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살아있는 것에 대하여 # 2
“오늘은 400km 정도 갈 거에요~” 몽골인 가이드가 서툰 발음의 한국어로 말했다.
차는 난생 처음 보는 특이하게 생긴 차였고, 놀이기구에서만 경험해본 어마어마한 덜컹거림이 있었다. 이대로 400km를 간다고? 현실감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는 가이드 한 분, 기사님 한 분, 그리고 몽골 여행 인터넷 카페에서 알게 된 동행 네 분과 함께 여정을 시작했다. 가이드 님과 기사님을 제외하고는 우리 모두 처음 느끼는 승차감으로 처음 보는 무(無)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차는 한도 끝도 없이 남쪽으로 내려갔다. 창 밖에는 끝도 없고 경계도 없고 이따금씩 볼록한 언덕이 나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전부인 드넓은 땅이 펼쳐졌다. 가끔 지도 앱을 켜 GPS를 잡아보면 도로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의 한 가운데에 내 위치가 찍히곤 했다.
나는 겁이 나기도 했다. 여기서 아프기라도 하면, 혹시 차가 고장나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이 상태로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있고 계속 도시로부터 멀어지고 있는데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누가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까.
조금씩 심장이 콩콩거리며 몸에 두려움의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할 때 즈음에 거짓말 같이 마을 하나가 나타났다. 마을에는 허름하지만 병원도, 식당도, 마트도, 주유소도 있었다. 두려운 마음이 진정되며 마음이 편해졌다.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몇 백키로 쯤 달리면 마을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은 아주 듬성듬성하게 마을들이 놓여있었다.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에 많은 도시가 밀집해있는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드넓은 우주 속의 작은 행성들 같다는 생각을 했다.
모래 언덕을 오른다고 했다. 언덕이 생각보다 꽤 높아 올라가면 추울 수 있으니 따뜻하게 입으라는 것과, 슬리퍼 대신 운동화를 신어야한다는 이야기 정도만 들었다.
“낮은 데 있고 높은 데 있어요. 어디 갈래요?” 가이드가 물었다.
“낮은 데는 오르는 데 얼마나 걸리고 높은 데는 얼마나 걸려요?” 동행 한 분이 물었다.
“낮은 데는 쌈십 분, 높은 데는 투 시간. 낮은 데 갈래요?”
“어우, 차이가 많이 나네... 높은 데 많이 힘들어요?”
“네, 쵸큼 많이 힘들어요. 낮은 데는 저쪽(오른쪽을 가리키며)으로 가면 되고 높은 데는 저쪽(왼쪽을 가리키며)으로 가면 돼요. 낮은 데?”
“높은 데랑 낮은 데 중에 어디가 더 멋있어요?”
“높은 데. 더 멋있어요. 흐흐 근데 거의 비슷해요.”
우리는 고민했다. 어디가 나을까. 높은 데는 많이 힘드려나? 그래도 다시 못 올지도 모르는 곳인데 이왕 온 거 조금이라도 더 멋있는 곳 가보는 게 나을까? 비슷하게 멋있다는데 그냥 덜 힘든 거 할까? 나는 사실 자꾸 ‘낮은 데’를 말하는 가이드님을 보며 낮은 데에 마음이 가긴 했다. 높은 데는 가이드 님께도 힘든 곳이라 자꾸 낮은 데 쪽으로 유도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고민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동행 여섯 명의 의견은 모아지지 않았는데 차는 출발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높은 데요.”
낮은 데를 계속 주장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데를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혼쭐을 내줘야 한다고 생각하신 모양인지, 가이드 님은 우리에게 말도 해주지 않으시고 높은 곳 쪽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높다면 얼마나 높을지, 힘들면 얼마나 힘들지, 그곳에서 볼 풍경은 얼마나 멋질지 궁금해한 죄로 우리는 모두 힘든 코스를 가게 되었다.
차에서 내려 모래를 밟자마자 확 불안한 느낌이 몰려왔다. 아직 경사면이 높지 않은 부분이었는데도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꽤나 힘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땅 위를 걸을 때 발을 앞으로 디디면, 땅이 꼭 우리 무게 만큼의 힘으로 밀어주어 다른 한 발을 떼어 다시 또 앞으로 디딜 수 있게 되는 그런 기본적인 보행의 원리가 이곳에서는 적용되지 않았다. 한 발을 앞으로 놓아 디디면 그 발은 땅의 힘을 받지 못하고 곱디 고운 모래들 사이로 푸욱 힘 없이 빠져내려가 버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음 발을 가져다 앞으로 놓아도 쉬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척 하며 시작했다. 가방 옆에 꽂아두었던 트레킹 스틱을 사용해보기도 하고 팔자 걸음으로 올라가보기도 하고 뒤로 걸어보기도 했다. 무엇도 덜 힘들지 않았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열 배, 오십 배는 더 다리에 힘이 많이 들어가다보니 발, 발목, 종아리, 허벅지, 엉덩이가 다 아팠다. 이렇게 힘들여가며 앞으로 가도 양 옆은 계속 똑같은 모래들이라 앞으로 가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언덕의 오분의 일 쯤 올랐을 때인가, 나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싶었다.
정말 너무 포기하고 싶었는데, 동행들 중 단 한 명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들 힘들어 죽을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한 명도 빠짐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팀에서 막내였던 나는 언니 오빠들의 에너지에 감탄하며 나도 조금만 더 가 보자, 조금만 더 가 보자 하며 뒤를 좇았다.
2족 보행을 하던 나는 언덕 중턱도 가기 전에 4족 보행을 시작했다. 팔 까지 힘을 써야했지만 이미 힘이 너무 빠진 다리의 노동을 분산할 수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기에 ‘조금은’ 더 용이했다. 두 개였던 발이 네 개가 되고, 숨이 너무 차올라 호흡이 힘들어지고, 신발 안에는 발 반, 모래 반이고, 끊임 없이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 연신 싸다구를 맞다가 나중에는 비까지 맞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결국은 정상에 올랐다. 두 시간이 걸렸다. 그 어떤 때보다 느리고 힘들었지만 다 올라 정상에 앉고야 말았다. 모래 언덕의 맨 꼭대기, 뽀족한 삼각 모양으로 모래가 쌓여있는 그 모습을 내가 내 두 눈으로 보았고, 두 손으로 만졌고, 내 두 다리로 올랐고, 두 엉덩짝으로 깔고앉았다.
우리 모두는 이곳까지 오르는 데에 성공한 서로를 격려하고 축하했다. 하나 같이 뿌듯한 얼굴들에서 전우애가 느껴지는듯 했다. 오늘은 완전히 꿀잠잘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둘째 날 아침에 게르에서 일어나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차에 탔는데 앞 좌석에 어린 소녀 한 명이 같이 탔다. 우리가 오늘 자고 일어난 이 게르에 사는 아이가 학교에 가야하는 날인데 아빠 차가 고장나 학교에 가지 못했다며, 데려다주고 가도 되겠냐고 가이드가 우리에게 물어왔다. 학교는 우리가 지금 가려는 마을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괜찮다고 했다.
그녀의 집에서 학교가 있는 마을까지는 200km나 떨어져있었다. 이 아이는 매일을 비포장도로 200km를 달려 학교에 가는 거냐고, 아버지 차 고장났는데 이따 수업 끝나고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냐고 우리 모두가 놀라며 물었지만 다행히 이곳의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생활을 하기 때문에 월요일에 학교에 가서 금요일에 집에 온다고 했다. 날짜를 보니 오늘은 월요일이었다.
자리가 부족해서 이 아이는 제대로 된 좌석에 앉지도 못했다. 우리는 등받이에 기대 앉아있었고 중간에 눈을 붙이기도 했는데 이 친구는 쉬지 않고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 위에서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며 짜증 한 번 내지 않았다. 기사님과 가이드 님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로 향했다.
게르에서 자는 건 텐트에서 자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게르 가운데에는 불을 피울 수 있는 연통이 있는데, 그 안에 나무를 넣고 불을 피우면 한 사십 분 동안은 더울 정도로 따뜻하다가 다시 급격히 추워진다. 열기의 수명이 길지 않아 새벽에 추워질 것을 대비해 있는 옷을 전부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 그 위에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물론 그래도 춥다. 아주 많이.
게르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게르 밖에도 잘 없다. 화장실이라고 되어있는 곳에 가면 저 밑 깊은 곳에 온갖 종류의 변들이 산처럼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는 푸세식 화장실이 날 맞이해준다. 두 발을 얹어 놓아야 하는 곳은 나무 판자로 되어있어 혹시라도 변을 보다 판자가 우지끈 부러져 변을 당하지는 않을까, 혹시나 내가 발을 헛디디지는 않을까, 슬리퍼가 빠져버리면 어쩌지 하는 다양한 두려움이 솟구친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지만 나는 무서워서 피했다. 내가 화장실 한 번 가면서 이렇게까지 불안에 떨어야하나 싶은 자괴감이 든다. 게르 뒷편 어딘가에 남편을 망 보는 사람으로 세워두고 처리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
우리는 여정 중에 낙타와 말을 둘 다 타볼 수 있었다. 고비사막에서는 낙타와 말을 정말 많이 볼 수 있는데 둘의 성격은 많이 다르다.
낙타는 순하다. 움직임이 둔하고 느리다. 가끔 얼굴을 털며 침을 뱉는다. 타고 갈 때의 느낌은 아주 마지못해 걸어가는 느낌이다. 남편은 선두에 있는 낙타를 탔었는데, 바로 뒤에 따라오던 낙타가 그를 너무 좋아해서 계속 얼굴을 그의 바지에 부볐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 그 바지를 열심히 빨았다.
말은 아주 에너지가 넘친다. 낙타보다 훨씬 빠르다. 낙타가 그저 끌려가는 느낌이었다면 말은 뛰어가고 싶은데 묶여있으니 어쩔 수 없이 느리게 가 준다, 하는 느낌이다. 말은 운전이 가능한 동물이라고 한다. 왼쪽의 줄을 잡아당기면 왼쪽으로, 오른쪽의 줄을 잡아당기면 오른쪽으로, 그리고 두 줄을 동시에 잡아당기면 멈춘다고 한다.
말에서 내려온 뒤 마부들이 말들을 정리하는 것을 보다가 의도치 않게 말의 중요 부위를 보고 말았다. 그것도 좀 커져있는 것으로 말이다. 과장 안 보태고 성인 남자 팔꿈치에서부터 손끝에 이르는 길이였다.
이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우릴 태우고 걸어가는 도중에 똥을 아주 많이 쌌다는 것이다. 어떻게 걸어가면서 똥을 싸냐!
고비사막에서는 해가 지고 하늘이 깜깜해진 후에 고개를 들면 셀 수 없는 별들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을 드디어 나는 이곳 고비에서 완벽히 이해했다. 별들이 이렇게 빛나다가 정말 나에게로 쏟아져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빛나는 북두칠성도 볼 수 있었다. 다른 별들 사이에서 특히 밝게 빛나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별들을 보고 있자면 신비로운 느낌에 휩싸인다. 내가 이 행성 밖에 있는 무언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지구 밖의 존재들과 나의 존재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살아가듯 지구 밖의 모든 것, 우주 안에 있는 모든 행성들과 물질들이 사실은 나의 존재와 다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 멀어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별 하나하나가 내 눈에 선명하게 보이니 우주가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지금 펼쳐진 이 빛들이 몇백 년, 몇천 년 전의 빛들이라는 사실이 감동적이다. 오늘 이 순간 내 눈에, 내 마음에 들어오려고 이토록 오래 달려온 이는 없을 것이다.
2018.05.
몽골 고비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