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소유 Jan 14. 2024

46일간 인스타그램 없이 살아보았다.


2023년 11월 27일, 마지막 스토리를 올리고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했다.


계기는 딱히 없었다. 그냥 요즘 좀 삶이 정신 없어진 느낌이었다. 그게 인스타그램 때문이라고 생각했을까? 한 번 닫아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비활 후 하루이틀 쯤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매일 쓰던 걸 쓰지 않으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그러다가 머지 않아 나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이건 확실히 자유로움이었다.



비활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유튜브 영상에서 이런 걸 접하게 되었다. 어떤 교수가 강의 시간에 뇌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침에 기상 직후 1시간 이내에 인스타그램을 보면 우리 뇌는 한가지에 집중할 수 없는 뇌가 된다고 했다. 피드에 등장한 모든 잡다한 것들을 다 중요하다고 인식하게 되면서 오늘 하루 무엇에 집중해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잃게 된다고 했다. 한 마디로 뇌의 초기세팅값을 잘못 설정한 채로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아.. 그게 어떤 영상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혹시 아시는 분 계시면 댓글에서 알려주세요!)


그 영상을 보고는 내 삶을 정신없어지게 만든 최대 원인이 인스타가 맞았음을 확신하고 비활성화 상태를 최소 한 달은 유지해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어느새 한 달을 훌쩍 넘겨 46일이 되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고 지내는 동안 나는 나의 일에 대해 더 차분히 생각하게 되었다. 비활성화를 결심한 그 시점 쯤에 나는 너무 바빴다. ‘왜 이렇게 바쁘지? 원래 다들 이정도로 바쁘고 정신 없게 사는 건가?’ 싶다가 어느날 문득 이상한 것을 느꼈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으나 성과가 나는 것은 없었고, 하나의 일을 하는 중에도 내 머릿속에서는 자꾸 다음 일을 생각했다. 그맘때쯤 읽은 <원씽>이라는 책을 통해 내가 진짜로 삶이 압도될 만큼 바쁜 것이 아니라 나의 정신이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모든 잡다한 일을 ‘다 중요한 일 처럼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느꼈다. 인스타를 끊었을 땐 나의 일들에 대해 훨씬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집중력있게 임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된 것도 내 삶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한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인스타에서는 계속적으로 타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확인하게 되니 의도하지 않아도 그것을 기준 삼아 나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같다. 타인의 화려한 모습들 속에서는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의 속도로 나아가는 그 발걸음이 너무나 미미하다못해 하찮게만 느껴졌는데 시선을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니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고 뿌듯했다. 일의 속도 보다는 본질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그러다보니 현재 내가 잘 해내고 있는 것, 잘 해야하는데 못하고 있었던 것, 당장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되니 차분히 생각해도 되는 것, 이런 것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느껴졌다.


삶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2024년 1월 12일), 46일 만에 다시 로그인을 했다.


남편이 보여준 영상 하나가 계기가 되었다. 친한 언니네 아기가 예쁜 행동을 하는 모습이 담긴 릴스였다. 그 영상을 보자 뭔지 모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인스타를 닫아두기로 한 결정이 마치 ‘지인들의 소식을 다 모르고 살아도 괜찮아, 너희들이 뭐 하고 사는지 나는 별로 관심 없어’,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그러려고 인스타를 닫은 건 아니지만 따라오는 결과가 그런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육아하느라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뭘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었고, 이는 곧 그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때 함께 기뻐해주지 못하고 힘든 일이 생길 때 위로 한 마디 남겨둘 수도 없다는 뜻이었다.


물론 나 한 명 보라고 영상을 올리는 사람은 절대 없겠지만, 일대일로 연락해서 말하기에는 너무 별 거 아닌데 슬쩍 sns에 올리며 이 친구가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이고, 혹은 자주 연락도 못하고 왕래도 많이 없는 친구이지만 스토리에 하트 한 번 눌러주며 ‘나는 너를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마음을 은근슬쩍 표현하고 싶을 때도 있는 것인데, 이처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창구 하나를 내 손으로 닫아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에 얼른 아이들을 재우자마자 인스타에 로그인을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 올린 스토리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쭉 하나씩 넘기며 보고있다가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이야기들이 짧지…?”


아, 뭔가 쎄-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이거구나. 사람들의 집중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


인스타를 하지 않을 때에는 유튜브나 블로그를 평소보다는 좀 더 보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긴 호흡의 정보 전달에 익숙해졌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난 인스타의 첫 느낌은 너무 짧고, 화제 전환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스토리’가 등장한 후로 사람들은 게시물 보다도 스토리를 더 애용하게 되었다. 나부터도 언젠가부터 거의 모든 것을 스토리에 올리고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부담스럽다 느꼈다. 사진 한 장과 글 약간, 짧으면 5초, 길면 30초 이내에 읽히는 글만이 적합한 스토리라는 형태가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짧게 말하기’에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짧게 말하고, 짧게 듣기. 그리고 클릭 한 번에 아주 빠른 속도로 바로 다음 콘텐츠로 전환된다.


<도둑 맞은 집중력>이나 <원씽> 같은 책들을 읽어보면 사람의 뇌는 멀티태스킹이 애초에 불가능하게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멀티태스킹이라 믿고 있는 그것은 뇌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하나의 작업에서 다른 작업으로 작업 전환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일 뿐, 두 개 이상의 태스크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하나의 일에서 또 다른 일로 전환을 할 때에 완전히 몰입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15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하나의 스토리에서 다음 스토리로 넘어가며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텍스트들을 읽어낼 때 우리는 우리가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다섯 번째 걸 보고있을 쯤에는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봤던 건 기억에서 이미 사라져있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해서 서른 번째, 마흔 번째, 쉰 번째 스토리(혹은 릴스, 혹은 쇼츠…)를 넘긴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본 오늘, 그 ‘인스타 효과’를 확실하게 느꼈다. 세상 모든 잡다한 것들이 내 삶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그 힘, 살 생각도 없었던 물건을 지금 당장 꼭 사야만 할 것 같이 느끼게 하는 그 무서운 힘을.





하지만 인스타 없는 삶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안 좋았던 점을 꼽아보자면, 첫째로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사실은 내가 인생에서 단기적으로 무언가에 확실하게 몰입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지인들 소식을 모르고 사는게 더 낫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처럼 육아 하느라 사람 한 명 만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지인들의 소식에 댓글이나 디엠으로 응원, 위로, 격려, 축하 등의 표현을 하는 것이 내가 그들을 지금도 좋아하고, 아끼고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스타를 비활한 것이 왠지 모르게 내가 그들을 끊어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둘째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려고 할 때 요즘 다들 인스타를 통해 홍보하고 할인 정보를 올리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얻을 수가 없었다. 나는 3월에 신축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는데, 인테리어를 고민하느라고 가구를 이래 저래 많이 찾아보아야 했다. 그런데 어느 업체를 가도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제품들을 많이 올려놓았다고 인스타에 들어가서 보라고 하고,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들려고 해도 인스타 디엠을 통해 연락해야해서 이런 용도로만 사용할 계정을 따로 만들어 사용해야만 했다.


셋째로, 세상에 나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와 남편은 몇 달 전 함께 본 <아웃풋 법칙>을 통해 큰 영감을 받고 우리가 삶에서 얻는 것들을 작은 것 부터라도 세상에 나누자는 모토를 가지고 살게 되었는데, 나의 지인들과 내 또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sns가 인스타그램이다보니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나를 드러내려고 해도 접근 자체가 잘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인스타는 그래도 지인들을 기반으로 하여 어느 정도의 팔로워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과 소통하면서 살아가기에 가장 적합한 통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필요악이 된 인스타, 나 한명이 제아무리 싫어해도 이것 없이는 너무 불편한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쓰기는 써야 하겠으되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운영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인스타 없이 살기 장단점 요약!


장점

- 삶과 일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진다.

- 삶의 우선순위가 정비된다. (쓸데 없는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해야할 일에만 몰두하게 된다.)

- 휴대폰 사용 시간이 줄어든다.

- 양질의 읽기 자료 (브런치, 책, 등)를 더 읽게 된다.


단점

- 업체 정보를 얻기 어렵다.

- 보고싶은 지인들의 소식을 듣기 어렵다.

-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렵다.

- 개인 브랜딩에 불리하다.





2024.01.13

매거진의 이전글 새해, 피할 수 없는데 울 수도 없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