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알며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우리의 인식, 그 방법에 대해

by 세랑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가? 그저 태어나, 보이는 것, 그 자체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인가? 많은 ‘우리’는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당장 내가 쓰고 있는 이 노트북도 실제로 ‘노트북’이라고 칭할 수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 내가 쓰고 있는 모든 물건도 단지 물건이 아닌, 각각의 생명일 수도 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믿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그 ‘무엇’은 진정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무엇’이라는 명사를 국어사전에서는 ‘모르는 사실이나 사물 또는 정하지 않은 대상을 이르는 부정칭 대명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영어에서 ‘무엇’과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something’도 ‘an object, situation, quality, or action that is not exactly known or stated’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공통점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물체,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전의 정의를 빌려, 나도 ‘무엇’을 ‘우리’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사고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해보도록 하겠다.


‘무엇’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엇’이 진실인지 살펴보자. ‘무엇’은 항상 진실이 될 수 없다. 앞서 나는 ‘무엇’을 명확하지 않지만 사고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렇기에, 사고를 통해 알고 있는 것을 과연 명확한 진실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사고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오감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이 진정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데카르트도 이것에 의문을 가졌다. 데카르트는 ‘감각 지식’을 의심함으로써, 감각적 지식의 한계에 대해 언급하고, 감각적 지식은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데카르트는 자연 과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일반 지식, 그리고 수학을 통한 보편 지식 또한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다. 명확하게 내려진 진리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그것을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내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다른 사람의 환경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는 ‘무엇’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바뀌는 변형 가능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무엇’을 진실로 믿으며 살아갈 수 없다. 우리도 모르는 것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의 의견과 일맥상통하게 의견을 내놓은 철학자가 있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할 때는 그것 외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사유’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는 것이고, ‘무엇’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유를 능동적으로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체적으로 ‘앎’에 대해 탐구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앎’을 위한 탐구를 위해 우리는 많은 ‘무엇’을 접해보고, 경험해본다. 그럼으로써,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시키며 ‘앎’의 범위를 확장해나간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매 순간 적용하며 점차 ‘무엇’의 범위를 넓혀간다. ‘사유’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위해 끊임없이 사고한다.


우리는 ‘무엇’을 알며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우리는 ‘매 순간 변형되고 바뀌는 불명확한 진리’를 알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불명확한 진리를 알기 위해 끊임없는 ‘사유’의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나간다. 명확하지 않은 진리,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각기 다른 그 대상은 인간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주고, 더욱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유’를 하며 자신의 진리를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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