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포라에서 제일 미친 향수 브랜드가 될 겁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니치 향수 브랜드 Borntostandout(본투스탠드아웃)이 세포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보통의 “입점 스토리”가 아니에요. 창업자 준 림(Jun Lim)의 목표는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세포라에서 가장 크레이지한 브랜드”. 이 한 문장이 이번 사건의 전부를 설명합니다.
세포라 온라인 출시는 2월 24일, 오프라인 매장 입점은 3월 13일로 알려졌고요. (이 타이밍도 절묘하죠. ‘향수 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준 림은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향수에 인생을 맡긴 사람에 가깝습니다. 본인 향수 컬렉션이 약 2,000병 수준이고, 20년 넘게 거의 매주 한 병씩 사 모았다고 하죠. “향수가 사람을 변신시키는 힘”에 중독돼 있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집착이 흥미로운 방향으로 폭발합니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온라인에서 데이터와 매출을 만들고, 몇 년 뒤에야 플래그십을 열죠. 그런데 본투스탠드아웃은 2022년 론칭과 동시에 서울 한남동에 플래그십을 열었습니다. “보통은 안 하는 짓”을 시작부터 해버린 거예요.
게다가 이게 투자금으로 벌인 쇼가 아니라, 거의 자기 돈입니다. 투자은행 경력으로 모은 평생 저축 + 해고 위로금까지 얹어서요. 창업 스토리가 너무 솔직해서 오히려 브랜드 톤과 딱 맞습니다. “난 안전한 길로는 못 가.”
이미 본투스탠드아웃은 글로벌 리테일러들(셀프리지, 갤러리 라파예트, 메카 등)에 들어가 있고, 미국에서도 Revolve, Luckyscent 등으로 노출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세포라를 특별하게 보는 이유는 하나예요.
세포라는 “발견(discovery)의 플랫폼”이라는 것.
즉, “니치 향수 덕후”가 아니라 그냥 세포라에 들른 대중이 우연히 미친 향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게임이 재미있어집니다.
세포라의 향수 코너는 종종 이런 느낌이거든요.
“이 향 좋아요.” “그럼 비슷한 향이 5개 더 있어요.”
준 림은 이 ‘복붙 생태계’를 정면으로 비웃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가 되겠다.” 니치 향수의 세계관으로, 세포라 고객을 ‘입덕’시키겠다는 선언이죠.
세포라가 처음엔 일부 제품을 두고 “너무 예술적(too artistic)”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니치 향수에서 흔한 반응이죠. 사람들은 예술을 사랑하지만, 매일 뿌릴 향수로 예술을 선택하는 건 망설이니까요.
여기서 보통 브랜드는 타협합니다.
“그럼 덜 튀게 만들게요…” 하고요.
근데 본투스탠드아웃은 방식이 다릅니다.
세포라 고객을 연구해서, ‘덜 무겁고 더 이해하기 쉬운’ 라인을 새로 개발합니다. 그게 바로 Eau Intimité(오 인티미테). 농도도 더 가볍고, 사용성도 더 일상적으로 설계했다고 해요. 그런데 중요한 문장 하나가 붙습니다.
“브랜드 DNA는 유지한 채로.”
이게 진짜 실력 포인트예요.
“대중화 = 무난해짐”이 아니라, 대중화 = 입구를 설계한 겁니다.
세포라에 들어가면 보통은 ‘검증된 라인업’만 갖고 가요. 실패하면 매대에서 사라지니까.
그런데 준 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세포라 셀렉션 11종 중에는 베스트셀러도 있고, 심지어 ‘최악의 판매’ 향도 있다고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본투스탠드아웃은 세포라에서 “매출 최적화”보다 “브랜드 세계관 노출”을 더 우선한다는 뜻이거든요.
베스트셀러만 내면 ‘그냥 좋은 향수 브랜드’로 보이지만, 이상한 애들까지 데려오면 “얘네 뭐지?”가 됩니다.
요즘 브랜드는 “좋은”보다 “기억에 남는” 쪽이 이깁니다.
준 림이 “세포라에서 가장 크레이지한 브랜드가 되겠다”고 말할 때 꺼내는 향들이 있습니다.
Nanatopia: 바나나브레드 노트에 럼, 넛맥, 시나몬… 그리고 “쉽지 않은” 베이스
Drunk Maple: 메이플시럽에 핑크페퍼, 샌달우드. 달콤한데 취했고, 매운데 부드럽고… 감정선이 꼬임
Drunk Lovers: 코냑과 레드 베리로 시작하는 우디·스파이시 계열, 브랜드의 ‘히어로’ 향
이 라인업은 한 마디로 “향수계의 장르 영화” 같아요.
호불호는 갈리겠죠. 근데 그게 목적입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향은 세포라에 이미 너무 많으니까요.
입점만 한다고 성공하지 않는다는 걸 이 팀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데뷔를 “론칭 캠페인”처럼 준비해요.
대규모 시딩(seeding)
전략적 페이드 미디어(paid media)
이벤트
그리고 Sephoria(세포라 행사) 참여까지
여기서 포인트는 “광고 많이 하겠다”가 아니라, “세포라에서 ‘신뢰’와 ‘문화적 존재감’을 만들겠다”는 방향성입니다. 세포라는 단순 유통이 아니라 심사대예요. 여기서 ‘말 되는 브랜드’로 판정받아야 미국 시장이 확 열립니다.
향수 시장이 뜨겁다는 건 업계가 계속 확인해주는 사실입니다. 2025년에도 미국 프레스티지 향수는 강했고, 올해도 흐름이 이어지고 있고요. (향수는 립스틱보다 ‘자기만의 취향’을 드러내기 좋은 카테고리라, 니치가 특히 강합니다.)
글로시는 Circana 데이터를 인용해 2025년 9월까지 연초 누적 향수 매출이 약 60억 달러에 육박했다고 전했고, 업계 추정으로 본투스탠드아웃이 2026년에 약 1,000만 달러 매출에 도달할 수 있다고도 언급합니다.
근데 준 림은 여기서 또 “천천히”를 말합니다.
빨리 커서 엑싯이 아니라, “유니버스를 만들겠다”고요.
이건 ‘브랜드를 회사가 아니라 세계관으로’ 보는 요즘 감각과 정합성이 높습니다. 특히 니치 향수는 더더욱.
“1등” 대신 “1명”을 정하라
세포라 1등이 아니라 “세포라에서 제일 미친”을 선택한 순간, 브랜드는 경쟁을 회피한 게 아니라 룰을 바꿨습니다.
대중화는 타협이 아니라 ‘입구 설계’다
Eau Intimité는 “덜 튀게”가 아니라 “더 들어오기 쉽게”예요. 브랜드 DNA를 지키면서 진입 장벽만 조정한 사례.
유통 입점은 ‘행사’가 아니라 ‘데뷔식’이다
시딩/페이드/이벤트/세포리아까지, 한 번에 “발견 → 신뢰 → 문화적 대화거리”를 설계합니다.
마지막으로, 준 림의 한 줄이 계속 맴돕니다.
“카라멜 라떼, 바닐라 라떼 향수 말고도 세상엔 더 많은 게 있다.”
맞아요. 그리고 그 “더 많은 것”을, 세포라 한복판에서 진짜로 보여주겠다는 브랜드가 서울에서 나왔다는 게 꽤 통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