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Nicolas Kynaston(3)

In Conversation : Organist's Review UK

by Sehnsucht

영국의 오르간 잡지 [Organist's Review]에 반가운 사진이 올라왔다. 그래서 잡지사에 DM을 보냈고, 2022년 3월 당시 실렸던 기사에 대한 내용을 한국말로 번역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다.

영국 왕실 보타닉 가든으로도 유명한 런던 남쪽에 위치한 리치먼드에서 살고 계신 Organist Nicolas Kynaston 나의 은사님

그곳에서 나눈 대화와 식사 그리고 함께했던 모든 추억과 냄새 분위기 그리고 Volero un Gatto Nero(검은 고양이 네로) 대신 검은 고양이 네로, 겨울에는 히터 앞에서 잠을 자던 녀석 , 1월 말에 방문했지만 여전히 사진처럼 기억된 수선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 집에서 잔향이 되어 고스란히 남았다. 위대한 연주자 Nicolas Kynaston에 대하여 한국어로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오르간 연주자 Nicolas Kynaston의(NK) 80세 생일을 맞아 그의 제자 Francis O'Gorman과 James Thomas가 (F•J) 대화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수정하였다.


F•J : 인터뷰를 허락해 주시고, 다시 만나게 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여깁니다. 대화의 첫 주제로 어린 시절 ‘음악’ 배경 가운데 성장 하셨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NK : 나는 일곱 남매 중에 저는 막내로 자랐습니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성공회 사제이셨고, 아버지는 나중에 가톨릭의 사제가 되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그림에 재능을 가지고 계신 화기이셨고,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성악을 하신 나의 어머니에게 선물로 주신 그림이 바로 옆방에서 보실 수 있답니다.


F•J : 영국 데본 지역에 있는 아주 큰 집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으셨군요?

NK : 네 그렇습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pre-Reformation 채플의 부분이지만, 집은 여전히 남아있어서 리모델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곳은 정말 좋은 곳이기도 하였지만, 건물 안이 춥고 외풍이 심하기도 했답니다. 나는 웨스터민스터 성당에 성가대원 가게 되었고, 당신들도 기억하겠지만 그곳에는 음악과 오르가니스트의 두 영역이 있었답니다. 당시 조지 말콤(1917-97)과 막스웰 퍼니에(1910-99)가 음악감독과 오르가니스트로 지낼 때 나는 성가대원이었습니다.


F•J : 웨스터민스터 대성당 (영국)은 랜드마크이자 놀라운 음악전통이 있습니다.

NK : 그렇습니다. 리처드 테리 경 (1864-1938)은 모두가 기억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음악적 존재감과 유산을 남겨준 조지 말콤과 콜린 모비 (1936-2019) 였습니다. 이야기를 더 이어가자면, 저는 합창단원 생활을 마친 후 음악 장학금을 받고 서머싯에 있는 다운사이드 학교로 옮겨 재학중에 있었는데 당시 로마 성 베드로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페르난도 제르마니 (1906-98)와 함께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여름학교를 수강하였습니다. 당시 저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나온 페르난도의 레코드로 그의 연주를 접했고, 그는 훌륭한 스승이자 위대한 거장이었습니다. 그는 페달부터 시작하는 테크닉으로 수업을 시작했고, 이후 저는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그에게 정식으로 사사하기 위해 영국을 떠났고,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F•J : 위대한 인물이었군요, 수업은 모두 이탈리어로 진행되었나요?

NK : 음..무솔리니는 독재세절 영어 교육을 억제했기에, 네 그렇습니다. 제르마니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지만, 저는 제대로 이해받고 소통하기 위해 이탈리어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유용했고, 거의 매일 그와 마스터 클래스 형식의 수업을 모든 제자들과 함께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일어난 가장 놀랍고도 프로페셔널한 일이기도 했답니다.


F•J :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서는 어땠나요?

NK : 19살 나이에 운좋게도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어 10년(1961-71)동안 있었네요. 5년 근무 후, 5년 더 근무하고 떠날 것을 결심했습니다. 거기서도 팝 녹음과 영화 음악 연주도 포함한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프레디 프랜시스 (1917-2007) 감독의 1972년 영화 <크립트의 이야기> 아시나요? 거기 나오는 오르간 기억나시나요? 그거 제가 연주한 거예요. 10년 동안 즐겁지 않거나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단순히 전 세계에서 더 많으 ㄴ연주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제 바람이었어요. 게다가 그때는 아이도 넷이나 있었죠. 그래서 1971년에 대성당을 떠났고, 사실 그 이후로 교회 관련 직책은 한 번도 맡지 않았습니다. 가끔 친구 결혼식 같은 데서 연주할 뿐이죠. 하지만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은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어요- 정말 멋진 곳이고 물론, 두 개의 훌륭한 오르간도 있죠.


F•J : 당신은 가장 특별한 레퍼토리를 지니고 계십니다. 우리 세대의 많은 이들이 1972년 발매된 로열 앨버트홀의 놀라운 '클래식을 위한 기쁨' 녹음 (CEP 170)을 통해 오르간이 어떤 악기일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둘 다 그 녹음의 전율적인 효과를 기억하며, 특히 Gigout의 <6개의 오르간 곡, 1881> 중 대화하는 대합창은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결정적인 아티큘레이션은 그곳에서도 다른 곳에서도 잊지 못할 것이고, 그 녹음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간의 음악적 힘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NK : 그 작품은 금관악기 앙상블과도 잘 어울립니다 진정한 대화죠. 앨버트 홀은 거대하고도 놀라운 악기입니다. 스웰 오르간은 콘솔에서 너무 높게 위치해 있어, 이를 최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립니다. 솔로 디비전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지금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거대한 구조물이기도 합니다. 마르셀 뒤프레 (1886-1971)가 생애 마지막 무렵 그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들었습니다. 저의 제자였던, 제인 파커-스미스 (1950-2020)와 저도 그곳에서 듀엣을 연주했죠. 네, 바로 그 '클래식을 위한 기쁨' 녹음입니다. 자, 보세요. 제가 항상 벽난로 위에 보관해 온 이 상은 EMI에서 그 녹음 음반이 6개월 만에 10만 장 판매되어 공로로 수여한 상입니다.


F•J : 정말 놀랍네요. 다소 광범위한 질문이지만, 로열 앨버트 홀 오르간의 규모를 생각해 보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존경하는 악기가 있나요? 당연히 전 세계를 누비며 연주하셨을 텐데요. - 필리핀 라스 피냐스의 놀랍고 독특한 1824년 대나무 오르간도 포함해서요- 유럽, 북미, 아시아, 아프리카를 오가며 수천 시간을 여행하고, 무엇보다도 호텔에 머물며 보내셨을 겁니다.

The Bamboo Organ of Las Piñas (1824) 필리핀 @https://bamboo-organ.com/


NK : 네. 그 여행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죠. (그런데 그 대나무 오르간은 정말 매혹적이었어요. 가장 부드러운 음색이었죠. 물론 금속 리드 파이프도 있었지만요.)



F•J : 그리고 오르간 제작 측면에서 당신은 독일 본에 크로이츠 교회의 오트 오르간을 비롯한 여러 많은 곳에 새로운 악기 제작에 자문을 제공해 왔습니다. 특히 본의 오르겔 바우 클라이스 (Klais)와 워커 (J.W. Walker)등을 위해 말이죠. 클라이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NK : 바로 요하네스 게퍼트의 아버지를 통해서였죠. 요하네스는 1997년부터 2015년까지 쾰른 국립 음악원 오르간 및 즉흥 연주 교수이자 개신교 교회 음악과 학과장을 역임했으며, 저의 제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 자체로 저명한 교회음악가 였고, 저는 본에서 몇 차례 연주회를 가졌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F•J : 당신의 경력에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리스에서 최대규모인 아테네 음악당( Megaron Mousikis Athinonthe Athens 1991년 개관 2000여 석 보유, 클라이스 오르간)에 오르가니스트 (1995-2010)로 임명되어 보냈던 시간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NK : 네, 물론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오르간을 발명했죠. 이름은 '도구, 악기'를 뜻하는 오르가논 (Organon)에서 유래했습니다. 주로 수력을 작동학던 이 악기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서 연극 공연은 물론, 안타깝게도 순교 의식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현대 그리스에서는 정교회에서 오르간의 역할이 없어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리스에는 오르간 제작자가 없으며, 그리스 작곡가들의 오르간 레퍼토리는 극히 적습니다. 사실, 오르간을 완전히 제외하고 (비록 그늘 실제로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프랑스 혈통이기도 하지만), 영국 사람들이 들어봤을 만한 유일한 그리스 작곡가는 아방가르드 작가이자 건축가인 이아니스 제나키스 (Iannis Xenakis, 1922-2001) 일 것입니다. 오르간은 친숙한 악기가 아니며, 그리스 콘서트 관객들은 오르간이 선사할 수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F•J : 그렇다면 메가론은 실험이었나요?

NK : 네, 그렇게 생각됩니다. 클라이스 오르간과 함께 케네스 존스에게 2개의 매뉴얼 소형 실내 오르간도 주문했습니다. 이들이 그리스 최초의 현대식 오르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의 독일 교회와 영국교회에서 더 오래된 오르간이 있습니다.


F•J : 그리고 레퍼토리는 어땠나요?

NK : 모든 곡이죠. 독주 오르간은 물론 오케스트라와 아테니 국립 오케스트라 그리고 실내악까지요. 이 점을 꼭 염두하셔야 합니다. 초기 관객들은 바흐의 오르간 작곡을 잘 알지 못했고, 뷔도르나 세자르 프랑크 같은 작곡가의 작품은 더더욱 그렇죠. 우리는 1997년과 1999년 오르간 페스티벌을 개최했습니다. 이는 오르간이라는 악기와 그 음악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지요. 오르간 강좌도 열었는데, 그때 만난 나의 제자들이 있습니다. 관객들이 처음엔 레퍼토리가 어렵다고 느꼈겠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계속 찾아와 오르간을 들었습니다. 아테네는 정말 흥미진진한 도시입니다. 하루에 네 번이나 출퇴근 시간대라니, 가끔은 힘들기도 했지만 정말 멋진 곳입니다. 박물관들은 훌륭하고- 물론 아크로폴리스도 빼놓을 수 없죠. 필로파포스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도시 전경은 잊을 수 없어요. 저는 그리스를 자주 다녔어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요. 지금은 여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꽤 다행이라고 말해야겠네요. 아까 언급했던 그 수많은 호텔, 기차, 비행기들 말입니다. 그러나 아테네는 정말 최고입니다.


F•J : 아테네에서의 오르간 수업과 교수 경력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당신은 수많은 저명한 음악가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 또한 다소 개방적인 질문이지만, 학생들이 당신의 수업에서 가장 얻어가길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NK : (주저 없이) 음악을 즐기는 것입니다. 아, 가끔 그걸 잊기 쉽죠, 그렇지 않나요? 가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이 곡을 연주하는 게 즐거우니", 안타깝게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바로 그게 핵심입니다. 음악가로서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이기도 하지요. 연주자는 소통자입니다. 자신이 음악에 대해 느끼는 바를 표현하려 하고, 음악 자체와 작곡가가 작품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즐거움, 기쁨이 핵심이고 그것은 바로 당신의 임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연주할 이유가 없습니다.


F•J : 녹음도 이를 전달합니다.

NK : 물론입니다. 같은 곡의 다양한 녹음을 듣는 것은 매혹적이고도, BBC 라디오에서 '레코드 리뷰'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연주들 간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고- 때로는 뚜렷한 차이도 있고, 때로는 미묘한 차이도 있지만, 그 결과는 어떤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곡을 익히고자 녹음을 보조수단으로 삼을 때는 항상 조심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너는 x를 듣고 있구나."라고, 그들의 연주가 들은 것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은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F•J : 오늘 이렇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정말 기쁘고 영광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미리 80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NK : 저의 기쁨입니다.


팬데믹 동안 위 글에대한 내용을 완성하지 못한채 저장만 해두고 너무 오랜동안 미뤄두었던 아쉬움 있었다.

그리고 지난 3월 부고 소식을 듣고 문득 밀려오는 그리움에 사무치니, 글로 써내려가는 일들이 손에 더욱 잡히지 않아 들여다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12월10일 니콜라스 키나스톤의 생일인 바로 오늘,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그의 제자들이 추모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함께하지 못하는 나의 아쉼을 달래며,

스승님이 내게 남겨주신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Nicolas Kynaston (1941-2025)