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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스텔무드 Nov 23. 2022

결혼식 2주 전, 나는 회사에게 차였다

권고사직을 당하다

2018년 12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였던 나는 그저 행복한 분주함을 즐기고 있었다. 결혼식 기획과 새집 꾸미기에 온통 정신이 팔려 회사일은 나빌레라였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 시점 회사 일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회사 업무가 내 결혼 준비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아 좋았다.


그 무렵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이런 회사라면 평생 다녀도 되겠다.‘

내게 회사는 그저 사장 배부르게 하는 곳이자 돈벌이 수단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언젠가는 떠날 곳. 그때까지 내 자생력을 키우고 어느 날 갑자기 쿨하게 떠나자란 생각으로 꾸역꾸역 다니던 곳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는 업무도 힘들지 않았고, 이미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박힌 터라 건드리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세상에 이런 회사가 있을 수 있나? 일도 제대로 안 하고 일하는 척만 하고 자리에만 앉아있어도 꽤 높은 월급이 따박 따박 꽂히는 이곳이야 말로 신의 직장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회사생활은 그야말로 예측불가이기에 언젠가 다가올 바쁨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에 이 꿀 같은 시기를 온전히 즐기자란 마음으로 회사를 놀러 다녔다.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그게 맞았고 난 참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조직개편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제 꿀보직에서 벗어나 힘든 업무 및 상사를 만나겠구나 하는 마음에 걱정이 됐지만, 어쨌든 ‘애정도 없고 열심히 일하기도 싫은 회사 뭘 하게 되든 대충 하자~’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던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하이에나 같은 정치질 대마왕 부장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서로 말 섞을 일이 없었던 원수 같은 사이라 나를 부를 일이 많지 않은데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질 거란 예상이 들었다. 작년에도 갑자기 불러서는 아예 해보지도 못한 업무를 하라며 통보하던 인간이었다. (강약약강... 휴) 소위 자기편이 아닌 부하직원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보복을 하는 치졸한 인간이었다.

놀부상을 한 그 인간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나에게 전했다.

네가 맡을 업무가 이 본부 내에 없어. 다른 본부로 가야 될 것 같다. 곧 인사팀에서 너에게 연락할 거야”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멍~ 했다. ‘엥? 이게 뭔 소리람?’ 그리고 이내 곧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나가라는 거구나?’ 겉포장은 부서 변경이었지만, 그 속뜻은 '권고사직’이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 혹시 지금 제가....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하는 건가요?”라는 내 질문에 미안함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표정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부장놈과 더 이상은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서둘러 ”네, 알겠습니다.“ 라 말하고 회의실을 나와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그제야 실감(말하자면 현타)이 나기 시작했다.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 ‘진짜 사람이 너무 무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식을 2주 남긴 새신부 직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불과 1주 전, 어색하게 청첩장을 전달하던 내게 가식적인 웃음을 띄우며 청첩장을 받던 그 윗분들이 뒤에서는 나를 자를 계획을 하고 있었다는 게 사실인가 싶어 놀라웠고 무섭기까지 했다. 언제든지 직원을 이용하고 버리는 곳이 회사라는 생각은 언제든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결혼식’이라는 큰 일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소식은 전혀 달갑지 않았다.


정말 억울했다. 난 조직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업무 능력으로 치면 그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회사에 놀러 다니게 된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그 회사로 이직한 뒤 1년간은 정말 미친 듯이 일했다. 나를 보호해 주거나 제대로 업무를 알려주는 상사는 한 명도 없었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기에, 경력직인 나는 모든 업무를 A-Z까지 감수하며 책임져야 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는 완벽주의가 있어 유관부서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고 최대한 완벽하게 일을 하기 위해 홍길동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업무의 성과를 자꾸 엉뚱한 사람이 가져갔다. 엄청난 성과로 조직에서 주목받고 칭찬받는 자리엔 언제나 내가 없었다. 내 상사였던 부장과 과장, 그 두 사람은 그런 상황에 언제나 내 존재를 부정했다.


또한 완벽하게 일을 하려 했기에 큰 사고가 난 적이 없지만 가끔 부장이 무턱대고 이거 왜 이렇게 했냐며 시비를 걸 때 상사란 인간들은 욕받이로 나를 앞세웠다. 그 상사들은 내가 한 모든 기획과 실무에 컨펌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오롯이 진행한 일이라는 식으로 부장에게 일러바쳤다. 난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대리 나부랭이일 뿐이고 내 위에 상사는 두 명이나 있는데. 일처리 할 때마다 매번 컨펌을 받았는데 왜 맨날 나 혼자 욕을 먹지?' 단 한 번도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진행한 일이 없었다. 난 고작 대리일 뿐이니까!


내겐 권리는 없고 책임만 있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지붕 역할을 해주는 상사는 아무도 없었다. 구멍 난 지붕 아래에서 번개와 우박, 산사태를 외롭게 혼자 다 맞는 기분이었다.


난 점점 지쳐갔고 결국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애쓰며 일해봤자 이용만 당하고 인정도 못 받으니. 그들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쌓이고 끝에는 여지없이 자기 비난으로 이어졌다. '내가 미련한 걸까.....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한 거지..? 아, 정말 살고 싶지 않다....'란 생각뿐이었다. 친한 동료들은 힘들어하는 나를 지켜보며 하나같이 입을 모아 조언했다. ''열심히 하지 마~ 그냥 놀아. 여긴 열심히 하는 사람만 손해인 곳이야.''


왜 그 조직이 고인물이 많고 발전이 없는지도 점점 이해가 됐다. 다른 회사에 이직할 능력이 되지 않는 고인물들은 그들끼리 유대관계를 형성하여, 변화나 혁신을 말하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치졸한 텃새와 정치질로 조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외로운 능력자들을 결국 퇴사하게끔 만들었다. 그 회사에서 있었던 2년 7개월간의 일들을 지켜보며, 난 더 이상 이 조직에서 최선을 다하며 일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고 그때부터 월급루팡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놀아도, 정치질에 성공한 고인물 루팡들은 쫓겨나지 않는다!)


권고사직을 당한 후 인간에 대한 상처를 아주 야무지게 받았다. 그 이후로 ‘사람은 100% 믿을 존재는 아니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나를 미워한 상사들에 대한 복수는 내가 이 회사를 나가서 더 잘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들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 복수심 같은 것은 없다. 관심이 없기에-)

위로금도 두둑이 챙겼으니 사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2주 앞둔 상태에서 새 신랑인 남편과 우리 엄마, 아빠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었다. 시댁 부모님께는 솔직하게 말할 자신조차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사실을 시댁에는 비밀로 하기로 남편과 약속했고, 2주 후 결혼식을 무사히 치렀다. 나와 절친했던 동료들은 위로 차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많이들 참석해 주었다. 그 와중에 상사들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제껏 직장 생활을 하며 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봤지만 상사들이 1명도 안 온 결혼식은 내 결혼식이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 내가 참 좋아했던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에서 ‘무한상사’라는 상황극을 유난히 좋아했다. 꼰대스러운 유재석 부장의 모습과 그런 상사에게 알랑방귀를 끼는 직원, 그리고 아부에 실패해 미움을 받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며 재밌기도 했지만 공감이 많이 됐다.


여러 에피소드 중 가장 인상에 깊었던 것은 ‘정 과장의 퇴사’였다. 회사에서 잘린 정 과장의 씁쓸한 모습을 보며 한참 사회생활 풋내기였던 나는 '회사란 곳이 참 잔인하다. 저렇게 쫓겨나기 전에 나는 퇴사준비를 멋지게 해서 당당하게 내 발로 나와야지! '란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닥칠 현실이라고는 그 당시엔 생각지 못했다. 일러봤자 4050 세대일 가장들에게 생길 가슴 아픈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30대 초반 창창한 대리였던 내가 권고사직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고,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 일이 있고 약 4년이 흐른 지금은 그때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사람에 대한 불신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회사는 내 인생을 절대 책임져 주지 않는다.'란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대기업에서의 조직생활은 업무능력보다 정치질, 라인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업무능력으로 정직하게 평가받고 인정받고 싶은 내게 조직생활은 여전히 지옥이다.


'회사생활을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것이다'라는 가치관이 팽배한 이 세상에서 나같이 자유로운 영혼의 아웃사이더는 외롭다. 그러나 각자 사람에게 맞는 자리와 역할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진다면 그것이 곧 정답이다. 내겐 퇴사가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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