망한 마음으로 스웨덴의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그렇게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 오듯 도착한 스웨덴.
일단 스웨덴으로 장을 보러 온 이유부터 설명을 좀 해보자. 알다시피 북유럽의 물가는 높다. 살고 있지만 살면서도 끊임없이 놀라는 중이다. 남편의 생일이 다가와서 책/문구점에 가서 선물 포장지와 생일 카드 한 개씩을 샀더니 만 오천 원이 나왔다. 생일 카드도 열면 뭐가 쁑-튀어나오는 입체 카드도 아니었고, 그저 평범한 카드에 앞면에 생일 축하한다는 글씨가 현란하게 쓰여있는 카드였는데 그랬다.
어쨌든 노르웨이 사람들도 본인 나라 물가가 비싸다고 생각을 하나보다. 그래서 환율상 스웨덴이 노르웨이보다는 싸기 때문에 스웨덴으로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한두 달에 한번 스웨덴으로 넘어가서 담배, 술, 고기, 치즈 등을 많이 사 오는 여행을 Harry tur (하리 여행), 이런 것들을 많이 하는 사람을 Harry folk (하리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보통 Harry folk이라고 하면 특정화된 이미지가 있어서 엄청 오래된 볼보차를 끌고 다니며 그 차로 큰 소리를 내고 매달, 또는 몇 달에 한 번씩 국경을 넘어 스웨덴에서 장을 보고 오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도 그걸 경험해보고자 스웨덴으로 온 것이다. 또 나는 스웨덴에 한 번도 못 와보기도 했고. 비록 친구들이 "그래서 스웨덴 어땠어? 뭐 봤어?" 하면 "응. 슈퍼마켓."이라고 말하게 됐지만.
아무튼 무엇이든지 여기가 더 싸다. 정말 웃긴 것은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경을 따라 대형 슈퍼마켓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여기 주차장에 주차되어있는 차들의 80퍼센트는 노르웨이 차다. (차 번호판에 노르웨이 국기, 스웨덴 국기 등이 그려져 있기에 구분이 가능하다.) 또 이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노르웨이어를 할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어들은 서로 다르게 생기고 약간 다르긴 하지만 서로 말이 통한다.) 이것만 봐도 국경 넘어 장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우스개 소리로 노르웨이 사람들은 장을 보러 스웨덴으로 가고 스웨덴 사람들은 장을 보러 덴마크로, 덴마크 사람들은 독일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
노르웨이 사람들이 스웨덴으로 장을 보러 간다고 해서 채소 같은 신선 식품을 사러 가는 것이 아니다. 보관기간이 긴 음식들이 주인데 치즈, 고기, 캔디류, 그리고 술. 술. 술(노르웨이의 주류에 붙는 세금은 특히 많다). 우리는 일단 슈퍼마켓 구경에 나섰다. 세일한다는 광고들이 크게 크게 붙여져 있어서 눈길이 갔다. 여기는 코스트코처럼 대형으로 파는 것들도 있는데 특히나 탄산음료들이 그렇다. 뚱 캔 500ml 탄산음료를 24개들이 한 박스로 판다. 근데 그 가격이 진짜 싸다. 환율 앱으로 저건 얼마지 하면서 한국돈으로 환산을 해보는데 한국에서보다 심지어 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생각하면서 쓸어 담는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닥터 페퍼 뚱 캔도 한 박스 넣고. 냉동고기들을 종류별로 담고, 치즈, 또 삼겹살을 찾아 삼겹살도 담는다. 캔디 가게에 갔더니 내 눈이 마구마구 돌아간다. 아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나. 세상 모든 캔디를 다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다. 캔디 가게라고 했지만 초콜릿, 캔디, 젤리 등의 sweets들이 가득하다. 스웨덴은 이런 것들이 특히 유명해서 우리도 사고 싶은 초콜릿, 젤리 등을 또 바구니에 담는다.
이렇게 슈퍼마켓과 캔디 가게만 돌아도 힘이 든다. 잠시 쉬면서 점심을 먹었다. 역시나 외식 가격은 여기도 사악하다. 햄버거 세트 하나 먹었을 뿐인데 만 오천 원이 나간다. .
다시 오후 장보기를 시작한다. 오후엔 술가게다. 술은 면세되는 병 수에 제한이 있다. 와인은 몇 병, 맥주는 몇 병, 코냑이나 보드카 같은 센 술은 몇 병 하는 식으로 개인당 제한이 있다. 남편은 그걸 알려주는 앱까지 설치해서는 바구니에 담으며 바로바로 계산을 시작한다. 남편은 임페리얼 포터 맥주를 좋아해서 그런 것들을 담고, 또 같이 먹을 와인과 한 번씩 찐한 술이 댕길 때 마실 보드카도 한 병 산다. 이렇게 두 사람의 면세 제한에 딱 맞게 가득히 술을 산다.
아시아 마켓도 한 번 가본다. 슬프게도 노르웨이에서는 쌈무를 살 수가 없다. 남편은 쌈무를 너무나 사랑해서 스웨덴의 아시아 마켓에는 쌈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희망에 찼었다. 그러나 아시아 마켓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날은 재고가 없었다. 실망한 얼굴로 아시아 마켓에서 라면과 과자만 사고 나왔다는 후기.
그렇게 우리의 '장보기'를 마치고 집으로 한 시간 반을 운전해서 온다. 오는 길에는 우리가 거쳐가야 하는 톨게이트처럼 생긴 세관이 있는데 이 곳도 거의 그냥 지나간다고 생각이 된다. 특별히 의심되는 차가 있거나 하면 세관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빼고는 스웨덴에 오듯 그대로 스웨덴을 떠나간다. 하루 종일 '장을 봤더니' 엄청 피곤하다. 이것도 추억이라 거실 바닥에 잔뜩 늘여놓고 사진을 찍었다. 내 생에 이렇게나 많이 장을 본 적은 학교 다니던 시절 MT 갔을 때뿐일 거다.
그날 우리가 쇼핑해 온 물품들.
그날 내가 인스타에 올리면서 단 해시태그
#아니요 #파티 예정 없어요
#아니요 #두명만 삽니다
덧,
지금은 노르웨이의 크로네 환율이 많이 떨어져서 스웨덴에서 장을 볼 때 이득이 없습니다. 그리고 국경 또한 코로나로 인해 폐쇄되어 스웨덴으로의 장 보러 가는 여정은 당분간은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