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샤를 합시다

브런치와 런치

by 무명

여름에 일했던 준스 그릴의 파스타가 먹고 싶지만 뒤끝이 좋지 않게 나와버려 다시 가기 뭔가 겸연쩍다. 연희동을 산책하면서 그나마 준스 그릴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가게를 발견했고 언젠가는 가보아야겠다고 눈도장을 찍어두었다.


아주 섬세하고 민감한 장기를 자랑하기에 거의 대부분의 한국사람이 좋아하는 치킨을 먹은 다음 날이면 십중 팔구 배탈이 난다. 거기에 맥주까지 더해지면 훨씬 더 치명적이다. 따라서 나는 치느님을 섬길 수가 없다. 매운 음식도 마찬가지다.


선데이 브런치, 햄버거 스테이크


나는 내 몸을 지킬 책임이 있다


제일 부러운 사람이 아무거나 먹어도 잘 소화시키는 튼튼한 내장 기관을 지닌 사람이다. 의식주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음식이다. 깨끗하게 조리한 음식을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면 건강은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번 나빠지기 시작하면 그때는 회복하는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내 주변 사람에게 의사보다 요리사와 친하게 지내기를 권한다.


언제부턴가 혼자 하는 식사가 너무 익숙해졌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좋지만 메뉴를 선정할 때 함께 밥을 먹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거나' 먹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까진 내 혀와 연약한 나의 장기를 보호할 의무를 상실하고 만다.


지난주 일요일도 어김없이 연희동 일대를 산책하고 있었고 아침 겸 점심으로 무얼 먹나 고민을 하다 말 그대로 브런치를 먹기로 결정했다.(하긴 요즘 브런치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 메뉴를 주문할 경우 음료도 함께 제공되므로 햄버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십여분을 기다리니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음식의 맛도 중요하지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듯이 먹음직스러운 모양을 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식사를 하기 전에 사진을 찍는 새로운 전통이 생겼기에 나 역시 먹기 전에 음식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해 사진기를 들이댄다.


진짜 음식을 즐기는 방법 역시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이다. 먼저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빵의 질감을 음미한다. 샐러드 드레싱도 좋지만 향과 신선한 야채들의 아삭한 맛을 느끼기 위해서는 올리브 오일과 발사믹 식초만 들어간 것이 때로는 소박하고 조촐하니 좋을 때가 있다. 구운 야채들과 계란 프라이가 스테이크와 함께 입 안 안에서 넘실대며 춤을 춘다.


언제나 점박이 말인형이 반겨준다


알리오 올리오의 변신은 무죄


오늘도 간만의 휴일을 맞아 사랑하는 연희동을 거닐고 있다가 엔초비로 간을 한 오일 파스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이끌리듯 그 곳으로 다시 향했다. 개인적으로 알리오 올리오는 알리오 올리오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파스타라고 해서 마늘만 썰 줄 아는 사람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며 얇게 저민 좋은 올리브유에 마늘 향을 듬뿍 입히는 것이 관건이며 담백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 때 소금이 아닌 엔초비가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갈릭 엔초비 파스타, 블랙 올리브도 가득 올려져 있다


가끔 다른 사람이 해준 파스타가 먹고 싶다

집에서 만든 음식은 어딘가 모르게 항상 엉성하다. 음식을 완벽하게 내기에 구비된 재료들도 부실하고 인덕션은 야채에 불을 붙이지 못하는데다 화력도 딸린다. 집이라서 그런지 왠지 늘어져있고 싶고 설거지와 뒷정리하는 것조차 너무 귀찮아진다. 이제 어제 마신 술 기운이 제법 달아난 기분이고 머리도 점점 맑아지는 것 같다. 요즘 하는 일에 대한 글을 쓸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