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장 왜 진주인가

내가 이 도시에 머무르게 된 이유

by Second Ride Lab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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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광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은 진주에 산다.

이 두 문장이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왜 하필 이 도시일까, 그리고 왜 관광일까. 처음에는 그냥 내 이력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질문들이 점점 무거워졌다. 어느 순간부터 도시와 학문이, 사는 곳과 생각하는 것이 따로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관광은 그냥 구경이 아니더라

관광을 공부하면서 내가 궁금했던 건 '어디가 더 유명한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왜 그곳에 머무를까'가 더 궁금했다.


주변엔 화려하게 소개되는 관광지가 많다. SNS에도 넘친다. 그런데 막상 다녀오면 기억에 남는 게 별로 없다. 사진은 예쁘게 나왔는데, 그게 다다. 반대로 어떤 곳들은 특별히 '인스타 감성' 같은 게 없는데도 자꾸 생각난다. 사진으로는 잘 안 담기는데 감정의 무게가 남아 있는 곳. 한 번 가서는 알 수 없고, 머물수록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장소들.


나는 그런 공간들이 궁금했다.

그러다 보니 하나씩 알게 됐다. 관광이란 건 '구경'이 아니라 '관계 맺기'라는 걸. 어떤 장소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는가의 문제라는 걸.


이런 감정을 관광학에서는 '장소 애착(Place Attachment)'이라고 부른다. 그냥 어딘가를 다녀오는 게 아니라, 그곳과 정서적으로 이어지는 과정 말이다. 진정한 여행 경험은 소비가 아니라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


진주는 나한테 바로 그런 도시였다.


도시를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읽고 싶었다

나는 진주를 좀 다르게 읽어보고 싶었다.


'방문객 100만 명 돌파!' 같은 숫자보다, 그 사람들이 남강변을 걸으면서 뭘 느꼈는지가 더 궁금했다. 관광은 숫자로 측정되지만, 도시는 감정으로 기억되니까. 그래서 이건 그냥 진주 관광지 소개가 아니다. 이 도시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읽어보고 싶은 거다.


누군가에게 진주는 '역사 도시'다. 임진왜란, 진주성, 논개, 촉석루. 이런 키워드들이 먼저 떠오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축제 도시'다. 남강 위에 떠 있는 유등, 밤마다 빛나는 그 장면들. 어떤 사람들한테는 그냥 '지나가는 도시'일 수도 있다.


근데 진주는 이상하게도 한 문장으로 정리가 안 된다. 뭐라고 설명을 붙여도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 말로 규정하려는 순간보다, 그냥 시간을 같이 보낼 때 더 많은 걸 보여주는 도시 같다.


숫자로는 안 보이는 것들

관광학적으로만 보면 진주는 자원이 꽤 많은 도시다.


성곽도 있고, 강도 있고, 역사와 예술이 겹쳐 있고, 축제도 산업도 대학도 있다. 지도에 찍어볼 수 있는 것들만 놓고 보면 부족할 게 없다. 그런데 이 도시의 매력을 숫자나 통계로 다 설명하려면 뭔가 계속 모자란다.


'방문객 몇 명', '평균 체류시간 몇 시간', '관광 소비액 얼마'. 이런 걸로는 진주가 가진 분위기를 못 담는다. 진주는 '보고 끝'나는 도시가 아니라, 머물수록 감정이 쌓이는 도시에 가까우니까.


여행자만 관광하는 건 아니더라

진주에 살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관광이 꼭 여행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것.


학문적 정의는 잠깐 접어두고, 내가 느낀 진주에서의 관광은 '어디 갔다 온 결과'가 아니었다. '관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가까웠다. 어디서 왔는지보다, 이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았다.


진주의 일상이 그걸 보여준다. 아침에 남강 산책하는 사람들, 계절마다 달라지는 도시의 속도, 오래된 골목과 새로 생긴 카페가 섞여 있는 풍경. 이 도시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소리 높이지 않고, 나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그냥 시간을 건네듯 천천히 곁에 있으면서,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든다. 진주는 그렇게,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도시가 된다.


설명보다는 해석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도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가 아니라, 나 스스로 이 도시와 맺고 있는 관계를 정리해보고 싶었다. 진주를 홍보하려는 것도, 예쁘게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 도시가 어떻게 사람 마음에 남는지, 시간이 지나도 안 지워지는 감정의 결로 남는지를 기록하고 싶었다.


관광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기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진주를 '설명'하기보다 '해석'해 보고 싶었다. 설명은 정답을 찾아가지만, 해석은 질문을 남기니까.


답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글

이 글은 '왜 진주인가'라는 질문에 딱 부러진 답을 내리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을 오래 품어보려는 기록에 가깝다. 이 도시에 머물면서 생긴 생각들, 관광이라는 말로는 다 안 담기는 장면들을 천천히 풀어보려 한다. 아마 이 글을 다 쓰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같은 질문을 하고 있을 것 같다.


왜 진주일까.


근데 그 질문을 계속 품고 사는 것 자체가, 이 도시와 내가 맺고 있는 관계의 방식일 거다.


Second Ride: 두 번째로 읽기 시작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관광을 생각하고, 진주를 바라보고, 이 도시 안에서 내 시선을 다시 정리한다.


답을 찾으려고가 아니라, 한 도시와 한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그 순간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 이 기록은 Second Ride Lab 이름으로 남긴다.


첫 번째 여행이 '발견'이라면, 두 번째 여행은 '이해'다. 나는 지금 진주를 두 번째로 읽고 있다. 관광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여기 사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이 이야기는 그렇게, 조용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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