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분절, 커머스 결합, AI 가속화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할까?
마케팅은 지금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한때는 미래 이야기처럼 들리던 변화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고, 브랜드는 더 이상 예전 방식만으로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 놓였습니다.
세계 최대 광고주 중 하나인 P&G의 최고브랜드책임자(CBO) 마크 프리차드(Marc Pritchard)는 최근 ANA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이 변화의 본질을 아주 명확하게 짚었습니다. 그가 말한 핵심은 단순합니다.
브랜드의 기본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방식은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의 마케팅 환경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소비자를 이해하고, 브랜드의 의미를 정의하고, 인사이트를 발굴하고, 이를 크리에이티브와 유통 현장에서 연결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그 모든 과정이 훨씬 더 빠르게, 더 많은 채널에서, 더 정교하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브랜드가 직면한 변화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미디어의 극심한 분절화.
둘째, 미디어와 커머스의 결합.
셋째, AI의 본격적인 실전 도입입니다.
그리고 P&G는 이 세 가지 변화 속에서도 오히려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브랜드 자산과 일관성, 그리고 이를 확장하는 실행 시스템이라고요.
예전에는 TV 중심으로 강력한 캠페인을 만들고, 이를 보조 채널이 받쳐주는 구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소비자의 주목이 수많은 플랫폼으로 분산되어 있습니다. TV,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이커머스, 리테일 미디어, 검색, 숏폼, 롱폼까지 브랜드가 접점을 만들어야 할 면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많은 브랜드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채널별 최적화에만 몰입하는 것입니다.
틱톡에서는 틱톡용, 인스타그램에서는 인스타그램용, 리테일에서는 리테일용으로 각각 다르게 움직이다 보면, 결국 브랜드는 효율은 얻을지 몰라도 기억에 남는 힘을 잃게 됩니다.
프리차드가 강조한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지금처럼 미디어가 파편화된 시대일수록 브랜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일관된 기억 구조(memory structures) 를 만들어야 합니다.
즉, 채널은 달라도 브랜드가 전달하는 핵심 자산은 같아야 합니다.
브랜드 톤, 상징, 메시지, 캐릭터, 비주얼 코드, 반복되는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가 모두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브랜드가 다양한 접점에서 다르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접점에서 같은 브랜드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특히 숏폼 중심 시대에 더 중요합니다.
많은 마케터들이 숏폼의 확산 속에서 롱폼 브랜딩의 가치가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P&G의 관점은 반대에 가깝습니다.
롱폼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큰 브랜드 아이디어를 만들고, 브랜드 서사를 구축하고, 감정과 기억을 남기는 역할은 여전히 롱폼이 강합니다.
숏폼은 이 기억을 상기시키고, 반복하고, 행동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롱폼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숏폼으로 브랜드를 증폭시키는 구조를 갖는 일입니다.
프리차드는 오늘날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세 가지 목소리의 조합으로 작동한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는 브랜드의 목소리이고,
두 번째는 전문가 혹은 영향력 있는 제3자의 목소리,
세 번째는 소비자의 목소리입니다.
과거에는 전문가 목소리의 대표가 셀러브리티였다면, 지금은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AI 에이전트가 여기에 일부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동시에 소비자의 목소리는 단순한 입소문이 아니라, 플랫폼을 통해 대규모로 확산되는 유기적 추천의 형태로 진화했습니다.
이 말은 브랜드가 더 이상 스스로만 이야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제 브랜드는 누가 대신 말해주는가,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하고 확산시키는가, 그 모든 흐름이 실제 구매와 어떻게 이어지는가까지 설계해야 합니다.
P&G가 예시로 든 브랜드는 올드 스파이스(Old Spice)입니다.
이 브랜드는 소비자 인사이트를 제품 혁신으로 연결하고, 그것을 다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과 리테일 실행까지 이어가며 성장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NFL 시즌 캠페인은 현재의 통합 마케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브랜드 마스코트와 NFL 선수를 활용한 본편 광고가 먼저 나오고, 이를 다시 소셜 플랫폼에 맞게 짧은 버전으로 잘라 유통하며, 리테일 연계까지 연결합니다. 여기에 틱톡 기반 UGC까지 얹습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닙니다.
핵심은 브랜드 보이스, 전문가 보이스, 소비자 보이스가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 자산 아래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브랜드는 직접 말하고,
크리에이터는 해석하고,
소비자는 확산합니다.
이 세 층위가 따로 움직이면 소음이 되지만,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강력한 브랜드 증폭 장치가 됩니다.
프리차드가 남긴 가장 인상적인 표현 중 하나는 이것입니다.
오늘날처럼 분절화된 환경에서는 “ruthlessly consistent”, 즉 무자비할 정도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굉장히 실무적입니다.
지금 많은 브랜드가 채널별 운영 최적화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브랜드를 브랜드답게 만드는 자산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반복해야 하는지, 어떤 요소가 소비자의 기억 속에 남아야 하는지, 어떤 톤과 비주얼과 구조가 브랜드 정체성의 핵심인지가 약한 상태에서 채널 수만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분절화가 심해질수록 브랜드는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어떤 브랜드 자산이 핵심인지
어떤 아이디어가 반복될 가치가 있는지
어떤 메시지가 모든 채널에서 변형 가능하면서도 동일한 인상을 남기는지
누가 브랜드를 대신 말할 때도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이것이 정리되지 않으면 콘텐츠는 많아져도 브랜드는 강해지지 않습니다.
즉,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콘텐츠 양산이 아니라
브랜드 자산 중심의 확장 가능한 시스템입니다.
AI는 이제 마케팅 업계에서 더 이상 실험적 주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P&G처럼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조차도 이를 여전히 “work in progress”, 즉 진행 중인 과정으로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AI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 현실적 접근이기 때문입니다.
P&G는 패브릭 케어 사업부에서 AI를 활용해 리테일 미팅 이후 인사이트 도출, 콘셉트 개발, 광고 프로토타입 제작, 미디어 플랜 수립까지 약 3주 안에 끝내는 방식으로 속도를 높였습니다.
타이드는 짧은 시간 안에 10배 많은 에셋을 생성했고, 게인은 빠른 실행을 통해 비즈니스 성과를 움직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AI 자체보다 조직 구조와 워크플로우입니다.
프리차드는 속도의 비결을 단지 툴이 아니라,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팀 구조에서 찾습니다.
P&G는 통합 브랜드팀과 사실상 인하우스 에이전시 형태의 조직을 결합하고, 미디어를 인하우스화했으며, 광고와 콘텐츠 제작, KOL 운영, 리테일 연결까지 내부 역량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곧 AI 시대의 경쟁력이 단순히 좋은 툴을 갖는 데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다음입니다.
AI가 들어와도 끊기지 않는 워크플로우
빠르게 테스트하고 수정할 수 있는 조직 구조
브랜드 기준을 훼손하지 않는 운영 체계
생성된 에셋을 실제 커머스와 리테일 실행으로 연결하는 구조
결국 AI는 사람을 대체하는 마법이 아니라, 잘 설계된 조직에서 성과를 증폭시키는 가속 장치에 가깝습니다.
AI 광고에 대한 소비자 불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해 프리차드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는 AI가 애니메이션, CGI, 디지털 편집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즉, 기술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기술이 소비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브랜드가 AI를 활용하더라도, 그것이 브랜드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고 소비자를 속이려는 방식이 아니라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반대로 소비자가 “이 브랜드가 나를 속이려 한다”거나 “이건 너무 부자연스럽고 기만적이다”라고 느끼는 순간 신뢰는 무너집니다.
이 지점은 앞으로의 AI 마케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AI 시대의 핵심은 단순히 생성 효율이 아니라 신뢰 설계입니다.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얼마나 브랜드답게 보이는가
얼마나 투명한가
소비자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앞으로 AI 활용은 늘어나겠지만, 결국 살아남는 브랜드는 “AI를 썼는가”가 아니라
“AI를 써도 브랜드 신뢰를 지켰는가”로 평가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리차드는 또 하나 중요한 화두를 던졌습니다.
P&G가 현재 거대한 시간을 들여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대규모언어모델(LLM)에 브랜드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이건 앞으로의 마케팅에서 매우 큰 변화 포인트입니다.
예전에는 브랜드가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잘 보이도록 SEO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AI가 답변을 구성하는 환경에서 브랜드 정보가 어떻게 인식되고 호출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즉, 브랜드는 단순한 광고주를 넘어 AI가 읽고 해석하고 추천할 수 있는 정보 구조를 가진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브랜드는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우리의 제품 정보는 AI가 이해하기 쉬운가
브랜드의 핵심 설명은 일관되게 정리되어 있는가
소비자 리뷰, 유통 정보, 제품 특징, 차별점이 구조화되어 있는가
다양한 플랫폼에서 브랜드 데이터가 충돌 없이 유지되는가
이는 단순한 콘텐츠 제작을 넘어, 브랜드 정보 체계 자체를 재정비하는 문제입니다.
AI와 함께 오랫동안 마케터들이 외쳐온 또 하나의 화두는 바로 측정입니다.
수십 년 동안 업계는 크로스미디어 측정을 제대로 하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매체별로 데이터가 나뉘고, 각 플랫폼이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성과를 보여주며, 결국 전체 효율을 하나의 언어로 읽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프리차드는 이 문제에 대해 꽤 강한 확신을 드러냈습니다.
그가 말한 해답은 ANA가 만든 측정 단위 Aquila입니다.
Aquila는 메타, 구글, 아마존, 틱톡의 인구 기반 노출 데이터와, 컴스코어의 선형 TV 데이터, 삼바 TV의 스트리밍 데이터를 통합해 크로스미디어 측정을 단순화하려는 시도입니다.
물론 업계 전반에 실제로 얼마나 정착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제 마케터는 단순히 도달과 빈도만 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프리차드는 특히 리테일 세일즈 시그널을 강조합니다.
즉, 미디어 성과를 추정치나 프록시 지표가 아니라 실제 판매 데이터와 닫힌 고리(closed loop)로 연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많은 브랜드가 여전히 MMM, ROI, reach/frequency 같은 지표에 의존하지만,
앞으로 경쟁력을 만드는 것은 실제 리테일 판매 신호와 연결된 정밀한 측정 체계일 가능성이 큽니다.
프리차드가 마지막에 던진 메시지는 지금 시대를 가장 잘 요약합니다.
그는 예전에는 18개월마다 스스로를 해고하고 다시 채용한다고 말했지만, 이제는 매일 그렇게 해야 할 정도로 변화가 빠르다고 했습니다.
이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지금 마케팅은 더 이상 몇 개월에 한 번 대형 캠페인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구조만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지금의 마케팅은 지속적인 스프린트입니다.
소비자 반응은 실시간으로 변하고
플랫폼 포맷은 계속 바뀌며
커머스 연결은 더 촘촘해지고
AI는 제작 속도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측정 방식도 계속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브랜드도, 조직도, 마케터 개인도 늘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빨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빨라져도 브랜드를 잃지 않는 것
많아져도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기술을 써도 소비자 신뢰를 지키는 것
이 세 가지가 앞으로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P&G의 메시지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세상은 급격히 바뀌고 있지만, 그래서 더더욱 브랜드의 기본이 중요해졌다는 것입니다.
미디어는 분절되고, 커머스는 미디어와 결합하고, AI는 마케팅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변화 속에서도 브랜드가 끝까지 붙잡아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소비자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
브랜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하는 것
반복 가능한 브랜드 자산을 만드는 것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의 브랜드 서사로 통합하는 것
기술을 효율이 아니라 신뢰의 관점에서 쓰는 것
그리고 측정을 실제 비즈니스 성과와 연결하는 것
결국 미래의 승자는 새로운 기술을 가장 빨리 쓰는 브랜드가 아니라,
새로운 환경 속에서도 브랜드의 본질을 가장 정교하게 확장하는 브랜드일 것입니다.
P&G가 보여주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마케팅의 시대는 바뀌었지만,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원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 그 원리를 더 빠르게, 더 넓게, 더 정교하게 실행해야 하는 시대가 왔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