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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기억

루나 가상화폐 사건으로 12년분 생활비를 잃고 나서 2년 반

by 세가오니

12년분의 생활비가 단 며칠 만에 사라져 버린 격동의 2022년 5월 이후 2년 반이 지났습니다. 후일담을 쓰지 않은 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달의 귀환 이후의 삶의 궤적에 대해 정리하고자 글을 씁니다. 아마도 루나, 테라 사태 이후 관련한 글은 본글이 마지막이 될 것 같습니다.


한때 제 투자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전 세계의 루나틱 투자 커뮤니티와 함께 나날이 성장하는 기쁨을 느끼며 낙관적인 미래를 바라보던 '만월'(満月)의 루나에 대한 지구에서의 기억 마지막 편이기도 합니다.


최근 루나 코인 대폭락 사태를 다룬 영화 <폭락>이 개봉하기도 했고, 권도형이 미국 FBI에 잡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금 루나에 투자하던 날들이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카페 한 구석에서 노트북을 펴고 한 때 내게 보름달 꽉 찬 희망을 주던 루나 코인 투자 실패에 대한 마지막 회상글과 지난 2년 반 어떤 생각들의 변화가 있었는지 반추해 보며 쓰다가 서랍에 넣어둔 이 글의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투자의 실패는 내게만 일어난 불행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무수히 다양하게 일어나는 우연한 삶 속 사건 중 하나였을 뿐


만약 1년에 먹는 것과 입는 것을 포함 급여 없이 생활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돈이 총 0000만 원이라고 가정할 때, 1년 동안 쓰는 그 돈의 12배가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 돈은 때로는 잠을 줄이며 때로는 모든 것을 아끼며 모아 둔 돈이었다고 할 때 말이죠.


저는 잃어버린 시간, 내 미래의 12년을 날렸다는 뼈저린 자괴감, '차라리 무엇을 살 걸.' , '가족들에게 더 잘할 걸' '전 세계 여행을 다녀올 걸', '로또를 수억 원어치 사둘걸',‘유학 학비를 선납해 둘 걸’ 등등 자책감과 더불어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도무지 그 꽉 막힌 생각들이 없어지지 않고 뒤엉켜있었습니다.


그런데, 슬픔이나 회한, 자책이라는 감정은 생각보다 그렇게 길게 가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무수히 많은 불행 이벤트가 계속 따라오며 제 뺨을 쳐댔기 때문에 그 감정에 빠져있을 감정적 여유가 없었다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헤어 나올 수 없이 슬펐던 아버지의 작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추스르고 나니 루나사태의 모든 파고를 맞고 나서 12년 치의 생활비를 한 번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동장치가 말을 듣지 않는 택시를 타고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 갔던 생애 가장 심각했던 교통사고를 당해 죽기 직전의 순간 천운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디스크막이 대부분 찢어져 당시 너무 바쁜 현업사정상 반년을 척추에 맞는 주사를 맞으며 매일 업무를 해야 했지만.) 그러고 나서, 20년 지기 사랑하는 오랜 친구가 아무렇지 않다가 갑작스레 예후가 좋지 않은 암의 말기 판정을 받는 것을 보면서 정말 신이 존재하는가 깊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신뢰를 저버리는 부정을 저지른 것을 알게 되기도 하고 좌절에 빠진 적도 있습니다.


정말 우주의 모든 기운들이 계속해서 쉴 새 없이 상처에 새살이 돋아날라치면 그것들을 후벼 파기 바빴습니다.

[source = https://www.techexplorist.com/]

그 과정 속에서 결국 '행복'이란 감정은 거칠게 물길 속에서 휩쓸려 내려가는 삶이라는 이름의 급류 속에서 잠깐씩 수면 위로 입을 내밀어 숨이 막히기 전에 숨 쉴 수 있는 짧은 찰나인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불행하지 않다'라고 느끼면서 실존하는 나의 감정을 다독이는 것일까요. 처음 살아보는 삶에서 아직까지도 흔들리고 힘든 순간들은 때론 쉴 새 없이 다가오지만, '돈을 잃는다는 것은 그런 힘들다고 느끼는 이미 일어나 버린, 그리고 또 일어날지 모르는 일 중 하나'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던 지난 2년 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무수히 제 삶을 쥐고 흔들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제 본질과 삶을 뿌리째 흔들지는 못한다는 겪어보고 스스로 빠져나와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은 확실히 생긴 것 같습니다. 그 근육은 어떤 운동으로도 키우지 못하는 이 과정을 겪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에서 각자의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가르쳐 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시간을 레버리지로 삼았던 지난 2년 반의 시간 동안 나의 투자근육은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2년 반 전 '달의 귀환' 글 마무리하면서, 시간을 레버리지 삼아 Web3의 DeFi가 아닌 전통적인 금융에서의 '풍차 돌리기'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적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시간 동안 1년 만기사이클 예금 풍차를 두 번 돌렸고, 한 달에 한 번씩 예금한 것들의 만기를 30번 가까이 경험하면서 원금과 이자를 넣었을 때 금리가 유리한 것으로 갈아타기도 하고 참 열심히 풍차를 돌렸습니다.


매월 만기가 돌아오고 돌려받고 재투자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만 복리라고는 해도 아직은 최근 몇 년간의 물가상승 추이와 비교할 때 실질금리상으론 크게 재미를 보진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루나 사태 이전과 비교했을 때 비교가 안될 정도로 돈에 대한 자제력이 생겼다는 점입니다. 매월 근로소득 2/3를 무조건 떼어 정기예금으로 옮기고 나서 남은 금액으로 생활한 지 30개월이 지났습니다. 때로는 생활비가 부족한 때도 있었지만 그때는 스스로 만든 룰에 따라 주식을 일부 처분하거나, 당근을 열심히 하는 등의 자급자족을 통해 메웠고 이 룰은 계속 지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내게 보낼 수 있는 후원은 시간을 레버리지 삼아 잃지 않는 투자를 하는 것부터라는 것을 말이죠. 물론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국가주도의 통화팽창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금이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앞서 말한 것처럼 실질금리상으로 볼 때 좋은 투자실적은 아닙니다. 이제 어느 정도 금융 체력이 생긴 올해부터는 밸런스를 바꿔 투자 비중을 좀 더 높일 예정입니다.

[source=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풍차 속의 15개 정기예금 계좌]

2년 반 전에는 이 피해액을 정말로 복구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많았지만 사실 지내고 나니 그 걱정을 없애고 피해금액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현재의 내가 중심을 잃지 않고 금융 체력을 쌓는 과정을 실행했던 덕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2년 반전 '달의 귀환' 글에서 더 이상 가상화폐에 무분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과 더불어 LUNA의 Depeg 피해자들에게 재단이 보상해 주는 코인으로 부담 없이 DeFi를 돌린다고 말씀드렸었던 부분의 경과도 적어봅니다.


매달 재단에서 스마트컨트랙트로 자동으로 보상받는 LUNA2 코인과 기존에 가지고 있던 LUNC, USTC의 Staking 예치 이자가 나오면 바로 바이낸스로 보내서 비트코인을 꾸준히 구입했습니다. 비트코인 가치가 100달러가 넘으면 CEX로 보내서 현금화해서 미국 배당주 위주로 소수점 투자를 합니다.

[source= 나의 지갑 현황. 오늘자 바이낸스 계좌 Staking 이자 저금계좌 현황]

지난 2년 반동안 OTC 소수점 구매계좌에 들어있는 배당주들의 보유수도 늘었고 수익률도 나쁘지 않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꾸준히 루나 피해액 보상을 현금화하고 DCA (적립식 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큰 시장의 등락을 겪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조금씩 보상금을 적립해 나갔기 때문에 단기적인 수익에 매몰되지 않았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가상화폐의 변동성에 무리한 투자를 갑작스레 하고 손실이 나면 메우기 위해 다시 또 무리하게 투자하는 나쁜 버릇도 자연스레 사라졌습니다.



2025년부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달'이 제게 남겨준 기억은 무엇일까요.


작년에는 비트코인이 $100k를 돌파했고, 가상화폐 친화적인 트럼프가 당선되고 나서는 그가 만든 밈코인 $TRUMP가 Moonshot을 비롯한 많은 거래소에서 폭발적인 거래액을 달성했습니다. 상장했던 주의 금요일 단 하루 만에 4200%가 상승하면서 투기붐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예전의 저라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source=bitcoinist]

저는 이런 광풍 속에 다시 가상화폐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마음은 없습니다. 물론 관망하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AI Agent나 양자 컴퓨팅등의 기술은 블록체인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다만, 무리하게 투자하지 않고 이제는 시간과 더불어 투자근육과 습관을 함께 지렛대 삼아 제 나름대로 균형 잡힌 투자를 진행해 나갈 생각입니다.

[source=history.com]

만월의 보름달을 기대하면서 무리한 투자를 하고 큰 실패를 했던 제게 '달'(LUNA)이 남겨준 기억의 의미는 마치 1969년 NASA에서 찍은 달에 착륙한 Moonshot 이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고 가능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보여주면서 인류에게 무수히 많은 영감과 용기를 준 것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복구하기 어려워 보였던 경제적 손실을 회복하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깨달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말로는 이렇게 하지만, 지난하면서 고통스럽고 힘든 기억과 순간들이 당연히 많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음 가짐을 가지고 묵묵히 걸어온 30개월의 순간들이 마냥 즐겁지많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이렇게 크게 투자해 보고 잃어보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달의 기억'은 아마도 제 삶에서 잊지 못할 체험과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 투자 소회를 수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개별적으로 연락 주셔서 용기를 주신 인류애적인 많은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읽어주신 모든 분들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며 마칩니다.



에필로그


당신의 삶을 지속시키는 원동력,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며 이루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sourcehttps://trellis.net/article/whats-your-sustainability-moonshot/]

LUNA(달, 만월)와 LUNATIC(미치광이) 사이에서 삶의 Moonshot을 꿈꿨습니다. 꿈을 위해 때로는 사랑을 위해 지속가능한 원동력을 스스로 채워가며 무모한 도전을 하기도 했습니다.


2021년부터 시작한 LUNA 투자의 시작점과 2022년 5월의 끝, 그리고 다시 회복을 위한 지난 시간들을 이끈 원동력은 단순히 경제적 이익보다 이타적인 원의 크기를 크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최선(最善)의 상태를 향해 살아가고자 하는 개인적 삶의 목표와 얼마나 맞닿아 있었나, 그리고 투자실패 이후 회복하는 지난하고 괴로운 과정 속에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중 가장 좋아해서 춥고 고독했던 군복무 시절 여러 번 읽었던 <스프투니크의 연인>을 읽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책을 읽으며 각자 자신의 삶의 궤적을 그리며 끊임없이 그 안에서 고뇌하고 고독함을 느끼는 인간군상 속 저를 상상했고, 그 과정에서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 속 사랑하는 대상의 주위 궤도를 도는 고독한 위성에 감정을 대입하곤 했습니다.


고독한 위성이 되어 투자 궤도를 변경하지 않고 루나 투자를 위해 정기 예금을 비롯한 제 생명과 같던 투자금을 출금하고 투자를 늘려갈 때마다 투자 관련 업계의 지인은 '너무 한 종목과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라고 제게 수차례 조언과 경고를 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마치 <스푸트니크의 연인> 스미레가 첫사랑에 빠진 순간처럼 눈이 멀어 모든 것을 파괴할 정도로 영혼을 뺏긴 그런 상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증편향 속에서 저를 과신하고 편협했던 제 자신이 일방적인 믿음과 사랑이 자초한 엄혹한 투자 실패의 점(Dot)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린 제 삶의 궤적(Path) 속 무수한 점(Dot)을 이어가며 수없이 자문을 했던 과정에서 다시 한번 돌아봤습니다.


'지속 가능한 삶, 실존하는 삶.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는 자아, 존재하고 실천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도 삶은 제게 늘 질문을 던집니다. 비록 돌이킬 수 없는 경제적 손실을 입었지만 저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고 끊임없이 호기심을 가지고 제 남은 삶을 살아가려고 합니다.



[추신]

2년 반 만에 브런치 글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노트북 침수 사고라는 약간의 해프닝이 발생해 수리비로 거금을 썼습니다. 이 역시 자책하지 않고 2025년 시작하자마자 액땜했다 생각합니다. 다시 태어난 노트북인만큼 다시금 브런치 작가로서 글을 다시 자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source= 갑작스러운 침수 사태로 무려 84만 원의 수리비를 낸 나의 맥북 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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