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팬덤, 풀게임에서 클립 소비로 이동하는가?
지난주, NBA 커미셔너 아담 실버(Adam Silver)의 한마디가 스포츠 팬덤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기자회견에서 “NBA에는 무료로 경기를 접할 방법도 많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라는 발언이 나온 것이다. 그는 “이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하이라이트 기반”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 코멘트가 곧장 팬들 사이에서 “NBA가 정규 경기를 스스로 평가절하한다” 혹은 “중계권료가 너무 비싸니 하이라이트로 대신 보라”는 식으로 해석되며 거센 반발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실버는 며칠 뒤 “맥락이 왜곡됐다”며 “소셜미디어는 풀게임으로 팬을 끌어들이는 수단이지, 대체재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이 발언은 ‘스포츠의 미래는 하이라이트인가?’라는 중요한 화두를 남겼다.
사실 스포츠 하이라이트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케이블 시대의 스포츠센터나 Inside the NBA처럼, 경기 주요 장면을 압축한 영상은 오랫동안 팬들의 필수 콘텐츠였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Z세대와 알파세대는 전체 경기를 시청하기보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수십 초짜리 클립으로 스포츠를 소비한다.
경험의 파편화: 스포츠 클립은 친구의 여행 사진, 뷰티 튜토리얼 사이에 끼어 소비된다.
즉각성 vs 몰입도: 경기 맥락보다 하이라이트 순간 자체의 짜릿함에 집중하는 경향이 커졌다.
IMG의 힐러리 맨델은 “지금은 주의력 결핍 시대다. 팬을 찾아내는 게 훨씬 복잡해졌다”고 분석한다. 즉, 단순한 중계권 확보만으로는 미래 팬덤을 장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격변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물이 블리처리포트의 케이티 아킨스(Katie Arkins) 부사장이다. 그는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WBD)의 스포츠 포트폴리오를 기반으로, 하이라이트 콘텐츠를 팬덤 전환 funnel로 활용하고 있다.
성과는 눈부시다.
2021년 월 1천만 뷰 수준이던 B/R 틱톡은 2025년 2월 기준 24억 뷰까지 폭발 성장.
여성 스포츠 전용 채널 B/R W는 재출범 6개월 만에 1억 뷰를 기록.
여성 스포츠 관련 광고 매출은 전년 대비 84% 증가.
아킨스는 “권리가 있는 콘텐츠는 적극적으로 증폭시키고, 그렇지 않더라도 팬이 원하는 순간은 놓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중계권 보유 여부’를 넘어서 팬 경험 전체를 소셜 채널로 흡수하는 전략이다.
이 시장은 B/R만의 무대가 아니다.
오버타임(Overtime): Z세대 중심의 농구·풋볼 콘텐츠로 급성장, 누적 투자금 2억4,600만 달러.
Togethxr, Just Women’s Sports: 여성 스포츠에 특화된 신흥 미디어.
차별점은 중계권 보유 여부다. 오버타임은 종종 팬 촬영 영상에 의존하지만, B/R은 WBD의 중계권을 활용해 합법적이고 질 높은 하이라이트를 공급한다. 이는 브랜드 신뢰도와 광고 매출 확대에서 강력한 우위를 만든다.
하이라이트는 확실히 강력한 팬 유입 장치다. 하지만 리그와 방송사에 남는 질문은 하나다.
“클립 소비자는 풀게임 시청자로 전환되는가?”
하이라이트만으로는 스포츠의 맥락—경기의 흐름, 긴장감, 선수의 노력—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예컨대 스테픈 커리의 3점슛만 모아보는 것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접전 끝에 패배하는 전체 서사를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결국 풀게임이 지닌 ‘서사적 가치’가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재해석되고 전달될지가 관건이다.
실버의 발언은 의도치 않게 스포츠 산업의 본질적 고민을 드러냈다. 하이라이트는 더 이상 단순한 홍보용 부가 콘텐츠가 아니라, 새로운 세대와 리그를 잇는 핵심 접점이다. 그러나 클립 소비를 넘어서 풀게임 시청, 나아가 경기장 관람으로 이어지는 팬 여정 설계 없이는 장기적 팬덤 확보는 불가능하다.
즉, 미래의 성공은 ‘하이라이트’와 ‘풀게임’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두 축을 연결하고 상호 보완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스포츠가 여전히 ‘이야기’라면, 하이라이트는 티저이고, 풀게임은 본편이다. 팬들은 둘 다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